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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보신문 새해특집-가족] 가족포교사 1호 장송기·윤경숙 부부

  • 새해특집
  • 입력 2012.01.04 16:47
  • 수정 2012.01.05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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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사 기로에서 돌아온 아내, 부처님처럼 모셔야죠

2001년 포교사고시 나란히 합격
아내 정보살, 이듬해 사고로 중태
1년 후 회복…진정한 도반 거듭나

 

 

▲ 서로를 보는 시선에 신뢰와 사랑이 듬뿍 묻어나는 장승기·윤경숙 부부 포교사. 부부는 '매주 함께 사찰을 참배하고 봉사·포교에 전념하는 시간들이 정말 소중하다"며 행복한 웃음을 전했다.

 


어둠이 내려앉은 고요한 새벽, 중환자실 한 켠에서 쪽잠을 자던 장송기(55, 도정) 거사가 화들짝 놀란 듯 잠에서 깼다. 불안한 마음을 뒤로하고 희미한 불빛을 더듬었다. 아내 윤경숙(51, 정각행) 보살이 병상에 미동 없이 누워있다. 황급히 심장박동을 체크하는 기계로 시선을 돌렸다. 화면에 깜빡이는 수치를 확인하고서야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규칙적인 기계음은 그가 깜빡 잠든 사이에도 아내가 잘 버텨줬다는 증거다. 식은땀을 닦아내며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하루하루가 견디기 힘들 만큼 아슬아슬하다. 머리맡에 놓인 ‘금강경’을 손에 들었다. 그리고 오늘 하루도 무사히 지나기를, 또 가능하다면 언젠가는 다시 아내와 함께 집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발원했다.


아내가 혼수상태에 빠진 지 13일이 지났다. 그도 벌써 며칠째 회사 근무를 마치면 중환자실을 찾아 아내 곁 보조침대에서 밤을 지샌다. 움직임 없는 아내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이내 눈앞이 뿌옇게 흐려진다. 더 아껴주고 사랑해줬어야 했지만 그러질 못했다. 회한이 사무쳤다. 머리에 붕대를 감고 각종 기계에 의지해 얕은 숨만 내쉬는 아내의 손을 꼭 잡았다.


벌써 10년 전 일이다. 2002년 7월, 윤경숙 보살은 직장에서 퇴근하던 중 갑작스런 교통사고를 당해 중태에 빠졌다. 머리부터 온몸이 성한 곳이 없을 정도로 심각한 상황. 병원에서는 예후를 가늠할 수 없다며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다. 윤 보살은 대수술 후 13일간 혼수상태에 빠졌다. 당시 장송기 거사는 아내가 입원해 있는 전남대병원에서 200m 떨어진 전라남도청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넋이 빠진 채 휴직을 하려 했으나 직장에서 사정을 알고 일정부분 배려를 약속했다. 낮에는 도청에서 일을 하고 퇴근하자마자 병원을 찾아 밤새 아내 곁을 지키는 일상이 지속됐다. 아내의 혼수상태가 이어진 이 13일은 장 거사에게 평생 가장 끔찍한 시간으로 기억된다. 매일 병원에서 밤을 보내며, 불안한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장송기 거사는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절대 버틸 수 없을 것”이라며 “매일매일 눈을 뜨는 것이 무섭고 어떻게 또 하루를 살아가야 할지부터 생각했다”고 전했다.


원망하는 마음도 컸다. 왜 하필 내 가족에게 이런 일이 생긴 건지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하물며 아내는 평생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 노력하며 살았다. 오히려 신심 깊은 불자로 불교공부에 매진하며 남몰래 선행을 베푸는 타입이었다. 부처님 법을 잘못 공부했나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부부는 늦깎이 불교신자였다. 특히 장송기 거사는 개신교 신자로, 군대에 입대하기 전에는 기독교 청년회 활동도 활발하게 했었다. 윤경숙 보살도 미션스쿨을 졸업하고 별다른 종교 인연 없이 살아왔다. 공무원과 농협직원으로 만나 1년 연애 후 부부의 인연을 맺을 때까지도 종교는 그리 중요한 사항이 아니었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아내가 먼저 불연을 맺게 됐다. 2000년경, 차를 타고 지나가다 접한 강진불교대학 모집공고를 보고 입학원서를 낸 것. 윤 보살은 뒤늦게 찾아온 불연에 푹 빠져들었다. 2년간 지각 결석 없이 수업에 동참하는 것은 물론, 강의를 녹음해 이동 중에 반복해 듣거나 매일 새벽 한두시간 일찍 일어나 기도하고 공부하는 등 열성으로 임했다.


그러는 과정에서 장 거사도 부처님 가르침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식탁에서 공부하던 아내가 교재를 펴둔 채 출근하면, 장거사가 출근 준비를 하다 자연스레 교재를 읽으며 불교를 공부했다.


“기독교에 회의를 느낀 계기가 바로 삶과 죽음에 대한 교리를 납득할 수 없기 때문이었어요. 생각이 다르다보니 믿음이 생기지 않았고 자연스레 멀어졌죠. 그런데 우연히 아내의 책을 훑어보다 불교가 정말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종교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특히 연기법에 깊은 감명을 받았지요.”


장 거사는 불교가 기복적이고 고리타분한 종교라고 생각했던 편견이 깨지면서 불교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아내와 함께 포교사 고시를 준비했다. 2001년 포교사고시에 당당히 합격, 이듬해 부부는 나란히 조계사에서 품수를 받고 광주전남포교사단 소속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당시 부부는 ‘전국 제1호 가족포교사’로 불교계의 관심을 받기도 했다.


앞으로 부부가 함께 봉사도 하고, 사찰에서 신행생활도 이어가며 부처님 법을 따르는 도반으로 살아가고자 다짐도 했다. 성격이 맞지 않아 다투던 부분들도 서로 이해하고 맞춰나가자고 생각했다. 그런데 몇 달이 채 지나지 않아 윤 보살이 사고를 당한 것이다.


악몽같은 13일이 지난 후, 윤경숙 보살의 의식이 돌아왔을 때 장 거사는 감사한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부처님에게, 또 아내에게, 세상의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 그리고 환희심으로 가득했다. 부처님의 가피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의식은 돌아왔지만 윤 보살은 이후 1년이 넘는 시간을 병원에서 보냈다. 교통사고의 후유증도 컸다. 아내는 신체의 왼쪽이 거의 마비되다 시피 했고, 눈도 점점 나빠져 실명까지 갔다. 2004년 퇴원을 했지만 직장으로 돌아가지는 못했다.


“병원에 있었던 1년이 기억 속에 없어요. 말 그대로 죽었다 살아난 셈이지요. 힘든 시기 곁을 지켜준 남편에게 정말 감사합니다. 남편 덕분에 재활의지도 더 강하게 다졌거든요.”


윤 보살은 남편의 권유로 매일 아침 108배를 했다. 굳은 다리로 절 한번 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108배 하는 데만 반나절이 걸릴 때도 있었다. 108배를 하면서 서서히 다리에 힘이 생기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다리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장 거사는 사찰에 가서 절을 할 것을 권유했다. 광주 무각사를 찾아 108배를 시작했다. 남편과 함께하는 날에는 집에서 두 시간을 걸어 무각사까지 갔다. 절수행을 재활치료 삼다보니 신심도 절로 깊어졌다. 부처님에 대한 존경심이 한없이 솟았고, 포교사 고시를 준비하면서 익힌 불교교리들이 그 자체로 깨달음이 되어 체화되기 시작했다. 마음이 점차 편해지고 안정을 찾아갔다.


장  거사는 “예전엔 저나 아내 성격이 좀 강한 편이었는데 이일을 겪은 후로 많이 달라졌다”며 “저는 사소한 것에 감사하기 시작했고, 아내도 마음이 넓어지고 참 많이 유해졌다”고 전했다.


그 무렵 윤 보살에게 광주전남포교사단 간사소임을 맡아 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다. 처음에는 거절했다. 몸 상태가 좋지 않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주위의 격려와 관심으로 결국 간사를 맡게 됐고, 지금까지 7년간 한 자리를 지켜오고 있다.


매주 주말이면 장 거사가 사무실을 찾는다. 부부가 나란히 책상 앞에 앉아 광주정남포교사단의 향후 활동계획에 대해 논의하고, 자료를 정리한다. 쉬는 날도 거의 없다. 둘 다 포교사인데다, 한명은 간사 소임까지 맡고 있어 봉사부터 신행, 순례 등 모든 포교사단 일정에 부부가 함께한다.


부부는 오히려 “데이트하면서 신행생활도 하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고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운다. 모든 일을 부부가 함께하다 보니 자연히 대화도 많아지고 사이도 훨씬 돈독해 졌다고. 서로 마주보는 시선에 신뢰가 가득하다. 눈이 마주치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웃음이 스민다. 두 사람이 내뿜는 행복 바이러스에 함께있는 사람들까지 마음이 훈훈해진다.


인터뷰를 마치고 포교사단 사무실을 나서니 흰눈이 소복이 쌓여있다. 뒤를 돌아보니 부부가 손을 꼭 맞잡고 걸어온다. 윤보살의 다리가 아직 완쾌된 것은 아니라서 함께 걸을 때는 장거사가 항상 곁에 서서 손을 꼭 잡아준다고. 아내의 손을 꼭 붙잡고 조심조심 걸어오는 장 거사의 모습이 더할 나위 없이 든든하다.


문득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시선만 마주쳐도 서로의 마음을 아는 이들 부부는 도대체 얼마나 깊고 깊은 인연으로 만났을까 싶다. 서로 사랑하는 마음을 기반으로 함께 봉사하고 수행하며 부처님을 닮아가고자 한발 한발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이들 부부의 앞날에 행복만이 가득하길 발원해본다.
 

광주=송지희 기자 jh35@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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