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진일(上辰日)은 정초십이지일의 하나로 ‘첫용날’이라고 부른다. 농사를 생업으로 살아온 옛 선조들은 용을 물에 살며, 물을 지키고 비를 관장하는 수호신으로 묘사했다. 이런 까닭에 비가 많이 내려 풍족한 수확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용신을 잘 섬겨야 한다고 믿었다.
이날 아낙들은 새벽시간에 용이 내려와 우물에 알을 낳는다는 속설에 따라 아침 일찍 물동이를 이고 우물에 물을 길러 간다. 이 물로 밥을 지으면 풍년이 들고 머리를 감으면 머리카락이 용과 같이 길어진다고 한다. 이를 ‘용알뜨기’라고 부른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황해도와 평안도에는 보름 전날 밤 닭이 울 때를 기다려 집집마다 바가지를 가지고 서로 앞 다퉈 우물에서 정화수를 길어온다. 맨 먼저 물을 긷는 사람이 그해의 농사를 제일 잘 짓는다”고 전한다.
음력 정월 대보름에는 액막이를 위해 ‘어부슴’을 행한다. 대보름 아침에 사람들은 흰 종이에 밥을 싸서 새해 운수가 대통하기를 빌며 물에 던져 넣는다. 이때 밥은 다름 아닌 용신에게 바치는 공양이다. 이와 유사한 ‘용궁맞이’는 정월 14일 저녁, 한강변과 용궁당에서 부녀자들이 장수와 액막이를 위해 용신에게 공물을 바치는 풍속이다.
또 정초에 집터를 지켜준다는 지신(地神)에게 고사를 올리고 풍물을 울리며 축복을 비는 지신밟기를 행할 때 지역에 따라 마을 우물에서 용왕굿을 치기도 했다. 평택농악의 경우 우물에 가서 “물줍소. 물줍소. 사해용왕 물줍소. 동해물도 땡기고 서해물도 땡겨서 맑은 물만 출렁출렁 땡겨줍소”라고 기원하는 것도 이런 풍속에서 유래했다. 또 섣달 그믐날 우물에다 촛불을 켜놓고 밤새워 설을 맞는 풍속도 물에서 솟아오르는 용처럼 힘찬 한해를 바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동지를 전후해서 농촌에서는 ‘용의 밭갈이’ 혹은 ‘용갈이’라고 불리는 농사점으로 한해의 풍흉을 알아본다. ‘동국세시기’에서는 “충청도 홍주 합덕지에 매년 겨울이 되면 용이 땅을 가는 이상한 변이 있다. 그 갈아 젖힌 것이 남쪽에서 북쪽으로 향하여 있으면 풍년이 들고, 서쪽에서 동쪽으로 향하여 있으면 흉년이라고 한다”고 전하고 있다.
김규보 기자 kkb0202@beop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