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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장자궁자의 비유

기자명 법성 스님

아이에게 물려줄 진정한 보물은 부처님 지혜

 

 

 

집단 따돌림 등 학교폭력과 이로 인한 피해 학생들의 자살이 큰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학교 폭력은 오랜 악습이지만 최근 그 정도가 더욱 흉포화 되고 있어, 거의 위험수위에 도달한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많다. 이러한 폭력 문제에 대한 부처님의 입장은 단순 명료하다. 초기경전인 법구경 제10장에서 폭력이란 주제로 설법하신 내용이 있다.


“모든 생명은 폭력을 두려워하고 행복한 삶을 사랑한다. 이 이치를 자기 몸에 견주어 남을 죽이거나 죽게 하지 말라. 모든 생명은 행복을 바라는데 폭력으로 이들을 해치는 자는 자신의 행복을 구할지라도 결코 행복을 얻지 못할 것이다.”


대승경전인 법화경 제4 신해품에서는 장자궁자의 비유로 세상을 부처님과 같은 지혜의 눈으로 바라보고 이웃을 내 자신처럼 생각할 것을 가르치고 있다. 큰 부자가 자신의 잃어버린 외아들을 만나서 점차적으로 자신의 전재산을 상속한다는 내용으로 여기서 재산상속은 부처님의 지혜를 뜻한다.


‘조선왕조실록’에는 태조 이성계와 아들 태종 이방원의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는 첫째 부인 신의왕후 한씨와의 사이에 6남 2녀를 둔다. 그 가운데 다섯째 아들이 정안대군 이방원이다. 1392년 7월17일 태조 이성계는 국왕에 등극하고, 그 해 8월 계비인 신덕왕후 강씨 소생이자 11세 어린 나이의 의안대군 방석을 세자에 책봉한다. 그리고 1398년 무인년 8월25일 이방원이 주축이 된 한씨 소생의 왕자들이 사병을 동원하여 정도전, 남은, 심효생 등과 세자 방석, 그 형 방번을 죽인다. 이 때 강씨 소생 경순공주의 남편인 이제도 함께 죽는다. 이것이 제1차 왕자의 난이다. 그 때 와병 중이던 태조는 나중에 그 사실을 알고 크게 상심한다. 그 해 9월5일 왕위를 영안대군 방과(정종)에게 물러주고 함흥으로 떠난다.


“1399년 9월10일 태상왕(태조 이성계)이 경순궁주로 하여금 비구니가 되게 하였다. 경순궁주는 이제의 아내였다. 공주의 머리를 직접 깎기면서, 흐느끼며 눈물을 줄줄 흘렸다.”


태종 이방원은 무학 대사에게 부탁하여 태조 이성계를 다시 한양으로 모셔오게 한다. 태조는 왕위에서 물러난 후 전국을 다니며 참회기도와 함께 대대적인 불사를 일으킨다. 고려를 무너뜨리고 조선을 개국하면서 무수한 사람들을 죽이게 되는데, 결국 그 업보로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두 아들과 사위마저 잃게 된다. 그 후 자신이 살던
집을 사찰로 만드니, 이것이 흥덕사이다.


태종2년(1402년) 8월2일 임금이 회암사로 가서 태상왕(태조 이성계)에게 문안을 드리고, 건강이 걱정된다며 고기를 드실 것을 말씀드린다. 그러자 태조는 말한다. “국왕이 만일 나처럼 부처님을 숭상할 수 있다면 내가 마땅히 고기를 먹겠다.”


8월4일 태조가 임금에게 다시 말하였다. “대개 불교는 고려왕조가 왕성할 때에도 오히려 없애지 아니했고 오늘에 이르렀으니 마땅히 해당 관청에 명하여 헐게 하지 말라.”


임금이 머리를 조아리며 말하였다. “신이 죽는 것도 감히 사양하지 못하거늘 하물며 이 일이겠습니까?”
곧 지신사 박석명에게 명하여 의정부에 교지를 전하되 한결같이 태상왕의 가르침을 따랐다. 태상왕이 말하였다. “국왕의 정성이 이와 같고, 높고 낮은 신하들도 모두 간청하니 내가 감히 따르지 않겠느가?”
그리고는 곧 고기를 들었다. 임금과 정승 이무가 대간을 거느리고 절을 하면서 사례했다.
“태종8년(1408년) 3월24일 태상왕을 위한 구병정근(救病精勤)을 사리전에서 열었다. 임금이 몸소 향을 사르며 밤새도록 불상 앞에 꿇어앉아 연비(燃臂)했는데, 향을 자그마치 12개나 사용했다.”


태종 이방원은 권력투쟁에서 1차, 2차 왕자의 난을 일으켜 이복형제와 많은 사람들을 죽인다. 아버지 이성계는 조선이라는 나라를 개국했지만 자신이 사랑하는 두 아들과 사위까지 잃게 된다. 이 모든 것이 자신이 지은 악업 때문이라 생각하고 불교에 깊게 귀의하고, 국왕인 아들 이방원도 불교로 귀의시켜 악업의 고리를 끊어주려고 하였다. 이방원도 아버지께 씻을 수 없는 큰 불효를 저지르고 아버지의 소원에 따라서 자신의 유교적인 통치이념과는 무관하게 불교에 깊이 귀의하게 되는 내용이다. 결국 태조 이성계는 조선이라는 국가를 아들에게 상속시키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아들이 지혜의 눈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리고 그 해답을 불교에서 찾았다.


▲법성 스님
오늘날 학교 폭력과 자살 등 위기에 직면해 있는 청소년들에게 우리는 과연 무엇을 상속하여 그들을 행복으로 이끌 것인가? 지식습득이 아닌 전인교육, 즉 지혜의 체득에 방점을 찍어야 되는 것이 아닐까 !


법화경연구원 법성사 주지 freewheel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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