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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야호선(野狐禪)-上

기자명 윤창화

깨달은 듯한 태도로 남 속이는 사이비선
진실한 참구 없는 짝퉁 선승 경멸 때 사용

‘여우’, ‘들 여우’를 야호(野狐)라고 한다.


여우는 예부터 교활하고 의심이 많은 동물로 인식되어 왔다. 그래서 사람들은 갖가지 유언비어를 만들어 여우를 미워했다.


간사하거나 약아빠진 사람을 두고 ‘여우같은 인간’, ‘백여시’라 했고, 교활한 여자를 두고 ‘여우같은 년’ 더 교활한 여자는 ‘불여우’라고 했다.


그런데 요즘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는 종종 자신을 ‘여우 00’ 혹은 ‘00여우’라고 애칭하기도 한다. 자진해서 여우가 된 것인데, ‘애교 많은 여자’, ‘센스가 듬뿍 있는 여자’라는 뉘앙스일 것이다.


여우(野狐)는 재주 많은 원숭이와 함께 선어록에 자주 출현한다.


맡은 역할은 주로 분별심과 알음알이, 잔꾀의 상징으로 등장한다. 실제 여우는 매우 꾀가 많아서 사람들이 녀석을 잡으려고 화약이나 올무를 놔두면 조심스럽게 물어서 절벽 밑으로 던져 버린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렇게 영리한 여우가 오래되면 요괴로 둔갑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야호와 합성된 선어로는 ‘야호선(野狐禪)’ 외에도 ‘야호정(野狐精)’, ‘야호정매(野狐精魅)’, ‘야호견해(野狐見解)’, ‘야호연(野狐涎)’ 등이 있다.


선어록에서는 여우를 야호(野狐)라고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호리(狐狸)라고 한다.
‘야호선’이란 정도(正道)가 아닌 삿된 선(禪), 즉 엉터리 선(禪)을 뜻한다. 진실한 수행은 하지 않은 채 깨달은 듯한 태도로 남을 속이는 것, 즉 사이비선(似而非禪)을 이른다. 모양새는 진짜와 별 다름없어 보이는데 자세히 관찰해 보면 진짜를 모방한 짝퉁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야호정(野狐精), 야호정매(野狐精魅)는 ‘여우 혼’ ‘여우 귀신’, ‘여우 도깨비’ 등으로, 주로 진실한 참구가 없는 엉터리 선승을 경멸할 때 쓰는 말이다.


야호견해(野狐見解)는 ‘들 여우의 견해’라는 말로 정견, 정법안이 없는 선승을 뜻한다. 야호연(野狐涎)은 ‘여우의 침(口液)’인데, 엉터리 선승의 잘못된 설법이나 가르침을 가리킨다.


사이비들은 대체로 여우처럼 지능지수가 높아서 남을 잘 속인다. 문장이나 말이 화려하다. 종교 사기꾼일수록 그럴싸하여 보통 사람은 좀처럼 가려내기 어렵다.


그들은 자신이 깨달았다고 하면서 ‘당신의 전생을 안다’느니, 또는 ‘몇 년간 장좌불와 했다’는 등 이상한 말로 상대방을 현혹한다.


주로 도교의 양생술이나 기공, 단전호흡 등을 가지고 사기를 친다. 그리고 ‘마음자리를 봐야 한다’, ‘마음은 불 속에 들어가도 타지 않는다’는 등 전형적인 법문으로 선지식 행세를 하는데, 이들을 지칭하여 야호선(野狐禪)이라고 한다.


여우가 선어록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것은 백장야호(百丈野狐, 백장과 들 여우) 공안이다.


이 공안에서 야호(여우)는 노인으로 둔갑(변신)했다가 다시 여우로 둔갑하는데, 이것을 본다면 백장야호에 나오는 여우는 꼬리가 아홉 개 달린 구미호였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다음은 ‘백장광록’과 ‘무문관’ 2칙, ‘선문염송’ 184칙 등에 나오는 백장야호(百丈野狐) 공안이다.


‘일하기 싫으면 밥도 먹지 말라(一日不作 一日不食)’는 명언을 남긴 백장선사(720-814)가 상당(上堂)하여 법문을 할 때마다 어떤 노인이 들어와서 법문을 듣고 나가곤 하였는데, 하루는 법문이 다 끝났는데도 나가지 않고 있는 것을 보고 백장선사가 “거기 서 있는 이는 누구인데 나가지 않고 있소?”라고 물었다.

 

▲윤창화 대표

이에 노인이 “저는 과거 가섭불 때 이 절 주지로 있었는데, 어떤 학인이 ‘대수행인(大修行人, 大悟한 수행자)도 인과에 떨어집니까?’하고 묻기에 ‘불낙인과(不落因果, 인과에 떨어지지 않는다)’라고 대답했다가, 뒤에 5백 생 동안 여우의 몸을 받았습니다. 바라건대 화상께서는 저를 위하여 한마디(一轉語, 깨달을 수 있는 한마디)를 내려 여우의 탈을 벗겨주소서.”라고 하였다. <계속>

 

윤창화 changhwa9@hanmail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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