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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께서 걸으신 그 길이 한국불교 역사였습니다”

  • 추모특집
  • 입력 2012.01.09 13:52
  • 수정 2012.01.11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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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세납 80·법랍 66세…6일, 해인사서 다비

"무상한 육신으로 연꽃을 사바에 피우고
허깨비 빈 몸으로 법신을 적멸에 드러내"

                                      -사세게 중에서


“다비식 간소하게” 당부…정부, 금관훈장 추서

 

 

▲지관 스님

 


대강백으로, 종교지도자로 치열한 연구열과 넉넉한 웃음으로 세상에 큰 족적을 남겼던 전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 스님이 1월2일 원적에 들었다. 평생토록 먼지 쌓인 고서(古書)를 손에서 놓지 않아 운명처럼 천식을 앓아오던 스님은 지난해 9월, 병이 악화돼 서울 삼성병원에서 수면치료를 받았으나 회복하지 못하고 결국 서울 경국사에서 세납80세, 법랍66세로 깊은 적멸에 들었다.


어릴 때부터 잔병으로 고생했던 지관 스님은 탁발승의 법문을 듣고 16세 때인 1947년 합천 해인사에서 당대 최고의 율사로 칭송 받던 자운 스님을 은사로 불문에 들었다. 출가 이후 봉암사 결사에 은사 자운 스님과 함께 참여했으며, 울릉도 성인봉 주사굴에서 홀로 생식정진(生食精進)하는 등 백척간두의 수행을 이어갔다. 스님은 특히 교학에 남다른 능력을 보였다. 1960년 33세라는, 당시로는 최연소의 나이에 해인사 강주를 맡았다. 뜨거운 열정과 물 흐르듯이 막힘없는 강의는 일제를 거치며 가는 실처럼 겨우 명맥만을 이어오던 불교교학에 신선한 공기를 불어넣었다. 특히 동국대 승가학과 교수 및 동국대 총장을 역임하며 한국 금석학의 새 지평을 열었다. 또 계율학에 있어 독보적인 학문적인 업적을 쌓았다. 스님은 1990년 말 가산문화연구원을 개원하고 한국불교 최초의 불교대백과사전인 가산불교대사림 집필을 시작했다. 평생의 학문적 역량이 축적된 필생의 대역사였다. 지금까지 12권을 완성했으며 앞으로 나올 내용도 이미 집필을 끝낸 상태. 15만 항목 분량의 세계 최대 불교사전이다.
스님은 종무행정에도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 2005년 조계종 총무원장에 취임한 스님은 누구도 이루지 못한 종단사태 징계자에 대한 대사면을 단행했다. 특히 MB정부의 출범 이후 계속된 종교편향에 대해 ‘인평불어 수평불류’(人平不語 水平不流, 사람이 불편부당하고 공평무사하면 어느 누구도 그 사람에게 불평하지 않게 되고 흐르는 물도 평탄한 곳에서는 조용히 머물게 된다)라는 말로 준엄하게 경책 한 뒤 불교 자주권 수호를 위한 범불교대회를 여는 강단을 보여줬다. 범불교대회를 앞두고 대통령의 전화를 두 번이나 거절한 일은 원칙과 소신에서 한 치의 물러섬이 없는 스님의 고원한 정신세계를 보여준 일화로 널리 회자되고 있다.


스님은 수면 치료에 앞서 입적을 예감한 한 듯 문도들에게 친필의 ‘사세게(辭世偈)’를 남겼다. 사세게는 세상을 떠나기 전에 마지막 남기는 글로 서산대사가 묘향산 원적암에 있을 때 자신의 영정에 직접 쓴 ‘팔십년 전에는 그가 나이더니/팔십년 후에는 내가 바로 그이로다’라는 구절을 인용해 삶의 소회를 밝혔다. 또 이날 6월12일 80세 생일을 맞아 작성한 유훈장도 공개했다. 화환을 받지 말고 다비식을 검소하게 치르라는 당부와 함께 가산불교문화연구원의 가산불교대사림 발간사업이 중단되지 않도록 노력해 달라는 비원이 담겼다. 스님은 수면치료 후 비록 말은 할 수 없었지만 입적 전까지 후일을 묻는 제자들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거나 눈짓으로 마지막까지 스승으로서의 자애로움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1월6일 스님의 법체는 해인사 다비장에서 너울거리는 불꽃 따라 지수화풍(地水火風)으로 흩어졌다. ‘무상한 육신으로 연꽃을 사바에 피우고 허깨비 빈 몸으로 법신을 적멸에 드러내네’라던 스님의 사세게 구절 그대로였다. 정부는 지관 스님의 장엄했던 삶의 업적을 기려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했다.


스승과 제자로 오랜 숙연을 이어 온 정병삼 숙명여대 교수는 “마지막 찾아뵌 병실 탁자 위에서도 빨갛게 교정된 스님의 원고를 보았다”며 “스승의 참모습을 보여주는 숙연한 광경이었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김형규 기자 kimh@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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