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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연재를 시작하며

보살, 기복불교 편견에 가려진 여성신행 진면목

한국여성, 승단 외호·지탱하는 지지기반
1700년 불교역사 속 여성 재가불자 조명

 

 

▲일러스트레이터=이승윤

 


대승불교의 핵심은 여래장(불성) 사상과 보살사상이다. 즉 누구든지 성불(成佛)하겠다는 서원을 일으켜 보살의 길로 나아간다면 그 사람이 바로 보살이며 미래에 깨달음을 얻을 부처라는 것이다.


때문에 대승불교에서 보살은 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 중생을 구하는 이상적 인간상이자, 중생들이 깨달음에 도달하기 위한 실천적 목표이기도 하다.


본래 보살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과거세에, 무수한 이타행으로 공덕을 닦던 시절의 인물을 지칭한다는 점에서 중생이 지향해야 할 모델이기 때문이다.


불교학자들에 따르면 부파불교에서 보살은 붓다를 지칭하는 신성하고 존귀한 용어로 사용됐으며, 대승불교에서 새롭게 해석되어 불자들이 지향하는 인간상으로 자리매김했다. 

 

‘보살’호칭엔 여성비하 담겨
본연의 의미부터 되찾아야


그렇다면 한국불교에서 ‘보살’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 한국불교에서 보살은 극명한 차이를 보이는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된다. 불교도가 지향하는 이상적 인간상 및 신앙의 대상으로서 ‘보살(Bodhisattva)’과 여성불자를 통칭하는 호칭으로서의 ‘보살’이 바로 그것이다.


후자의 보살은 근기가 낮고 기복적인 신행을 하는 여성을 비하하는 뜻도 내포되어 있다는 점에서 보살의 본래 뜻과는 완전히 다른 의미를 지닌다. 사찰에서 스님이 나이지긋한 여성신도에게 “어이, 보살!”하며 하대하는 모습은 과거에는 물론, 지금까지도 종종 만날 수 있는 광경이다. 여성 불자들에게 흔히 사용하는 ‘보살’이라는 호칭 속에서 그 본연의 의미는 이미 퇴색된 지 오래다.


흔히 여성불교를 칭할 때 등장하는 ‘보살불교’라는 용어에 담긴 속뜻을 살펴보면 안타까움이 더한다.
보살불교는 ‘치마불교’와 함께 여성불교 비하의 뜻을 내포한 대표적인 단어로, 그 속에는 여성 불자들의 신행이 기복적이고 비불교적이라는 편견이 뿌리깊이 내재돼 있기 때문이다.


이 편견에 따르면 ‘보살’로 통칭되는 여성 불자들은 내 가족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 부처님께 기도한다. 깨달음을 구하고 뭇중생을 구체하기 위해 용맹정진하기보다 내 가정의 화목과 내 자식의 대학입시, 내 남편의 승진, 내 사업의 번창을 위해 기도하고 천도재를 지내며 불사에 동참한다. 근기가 낮고 불교의 참된 가치와 진리를 바로보지 못한 채 기복에만 사로잡혀 있는, 다분히 가족이기주의적이고 어리석은 신행의 모습이 바로 치마불교, 보살불교의 이미지를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여성불자들의 신행은 정말 기복적이고 비불교적일까. 또 기복은 잘못된 것이고 비판받아야 할까.
조계종 교수아사리 명법 스님은 최근 불교여성연구소가 주최한 ‘여성신행의 재조명’주제 학술토론회에서 “기복불교 비판은 남성 엘리트주의적 입장에서 젠더화됐고 이 과정에서 한국불교 발전에 기여한 여성들의 공로도 인정받지 못했다”고 지적한 바 있다.


기복불교에 대한 비판이 사회적, 경제적, 제도적 측면에 대한 고찰 없이, 한국불교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여성에게 전가됐다는 설명이다. 특히 스님은 “기복은 종교행위의 가장 기본적인 양상으로, ‘복을 비는 행위’에 그치지 않고 ‘회향’으로 나아감으로서 ‘작복’의 요소를 지닌다”며 “기복이라고 해서 무턱대고 비판하는 것은 기복이 작복으로 나아가는 메커니즘을 이해하지 못하고 미신취급을 하는 잘못된 시각에서 비롯됐다”고 강조했다.


한국불교계의 ‘보살’에 담긴 이중적 의미를 통해 여성불자의 낮은 지위도 확인할 수 있는데, 이는 불교의 여성차별적 요소에서 비롯된 것으로 지적된다. 불교는 어떤 종교보다 양성평등적이지만, 일부 사상은 여성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인오장설(女人五藏設), 부처의 32상설 등에서 비롯된, 여성은 성불할 수 없다는 여인불성불(女人不成佛) 사상, ‘법화경’ 제바달다품에 나오는 변성성불(變性成佛, 용녀라는 여성이 남성으로 변해 성불) 등 불교의 여성차별 근거가 되는 몇가지 사상이 바로 그것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여성을 교단에 받아 들이는 조건으로 제시했다는 비구니팔경법(比丘尼八敬法)도 여성차별적인 요소로 꼽힌다.


그러나 이 사상들은 불교가 추구하는 궁극의 가치에 모순적이고, 비구니팔경법 또한 부처님 입멸 이후의 용어가 사용된 점 등을 미루어 볼 때 후대에 형성됐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분명한 것은 석가모니 부처님은 여성을 교단에 받아들여 남성과 동등한 수행자로서 깨달음을 추구할 수 있도록 했으며, 깨달음을 이룰 수 있는 당당한 주체로 여성을 인정했다는 것이다.

 

과거 한반도 불교 확산 토대
포교·봉사 활동으로 이어져


부처님은 마하파자파티 고타미가 석가족 여인 500명과 출가를 원하자 여성이 남성과 같이 성불할 수 있다는 점을 명확히 하고 받아들였다.


또한 부처님 입멸 이후부터 아쇼카왕 이전, 여성수행자 74명이 읊은 게송을 담은 ‘장노니게(長老尼偈)’에도 여성성불에 대한 의구심은 찾아볼 수 없다. 출가전 여성의 삶과 출가 후 치열한 수행의 고통, 해탈의 환희가 생생하게 기술돼 있을 뿐이다.


결국 여성신행에 대한 편견의 더께를 제거하면, 한국불교 1700년 역사 속에서도 진정한 보살의 길을 걸어간 여인들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역사의 보이지 않는 그늘 속에서 돈독한 신심으로 한국불교를 이끌어 온 여성들이 삶 속에는 진정한 의미의 ‘보살’이 살아 숨쉬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한국불교 역사에서 여성이 불교에 미친 영향은 적지 않다. 여성들의 깊은 신심은 삼국시대 전해진 불교가 한반도에 뿌리 깊이 스며들고 널리 확산되는 기반이 되었으며, 조선시대에는 정치적 위기 속에서 신앙으로 불법을 외호한 호법신장이 되기도 했다.


불교사가 남성중심으로 흘러왔기 때문에 그 속의 여성불교를 면밀히 찾아 살펴보기란 쉽지 않다. 그렇지만 그 속에는 진정한 보살의 길을 걸어왔던 여성들의 삶이 분명 녹아있다. 신라여성들은 불교수용의 주축이 되어 확산을 이끌었으며, 법흥왕비, 진흥왕비 등 왕실여성들의 잇따른 출가는 여성들의 신심이 얼마나 깊고 공고했는지를 대변한다. 특히 신라시대 진흥왕 37년에는 ‘승만경’이 전해져 상류층 여성불자들의 신앙에 모범이 되기도 했다.


‘삼국유사’ 불교 설화 속 여성불자들의 모습에서도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실존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사찰연기설화와 불보살의 영험담, 당대의 고승 이야기, 수행담 등을 통해 당시 여성들의 삶과 사회적 인식 등을 가늠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최선경 가톨릭대 교수에 따르면 불교설화에 등장하는 여성은 △불교에 귀의해 수행에 힘쓰고 불교를 전파하는데 큰 공을 세운 여성 △남성수행자를 깨우쳐 성불을 도운 여성 △고승의 어머니 △간절한 기도로 자식을 구하고 자기희생으로 다른이의 성취를 도운 여성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신라에서 가장 먼저 불교에 귀의해 불교확산을 이끈 사씨, 불탑을 싣고 가락국에 와 불법을 전한 아유타국의 허황옥 공주를 비롯해 노힐부득과 달달박박의 깨달음을 이끈 미모의 여인, 아들을 당대 고승으로 길러낸 아도, 자장, 설총, 원효의 어머니 등. 이들 여성들은 한결같이 돈독한 신심을 지닌 따뜻하고 자애로운 모습으로 묘사되고 있다.


고려시대 여성들은 신분의 상하귀천을 가리지 않고 여성들끼리 향도를 구성해 재를 올리고 등불을 켜는 집단적인 신앙활동으로 불심을 다졌다.


조선시대에 들어가면서 여성 불자들의 역할은 더욱 확대된다. 억불숭유의 시대에서 왕실여인들은 불법을 수호하고 이어오는 근간이 됐다.


이 가운데 강한 정치세력을 활용해 승과제도를 만들고 숭불정책을 편 문정왕후, 억불정책을 강하게 비판하며 ‘능엄경언해’ 등 불경확산을 이끈 인수대비, 명맥이 끊긴 고려시대 연등회 등 불교 정책을 다시 부활시킨 천추태후 등이 불교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는 더없이 명백하다. 또한 상류층 여성들은 나라와 집안의 평안을 기원하며 불화를 제작하고 사찰 불사를 이끌며 불교문화를 꽃피우는 주체가 되기도 했다.


현대사회에서도 여성불자들은 전법, 포교, 복지, 봉사 등 각 분야에서 활약하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널리 전하고 소외이웃을 돕는 보살행 실천에 앞장서고 있다.


조계종 직할봉사단 1990명 가운데 여성봉사자 수는 1592명으로 남성(408명)의 4배에 가깝다. 불교대학이나 시민선방을 살펴보면 여성불자들의 불교공부와 수행에 대한 관심 또한 남성불자에 뒤지지 않음이 확연히 드러난다. 여기에 전란으로 폐허가 된 많은 사찰을 재건, 창건한 주역 또한 보살들이다.


대승불교 보살사상의 근간은 바로 서원(誓願)과 회향(回向)이다. 간절한 불심으로 선근공덕을 쌓으며 깨달음을 구하겠다는 서원, 그리고 중생을 위해 헌신하고 그 공덕(功德)을 회향하는 보살의 모습은 바로 이러한 여성불자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보살의길’은 한국 여성불교가 기복이라는 편견의 틀을 넘어 ‘보살불교’의 진정한 의미를 드러내야 한다는 필요성에서 시작됐다.


이에 과거 불교를 지탱하고 이끌어 온 여성불자들의 삶을 재조명함으로서 ‘보살’의 참의미를 조명하고자 한다. 1700년 한국불교역사에서 사부대중의 한 축로서, 또한 승단을 외호하고 지탱하는 지지기반으로 존재하고 있는 여성재가불자를 발굴, 조명함으로서 기복이라는 편견에 갇힌 여성 불교의 진면목을 확인하기 위함이다.
 

jh35@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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