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조문 방북을 둘러싼 논란이 아직도 일고 있다. 정부의 애매모호한 행보 때문이다.
‘국민정서를 고려해 정부 차원 조문은 않되, 민간 차원 조문은 제한된 범위에서 허용해 북한 주민을 위로한다’는 게 정부의 조문 정책 골자다. ‘제한된 범위’라는 것도 알고 보면 너무 제한하고 있어 폐쇄에 가까울 정도다.
여야정당과 종교계, 시민사회단체가 골고루 참여한 민화협 조문에 대해서도 반대하고 있는 행태가 이를 방증한다. 조문 정책에 관한 한 ‘열어 놓은 것도 아니고 닫아 놓은 것’도 아니다. 한마디로 ‘같기도’다.
현 정부의 행보를 통해 읽을 수 있는 건 하나. 아직도 정부는 유연한 대북정책을 펼칠 의사가 없다는 것이다. 정부가 표명하고 있는 ‘국민정서’는 이른바 보수진영에서 나오는 일부 정서일 뿐이다. 한 보수 신문에서 내 놓은 여론조사에서도 ‘정부가 북한 당국에 조의를 표하는 것’에 65.4%가 찬성했다. 왜 찬성하는가. 김정일 사망이 정말 안타까워서? 아니다. 경색된 남북관계가 풀려지기를 희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중국은 당 서열 1위부터 지도부가 줄줄이 조문하고 있다. 이런 식이면 남북관계는 더 악화일로로 치닫고, 북한과 중국은 더욱 돈독해질 뿐이다. 미국과 일본도 관계 개선을 위해 문을 열고 있다. 우리만 고립되고 있다.
평화재단 이사장 법륜 스님의 일언에 귀를 기울여 보라. ‘지난 4년간 북한을 고분고분하게 만들겠다고 했다. 아이들 게임버릇 고치는 것도 어려운데 하물며 남의 나라 버릇을 고친다는 게 가능한 일인가.’ ‘실용정부’의 지난 행적을 보면 국가적 실리는 차치하고라도 정치적 실리도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 조문정치 하나도 ‘같기도’로 일관하니 어떤 실리를 챙길 수 있겠는가.
지금이라도 시대착오적 발상을 깨야 한다. ‘김정일 사망과 함께 냉전의 산물인 과거를 과감하게 묻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야 한다’는 법륜 스님의 메시지는 한 스님의 뜻이 아닌 국민의 뜻임을 정부는 새겨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