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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와 거울

기자명 청화 스님
  • 법보시론
  • 입력 2012.02.13 10:55
  • 수정 2012.02.20 15:47
  • 댓글 0

한 노스님을 찾아온 어떤 사람이 심각하게 말씀드렸다.


“스님, 저는 지금 몹시 마음이 아픕니다. 그 이유는 형제간보다도 더 가까이 지낸 친구를 잃었기 때문입니다. 그와는 벌써 40여 년 동안이나 우정을 나눈 사이입니다. 어려서부터 학교를 함께 다니는 것을 비롯해서 성인이 되고 결혼을 하고 그리고 지난 해까지의 삶을 그야말로 동고동락해 왔었습니다. 그런 친구가 그의 부친이 돌아가시고 막대한 유산상속을 받은 다음부터 돌변한 것입니다. 이제는 길에서 만나도 모르는 사람처럼 쳐다보지도 않습니다. 사람이 이럴 수가 있습니까?”


노스님은 몸을 일으켜 창가에 서서 말씀하셨다.


“이리로 와서 창밖을 내다보시오.” 그는 일어나 창밖을 바라보았다. “무엇이 보입니까?” 그는 노스님을 향해 말했습니다. “예, 향나무가 보이고 향나무 그늘 아래 어린아이 셋이 앉아 있는 것이 보이고 그 건너 산이 보입니다.” 노스님은 빙긋이 웃으시며 다시 말씀하셨다. “그렇지요? 그럼 이번에는 이 거울 앞에 와 서 보시오.” 그는 노스님이 말씀하신 대로 거울 앞에 섰다. “지금은 무엇이 보입니까?” “저밖에 안 보이는데요.” 노스님은 자리에 앉으신 다음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당신은 이것을 아셔야 합니다. 인간이란 돈이 없을 때에는 창문의 유리와 같아서 무엇이나 앞에 있는 것을 다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돈을 갖게 되면 유리 뒤에 수은을 칠한 거울이 되기 때문에 오직 자기밖에 보지 못합니다.”


같은 재질이지만 유리와 거울은 현격한 차이가 있다. 곧 유리는 투명해서 그것을 창에 끼웠을 때 안에서 밖도 다 볼 수 있고, 또 밖에서 안을 보는 데도 장애가 없다. 그래서 유리에는 앞뒤가 없다.


그에 반해 거울은 한쪽이 금속으로 도포되어 있어서 그것을 들고 보면 보이는 쪽이 있고 보이지 않는 쪽이 있다. 즉 앞면과 뒷면이 분명하게 나누어져 있다. 그러므로 유리 앞에서는 가까운 것이나 멀리 있는 것도 환히 볼 수 있지만 거울 앞에서는 자기 자신만 보이고 거울 너머의 것은 아무리 가까이 있어도 볼 수 없게 된다.


눈에 보이는 대로 말하면 요즘의 주지 소임을 맡은 스님들은 두 가지 모습이다. 하나는 주지 소임에 사명감을 갖는 형이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모든 능력을 다 동원하여 사찰의 모든 부분에 신선감을 불어넣고 지역사회에서 스님에 대한 인격적 신뢰와 기대를 주면서 이른바 불교발전의 토대를 구축하는데 총력을 기울인다. 이런 스님은 옆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흐뭇하다. 그리고 그의 삶에는 겨울잠에서 깨어난 생명들이 약동하는 봄기운 같은 것이 느껴져 불교의 앞날이 소망스럽게 그려진다.


또 하나는 주지 소임을 느긋하게 누리는 형이다. 주변에서 그의 사는 모습을 우려하고 비난하거나, 식자들이 불교의 위기를 말하거나 일체 그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오직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이나 하고 즐기고 싶은 것이나 쫓아다니는 것이 주된 일상이다. 이 같은 스님을 보면 아직도 시절 인식을 제대로 하지 못한 그 본사의 인사행정과 한낱 호사를 누리는 것을 직분으로 삼는 주지가 있다는 사실에 대해 참으로 개탄을 금할 수가 없다.


그런데 더욱 안타까운 것은 주지 소임에 사명감을 갖는 주지는 일부에 지나지 않고 대다수가 주지 소임을 누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을 비유로 말하면 사명감을 갖는 주지는 그의 창문이 유리이고, 호사를 누리는 주지는 그의 창문이 거울이다. 따라서 창문이 유리인 주지는 창밖의 현상에 대해 대응하는 소임에 충실하겠지만 창문이 거울인 주지는 방 안에만 국한되어 우물 속의 개구리가 된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 주지는 능력 있는 스님들의 몫이 아니라 아무나 해도 된다는 통념 때문이다. 이에 대한 종단적인 각성이 요구되고 있다.


▲청화 스님

유리창 앞에서는/ 먼 산도 보지만/ 거울 앞에서는/ 고작 자기 밖에 못 본다고/ 아무리 기둥을 치고 또 쳐도/ 끝내 울리지 않는 대들보/ 여기 잠든 돌장승을 어느 목탁이 깨우리.


청화 스님 전 조계종 교육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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