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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노파선(老婆禪)

기자명 윤창화

노파처럼 지나칠 정도로 세세하게 지도
오히려 동량이 될 재목 망치는 결과 초래

‘노파선(老婆禪)’이란 노파심(心) 즉 간절하고 자상한 마음으로 선을 지도하는 것을 말한다. 노파(할머니)의 마음은 아주 간절하고 자상하다. 노파의 눈에 비춰진 세상은 온통 걱정덩어리로 보인다. 하나 같이 물가에서 놀고 있는 어린애와 같아 보인다. 남의 일도 내 일 이상으로 생각한다. 고구 정녕한 마음, 그것을 노파심절(老婆心切)이라고 한다.


선어록에는 노파선이라는 말이 자주 나온다. 그 말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할머니가 손자를 생각하듯 아주 친절하고 자상하게 지도해 주는 것으로서, 이는 원래 의미 그대로 긍정적인 뜻이다. 다른 하나는 선의 핵심이나 고칙, 공안, 화두에 대해 필요 이상으로 너무 자세하게 알려 주는 것, 즉 너무 지나치게 많이 알려 준 결과 수행자로 하여금 실참(實參)할 필요가 없게 만들어 버리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다. 이는 부정적인 뜻이다.


이 두 가지 의미 가운데 선어록에서는 부정적인 의미로 쓰는 경우가 많다. 즉 좋은 의미로 쓰일 때는 친절과 자상함을 뜻하지만, 반대로 비판적인 의미로 쓰일 때는 ‘노파처럼 지나칠 정도로 너무 많이 세세하게 알려주어서 오히려 동량(棟梁)이 될 재목을 망쳐버리는 결과를 초래하였다’는 의미로 쓰인다.


부모가 자식을 기를 때는 마음은 그렇지 않지만 겉으로는 조금은 엄격하고 냉정해야 한다. “매를 아끼면 자식을 망친다”는 영국의 속담처럼 잘못을 해도 지적하지 않고, 자식이 해 달라는 대로 다 해 주다보면 자식을 망치게 된다. 초등학교를 졸업해도 숫가락질도 못하게 된다.


선승이 수행자를 교육시키는 방법도 그와 다르지 않다. 수행자로 하여금 스스로 공안이나 화두를 참구하여 깨달음을 얻도록 해야 하는데, 즉 화두를 참구하는 방법만 알려주면 되는데, 그만 노파심이 간절한 나머지 직접 실참(實參)을 통하여 알아야 할 것까지 다 알려 주어 버린 것이다. 그 결과 제자는 애써 참구할 필요가 없어진다. 불로소득 무임승차로서 아무런 감동이나 느낌, 마음으로 얻은 바가 없다. 노파심이 간절하여 매우 친절하고 자상하게 알려 주었지만, 결과는 역효과가 난 것이다. 수행자 지도를 잘못한 것인데, 노파선이란 이런 선승을 두고 하는 말이다.


다음은 이와 관련된 두 가지 공안(선문답)을 보도록 하겠다. 먼저 ‘무문관’ 제23칙 ‘불사선악(不思善惡)’ 공안 끝부분에 나오는 무문혜개(無門慧開, 1183~ 1260)의 평이다.


“무문이 말했다. 육조는 이 일에 있어서, 매우 성급하게 말해 준 것이다. 노파심이 간절했다고는 할 수 있으나 그것은 비유한다면 금방 따온 여지(支, 과일 이름)라고 하는 과일을 직접 껍질까지 벗겨 입에 넣어준 격이나 다름없다. 제자로서는 씹을 필요도 없이 목구멍으로 꿀꺽 넘겨버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無門曰. 六祖可謂, 是事出急家. 老婆心切. 譬如 新支 剝了殼去了核. 送在爾口裏. 只要爾嚥一嚥).”


노파심절로서 너무 자상하게 다 알려 준 결과, 수행자로 하여금 직접 참구할 필요가 없도록 만들어 버렸다고 평하고 있다. 제자에게 과일을 따 준 것도 지나친데, 게다가 손수 과일의 껍질을 까서 입에 넣어주기까지 하였으니 훌륭한 종장(宗匠)은 못 된다는 것이다.


다음은 ‘임제록’‘보화장’이다. “보화스님은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말했다. 하양스님은 갓 시집 온 새색시이고, 목탑스님은 노파선(老婆禪)이구만. 임제는 어린 사내 아이 같지만 탁월한 안목을 갖추고 있네(普化以手指云, 河陽新婦子. 木塔老婆禪. 臨濟小兒. 却具一隻眼).”

 

▲윤창화 대표

보화스님은 하양스님을 평하여 선을 모르는 애숭이이고, 목탑스님은 너무 고주알 미주알 말해주는 노파선승이라고 조롱한다. 이상 두 용례에서 본다면 노파선은 주로 비꼬는 말, 조롱하는 말, 비하하는 말로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윤창화 changhwa9@hanmail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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