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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607년, 760년, 837년… 1456년, 1531년, 1607년, 1682년, 1759년, 1835년, 1910년과 1986년. 이들 사이에 무슨 공통점이 있을까? 다른 해에 비하여 특별히 좋지 않은 일이 많이 일어났을까, 아니면 나라 안팎으로 상서로운 일들이 있었을까?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모두 핼리 혜성이 지구에 가장 가깝게 접근하여 보통 사람들의 눈으로도 관측할 수 있었던 해’이다. 그러면 두 번째 질문에 대한 정답은? 과학적 사고를 하며 합리적으로 세상을 볼 줄 아는 사람이라면, “좋지 않은 일과 상서로운 일이 골고루 있었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나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많은 사람들은 혜성, 특히 그 중에서도 가장 규모가 크게 느껴지는 핼리혜성의 출현을 이처럼 냉정하게 보지 못하였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혜성의 출현은 하늘에서 인간에게 보내는 신호·징조’로 해석하고 불안에 떠는 경우가 허다하였다.
하긴 ‘핼리혜성은 76.03년을 주기로 찾아오는 지극히 자연적인 현상’이라고 알려져 있고 전 세계 매스컴 등에서 미리 출현 날짜까지 알려주는 요즈음에도 괜히 불안해하는 사람들이 많기는 하다. 그리고 이런 불안 심리를 악용하여 사술을 부려 돈을 모으려는 사기꾼이나 자신의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엉터리 종교인들이 판을 친다.
그러니 “하늘과 인간은 결코 떨어질 수 없는 존재이고, 따라서 하늘에서 벌어지는 일체 현상이 모두 땅 위에서 일어날 일을 예고해주는 것”이라며 천인감응(天人感應)설을 믿었던 고대인들에게 마치 “하늘에 동시에 해 둘이 떠 있었다”고 느껴질 정도로 다가왔던 핼리혜성의 존재는 세상을 불안하게 하기에 충분한 조건을 갖추었을 것이다.
어쨌든 서기 837년 핼리혜성 출현을 앞뒤로 3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왕위계승 후보자와 왕 2명, 해상왕 장보고가 살해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저자는 이 시기뿐 아니라 신라시대 전반에 걸친 정치 상황, 신라를 둘러싸고 있는 중국·일본 등 국제정세의 변화 그리고 이에 대한 신라 왕실의 대응 등을 분석하면서, “이 모든 것이 핼리혜성의 출현과 밀접한 관계가 있지만, 그 동안 많은 연구자들이 세계적으로 정확성을 인정받고 있는 ‘신당서’를 비롯한 중국 역사서의 천문관계 기록에 나오는 혜성출현 기사를 주목하지 않고 ‘삼국사기’ 기록에만 국한하였기 때문에 이 중요한 연관관계를 놓치고 말았다”고 본다.
물론 “혜성의 출현과 상관없이 병란(兵亂)도 일어나고 좋은 일도 생기지만, ‘혜성이 반란이나 불행한 사건과 무관하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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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성이 거듭 출현하면 사회 불안심리가 고조될 것이고 그것을 이용하려는 야심가들이 나올 수 있다.” 서영교가 전해주는 이 메시지는 과학만능을 자랑하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이병두 문화체육관광부 종무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