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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창진 신부의 가까이서 뵌 지관 스님

기자명 법보신문
  • 추모특집
  • 입력 2012.01.05 15:15
  • 수정 2012.01.11 16:42
  • 댓글 0

‘밥 한 번 먹자’던 스님의 미소 그립습니다

방송을 통해 부음을 듣고 먼저 떠오른 지관 스님의 모습은 “홍 신부! 언제 밥 한 번 먹자”라며 바라보던 맑은 미소였다.


나는 대략 13년 전부터 8년 간 7대 종교협의체에서 천주교 실무 대표로 일한 적이 있었고 그 때 그 협의체의 상임대표이셨던 지관 스님을 지근거리에서 자주 모신 경험이 있다. 그 당시 7대 종교 대표님들은 큰 행사에나 오시고 거의 모든 일은 각 종교의 실무 대표들이 수행했다. 그 때는 남북 교류에 7대 종교가 모두 적극 참여할 때라 실무를 맡았던 나로서는 보통 일이 많은 게 아니었다.


어느 날 지관 스님은 분주하게 현장을 누비는 나를 보시곤 일부러 가던 길을 멈추시고 팔을 당겨 조용히 귀속 말을 주셨다. “홍 신부! 언제 밥 한 번 먹자.” 격려의 말씀치곤 참 따뜻하고 기분 좋은 말씀이었다. 그러나 그 약속을 직접 실행하시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조계종 총무원 사서실에서 전화가 왔다. 총무원장 지관 스님께서 식사를 하고자 하시는 데 언제가 좋겠느냐는 것이었다. 날짜를 세 개씩이나 주시며 편안한 시간을 고르라는 것이었다. 혹시 다른 종교의 실무 대표도 초대하는 것이냐고 물으니, 홍 신부님하고만 식사를 하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원장 스님께서 식단도 홍 신부님가 원하는 대로 준비할 테니 맘에 드는 것으로 주문하라고 특별히 당부하셨다고 했다. 고기를 원하면 고기도 좋고, 회를 원하면 회도 좋다고 하셨다.


참으로 감개무량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대한민국 불교의 가장 큰 어른이신 스님께서 젊은 신부하고 지나가면서 한 약속, 빈 말이라고 해도 아무도 서운해 하지 않을 약속인데도 그것을 지키시겠다며 전화를 주셨다고 생각하니 너무 감격스럽고 존경스러웠다.


“한 달 모두 비우고 기다리겠습니다. 스님께서 원하시는 날 찾아가 뵙겠습니다. 식단은 스님께서 즐기시는 음식이 저도 좋습니다”라고 말씀 드렸다. 그리고 스님을 뵈었다. 그 특유의 미소로 환대해 주시면서 절 음식들을 하나하나 설명해 주시며 즐거워하시던 모습이 아직도 선하다.


그 날 스님께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셨다.


“홍 신부가 생각할 때 불교의 장점 한 가지와 단점 한 가지가 무엇이라고 보는가?” 스님께서는 권위를 내려놓으시고 이웃 종교의 젊은 신부에게 무언가 들으시려 하시는 것 같았다. 이 질문을 던져 놓으시고 내 대답을 기다리시는 그 진지한 모습이 지금까지도 잊혀지지 않는다.


“천주교의 장점이 불교에서는 단점이고 불교의 장점은 천주교의 단점인 것 같습니다. 천주교는 개인 신부가 자율적으로 비영리사업을 일구기가 어려운 반면 스님들은 뜻만 있으면 언제든 할 수 있는 자유가 부럽습니다. 반면 신부들은 신부가 되는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천주교 교구 재단이 의식주를 전적으로 책임져 주는데 불교는 스님들의 생활을 각자 알아서 책임지지 않습니까?” 라고 말씀 드렸다.


미소를 지으시며 “그러면 그런 단점은 어떻게 개선해야 가능하겠느냐”고 물으셔서 “천주교처럼 각 절에서 공납금으로 수입의 반을 총무원에 내라 하시고, 그 기금으로 모든 스님들의 생활을 책임져 주시게 하면 되지 않을까요”라고 말씀 드렸더니, 아주 크게 웃으시며 “좋은 생각이긴 한데…”라고 말씀하시며 더 이상의 말씀은 하지 않으셨다. 지금도 지관 스님께서 어떤 뒷말을 가지고 계셨는지 궁금하다.


“지관 스님! 스님께서 제 생각에 동의하시며 더 말씀하고 싶은 말씀은 무엇이었습니까.” 그 답을 이제는 더 이상 들어볼 수 없다는 생각에 슬픔이 가슴에 어린다.


▲홍창진 신부
스님의 미소만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따뜻해진다. 인자하고 환한 그 웃음을 잊을 수 없을 것만 같다. 부디 극락왕생하시기를. 스님! 사랑합니다. 그리고 항상 감사했습니다.


여주 점동성당 주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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