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관 스님이 걸어온 길
지관 스님이 걸어온 길
  • 권오영 기자
  • 승인 2012.01.09 14: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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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학 최고 권위자…한국불교 중흥 견인

한국불교 대표적 강백으로
‘고승비문’ 등 수많은 저술

 

징계자 사면·범불교대회 등
종단화합·불교자주권 수호

 

 

▲2009년 10월30일 조계종 총무원장 퇴임식을 마치고 사부대중의 축하를 받으며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을 나서고 있는 지관 스님.

 

 

지난 1월2일 원적에 든 조계종 전 총무원장 지관 스님은 불학연구의 최고 권위자이자 종교지도자로 한국불교의 중흥을 견인해 온 선지식이었다.


지관 스님은 1932년 포항 청하면 유계리의 시골마을에서 태어나 16세 때인 1947년 합천 해인사에서 당대 최고의 율사로 칭송 받던 자운 스님을 은사로 득도했다. 1947년 성철·청담·보문·우봉 스님 등이 주도한 봉암사 결사에 은사 자운 스님과 함께 참여하기도 했으며 이후 울릉도 성인봉 밑 주사굴에서 생식정진(生食精進)을 했다. 또 한국전쟁 때는 포항 보경사 용화선원 등에서 쉼 없는 정진을 이어갔다. 이후 근대 한국불교의 대강백이었던 운허 스님 문하에서 수학한 것을 계기로 본격적인 강백의 길을 걸었으며 20대였던 1959년 밀양 표충사 강사를 시작으로 대구 동화사 강원 등에서 명강의로 학인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다. 특히 1960년 서른세 살이라는 최연소의 나이에 해인사 강주를 맡으며 이후 10여년간 후학들을 지도하면서 수많은 전승 교학의 주석서를 찬술하기도 했을 만큼 경전에 대한 탁월한 이해와 해박한 지식은 평범을 넘어선 경지에 있었다.


스님은 1975년 동국대 승가학과(불교학과의 전신) 전임강사에 임명된 이후 1990년대 후반까지 동국대 교수로서 후학을 양성하며 수많은 논문과 저술을 남겼다. 특히 한국고승들의 비문을 정리한 ‘교감역주역대고승비문’과 ‘한국고승비문총집’ 등의 불멸의 저서는 한국 금석학 연구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 1986년 동국대 제11대 총장으로 선출되면서 종립교육도량의 진흥에 헌신하기도 했다.


자운 스님의 율맥을 전승한 스님은 ‘남북전육부율장비교연구’, ‘비구니계율연구’, ‘한국불교계율전통’, ‘선종약사’, ‘조계종사’ 등 율장과 교단사를 정리한 수많은 저술을 통해 한국불교의 정체성 연구를 위한 토대를 마련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1990년대 후반부터 한국불교 최초의 불교대백과 사전을 마련하겠다는 원력을 바탕으로 현재까지 ‘가산불교대사림 1~12권’을 집필하는 등 대역사를 진행해 오던 중이었다.


이런 학술적 공로가 세상에 알려지면서 지관 스님은 1969년 고암 종정 스님으로부터 ‘종단교육공로 표창장’을, 2001년 혜암 종정 스님으로부터 ‘한국고승 비문역주 및 불교문화현창공로상’을 받았으며 2001년 10월 김대중 대통령으로부터 대한민국 은관문화훈장을 서훈 받았을 뿐 아니라 2001년 조계종 포교대상, 2005년 만해학술대상 등을 수상하는 등 한국불교의 대표적 학승으로서 아름다운 향기를 남겼다.


총무원장 땐 불교사회활동 매진


지관 스님은 학술적 공로 외에도 30대의 나이에 해인총림 해인사 주지 소임을 맡는 등 종무행정에도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1970년 최연소로 법보종찰 해인사 주지를 맡아 대중을 외호했던 지관 스님은 같은 해 조계종 제3대 중앙종회의원, 1972년 중앙종회 부의장, 동국학원 이사 등에 선출됐다. 또 1973년 긴급중앙종회에서 총무원 총무부장에 선출됐으며 이후 법규위원, 재심규정위원 등 많은 종무행정직을 맡기도 했다.


스님은 2005년 조계종 제32대 총무원장에 당선되면서 학승의 이미지를 벗고 안정된 행정력으로 종단의 중흥과 사회 계도를 위해 앞장섰다. 총무원장 4년 임기 내내 종단의 안정과 화합, 수행풍토 진작을 역설하면서 솔선수범했으며 취임초기 1998년 종단사태 징계자에 대한 대대적인 사면을 시행해 대립과 갈등에서 벗어나 화합의 새 시대를 열었다. 또 도의조사 선양 사업을 비롯한 종단 정체성 확립, 대중결계와 포살 시행 등 수행종풍 진작은 남다른 업적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런가하면 취임식과 함께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을 개원한 지관 스님은 조계사 성역화 불사를 비롯해 한국불교 중흥을 위한 외형을 새롭게 구축하는 데에도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한국불교문화의 진수를 대중화하기 위해 템플스테이통합정보센터와 각종 연수시설을 구비한 태화산 전통불교문화원, 국제선센터, 조계사 시민선원을 속속 개원해 침체된 한국불교의 ‘하드웨어’를 차곡차곡 구축해 나갔다. 지관 스님은 또 역대 어느 집행부보다 불교계의 대사회적 활동과 복지에 비지땀을 흘렸다. 불교계 최초의 공익법인 ‘아름다운 동행’을 출범 시켰으며 이주노동자 및 다문화가정지원 등에도 남다른 관심을 두기도 했다.


스님은 총무원장 재임시절 불교의 자주권 수호에도 큰 발자국을 남겼다. 지관 스님은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고위공직자들을 중심으로 종교편향이 터져 나오자 “인평불어 수평불류(人平不語 水平不流, 사람이 불편부당하고 공평무사하면 어느 누구도 그 사람에게 불평하지 않게 되고 흐르는 물도 평탄한 곳에서 조용히 머물게 마련이다)”라는 말로 정부를 경책해 사회적으로 크게 회자되기도 했다. 또 2008년 범불교도 대회를 앞두고 이명박 대통령의 전화를 두 번이나 거절할 정도로 소신과 원칙에 있어서는 결코 물러서지 않는 강단을 보여줬다.

 

결계·포살로 수행종풍 진작


지관 스님은 평생을 율사이자 학승으로서 자신에게는 늘 엄격하면서도 대중들에게는 온화함을 잃지 않았다. 총무원장 재임시절 70대 후반의 나이였지만 단 한 차례도 오전 9시에 출근해 오후 5시에 퇴근하는 일상을 거르는 일이 없었고, 한 번 정한 약속은 어김없이 지켰다. 한 번 믿고 맡긴 소임자에 대해서는 무한한 신뢰를 보냈고, 비록 업무적 실수가 있었더라도 질책보다는 격려를 보냈다. 또 총무원 청사를 경비하는 직원에서부터 재가종무원에 이르기까지 자칫 소외될 수 있는 종무원들에게도 늘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이런 까닭에 지관 스님은 지근거리에서 모셨던 종무원에서부터 일반 재가신도, 이웃종교인, 정치인 등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그러나 스님은 그럴 때면 언제나 “나는 별로 한 게 없다”는 말로 공을 돌렸고, 대신 “사부대중 모두 주어진 역할에 충실해 한국불교 발전을 위해 함께 최선을 다해 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지관 스님은 지난해 5월 본지와의 마지막 인터뷰에서도 “따를 선지식이 없다고 말하는 젊은이와 믿을 만한 후배가 없다고 말하는 스승이 있다면 서로에게 모두 불행한 사태다. 미래를 맡길 만한 후배가 있다고 말하는 선지식이 많아지고, 따를 만한 스승이 많다는 후학들이 우후죽순처럼 많아진다면 불교 중흥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며 후학들에게 서로 화합할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권오영 기자 oyemc@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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