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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수부티

기자명 법보신문

모든 집착 버리고 수행에만 전념한 해공제일

수닷타 장자 조카…기원정사 보시 계기로 출가
공 이치 깨닫고 실천…누구보다 많은 공양받아

 

 

▲삽화=김재일 화백

 


“천신이여, 마음껏 비를 뿌리게나.”

 

수행을 완성해 이상적 경지에 도달한 불제자의 심경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한 마디이다. 이 말 속에는 깨달음을 획득해 완벽한 상태에 놓인 자의 자신감이 담겨 있다. 설사 천신이 무시무시한 기세로 비를 쏟아 붓는다 한들 자신의 정사(精舍), 말하자면 깨달음으로 무장된 자신의 심신은 조금도 동요하지 않을 만큼 안정되고 견고하다. 수행승으로서의 최고의 자신감이다.


초기경전에서 이 말은 주로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한 불제자들이 자신의 심경을 표현할 때 사용되곤 하는데, 특히 대표적인 인물은 바로 부처님의 10대 제자 가운데 한 명인 해공제일(解空第一) 수부티이다. 우리에게는 수보리(須菩提)존자라는 한역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인물이다. 수부티라는 존재는 좀 신비스럽다. 대승경전에서는 그 어떤 제자보다 두드러진 역할을 하며 사리풋타와 같은 대제자를 마치 어린아이 다루듯 하며 대사자후를 발하는 위풍당당한 인물로 묘사되지만, 초기경전에서는 너무나도 조용하고 온화한, 오로지 수행에만 몰입해서 살아가는 조용한 인물로 그려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천신이여, 마음껏 비를 뿌리게나”라는 한 마디 속에 담긴 그의 당당함에서 경전의 종류를 초월해 그가 멋진 수행자로 그려질 수 있는 이유를 발견하게 된다.


다툼 없는 삶으로 ‘무쟁제일’ 칭송


수부티는 코살라국의 수도 사왓티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수마나(Sumana) 장자는 부처님께 기원정사를 보시한 것으로 유명한 수닷타 장자의 동생이었다. 즉 수부티는 수닷타 장자의 조카였던 셈이다. 수닷타 장자가 우여곡절 끝에 마련한 기원정사를 부처님께 바치던 날, 수부티는 그 자리에 동석했다가 부처님의 설법을 접하게 된다. 크게 감명 받은 수부티는 출가를 결심하고 그 자리에서 부처님의 제자가 된다. 출가 후 그는 10대 제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힐 정도로 중요시되지만, 특별히 승가 운영이나 타인의 교화 등에 있어 적극적인 모습이나 두드러진 능력은 보이지 않고 있다. 초기 경전에서 그에 대해 언급하는 기술은 많지 않은데, 몇 가지 자료에 비추어 판단해 보면 수부티는 매우 온화하고도 조심성 많은 성품의 소유자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의 온화한 성품을 엿볼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일화는 ‘지붕 없는 정사’에 머문 사건이다. 한때 수부티가 마가다국의 라자가하를 찾았을 때의 일이다. 빔비사라왕은 10대 제자 가운데 한 명인 수부티의 라자가하 방문 소식을 듣고 한 걸음에 달려온다. 그의 설법을 들은 왕은 크게 감동했고 그 답례로 정사를 지어주겠다는 약속을 한다. 왕의 지시를 받은 자들은 열심히 정사를 지었다. 하지만 당시 16대국 가운데 최강국으로 주변 국가의 병합 등으로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던 왕은 정사의 완성까지 세심하게 마음을 쓰지 못했고, 정사 짓는 작업은 중도에 중지돼 지붕이 만들어지지 못한 채 몇 달 동안 방치되고 만다.


하지만 수부티는 불평 한 마디 없이 그 지붕 없는 암자에 머물렀다고 한다. 그렇게 몇 달 동안 수부티는 지붕 없는 암자에서 하늘의 별을 벗 삼아 평온하게 수행에 정진하며 지냈다. 이 모습에 하늘도 감동했던 것일까. 수부티가 지붕 없는 암자에 머무는 동안 하늘에서는 단 한 방울의 비도 내리지 않았다. 마가다국의 사람들은 타는 듯한 햇볕과 가뭄에 신음하며 고통스러워했다. 보다 못한 왕은 비가 내리지 않는 연유를 알아보게 했고, 아마도 수부티의 정사와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보고를 듣게 된다. 왕은 그제야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고 서둘러 정사에 지붕을 잇도록 했다. 그러자 하늘에서는 곧바로 비가 쏟아져 내렸고 마가다국에는 다시금 삶의 윤기가 돌았다고 한다.


“지붕을 이어 주십시오.”


어렵지 않게 던질 수 있는 한 마디였지만, 수부티는 하지 않았다. 지붕이 없어 비나 밤이슬은 피할 수 없지만, 벽이 있으니 바람은 피할 수 있었다. 아마도 수부티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한 일이라 생각했던 것이리라. 또한 공(空)의 진리를 체득한 그에게 있어 지붕이 있고 없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한 일이겠는가. 그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실상을 꿰뚫어보는 수부티를 부처님은 ‘해공(解空)제일’이라 평가하셨다. 눈에 보이는 것에 대한 집착을 떠나 모든 것은 공(空)이라는 도리를 체득하는데 있어 최고였기 때문이었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부처님이 33천, 즉 도리천에 올라 마야부인을 위해 3개월 동안 설법하신 후 강하하시고자 했을 때의 일이다. 사람들은 모두 자기가 먼저 부처님을 맞이하겠다며 앞다퉈 나섰지만, 어쩐 일인지 수부티만은 꼼짝도 하지 않은 채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었다. 그는 일찍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제법은 공하다는 것을 이해하고 제법의 실상을 체득하고 있었기 때문에 지혜의 눈으로 부처님의 법신(法身)을 관찰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불신(佛身)의 공(空)을 관하여 공한 불신을 보는 것 보다는 공 그 자체를 보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자리를 지켰던 것이었다. 결국 가장 먼저 부처님을 맞이한 것은 그 유명한 웁파라반나 비구니였다. 하지만 그녀를 향해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나를 첫 번째로 맞이한 자는 네가 아닌 수부티이니라. 그는 공을 관하고 내 법신을 최초로 보았느니라.”
수부티는 부처님의 육체에 대한 집착을 떠난 참된 공의 경지를 체득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해공(解空)제일’ 외에도 조용히 수행에만 전념하며 지내던 그를 최고로 평가하는 수식어는 아이러니하게도 유명한 다른 제자들에 비해 월등히 많다. ‘무쟁(無諍)제일’ 역시 그를 평가하는 대표적인 수식어이다. 어느 날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무쟁(無諍), 즉 싸움 없는 삶에 대해 설법하시며 괴로움의 무더기를 없애지 못한 채 오히려 더욱 더 쌓아가게 하는 신구의(身口意)의 잘못된 행을 끊고, 괴로움의 무더기를 없앨 뿐 아니라 생겨나지 않게 하는 신구의의 올바른 행, 즉 팔정도를 열심히 닦으라고 하셨다. 그리고 이 설법 마지막에 “비구들이여, 수부티는 무쟁도(無諍道)를 행하는 자이다”라며 수부티를 무쟁의 삶을 사는 최고의 모범으로 꼽으셨다고 한다.


빔비사라왕, 정사 지어 보시하기도


불화를 만들지 않는 그의 이런 삶 역시 공의 이치를 깨달았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이 외에도 그는 누구보다 신자의 공양을 많이 받았다 하여 ‘피공양(被供養)제일’이라 평가되기도 한다. 또한 아란야(阿蘭若)제일, 여실설법(如實說法)제일, 성묵연(聖默然)제일 등 실로 여러 가지 면에서 최고로 꼽히고 있다. 특별히 눈에 띄는 활약을 한 존재는 아니었지만, 수부티는 수행이나 인격적인 면에서 주변으로부터 이렇듯 훌륭한 평가를 받는 인물이었다.


또 이런 일화도 있다. 어느 날 그는 삿다(Saddha·信)라는 이름의 비구와 함께 부처님을 찾았다. 삿다 비구는 구족계를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참비구였다. 부처님은 물으셨다.


“수부티야, 이 비구의 이름은 무엇이냐?”
“부처님, 이 비구는 삿다라고 합니다. 신심이 두터운 재가신도의 아들입니다. 그 역시 신심이 두터워 출가하여 비구가 되었습니다.”

아마도 수부티는 삿다라는 비구를 부처님께 소개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부처님은 물으셨다.
“수부티야, 그렇다면 도대체 믿음이란 무엇이냐? 어떤 경우에 그 사람은 신심이 두텁다고 말할 수 있느냐?”
그러자 수부티는 분명하게 대답하기 어려웠다.


“부처님이시여, 바라옵건대 그 믿음의 특징에 관해 설해주십시오.”

그러자 부처님은 믿음이 지니는 특징에 관해 설하신다.
“우선 계를 존중하고, 계를 잘 지키는 것이다. 이어 법을 듣고 그 법을 잘 기억하여 수지하는 것이다. 또한 승가에서 도반들과 잘 어울리는 것이다. 교계를 받았을 때는 순수하게 받아들여 따르고, 수행에 있어서는 게으름피우지 않고, 법을 행할 때는 환희심을 갖고 해야 한다.”


믿음에 관한 부처님의 설법을 들으며 곰곰이 생각한 수부티는 삿다 비구가 그와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부처님이시여, 이 비구는 지금 말씀하신 믿음의 특징을 모두 갖추고 있다고 생각됩니다”라고 했다. 그러자 부처님은 얼굴 가득 온화한 미소를 머금고 잠시 수부티의 얼굴을 바라보셨다. 그리고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말씀하셨다.


“훌륭하구나, 수부티야. 그렇다면 너는 이 비구와 함께 머물러라. 또한 나를 만나고 싶을 때는 이 비구와 함께 오너라.”


아직 신참이지만 불법승 삼보에 대한 굳건한 믿음 하에 심신을 잘 다스리며 승가의 일원으로서 적응해 가는 삿다. 조금도 삿된 감정을 개입시키지 않고 부처님의 가르침에 근거하여 있는 그대로 그를 바라보고 또한 받아들이고 있는 수부티. 부처님의 눈에 이 두 사람의 모습이 얼마나 예뻐 보이셨을까. 두 사람의 동주(同住)는 그 자체로 서로에게 큰 가르침을 줄 수 있으리라 생각하셨을 것이다. 수부티는 이렇듯 조심스럽고도 신중한 성격의 소유자였던 것 같다.


‘테라가타’에는 수부티가 읊었다고 하는 다음과 같이 게송이 전해진다.
“나의 정사는 쾌적하다네. 지붕은 잘 이어지고 바람도 들어오지 않는다네. 천신이여, 마음껏 비를 뿌리게나. 내 마음은 평온하며 해탈했다네. 나는 항상 노력하고 있다네. 천신이여, 비를 뿌리게나.”


▲이자랑 박사
얼마나 자유롭고 평안한 경지이기에, 또한 얼마나 확고한 자신감과 만족감을 느꼈기에 이런 게송이 나올 수 있는 것일까. 게다가 이런 상태에서조차 정진 노력하는 성실함을 놓아버리지 않는 수부티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며 정진 노력하는 수행승으로서 그가 보여준 이런 모범적인 삶이야말로 훗날 대승경전에서 공을 설하는 부처님의 대화상대로 그를 등장시키게 한 원동력일 것이다. <끝>
 

이자랑 박사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 전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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