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3. 두루미

선인과 노닐다 월정사 창건설화에 등장

 

▲오대산 적멸보궁 두루미.

 

 

밤과 낮으로 딱 12번 운다. 깃털은 어찌나 흰지 진흙탕에서도 더럽혀지지 않는다. 암수는 160년에 만나 눈만 마주치면 잉태한다. 1600년 동안 먹지도 않는다. 물만 마신다. 날개 달린 동물 우두머리고 선인이 타고 다닌다. 2000년을 산다해 장수를 상징하고 고고함과 청초함에 높은 관직을 뜻하기도 한다. ‘상학경기(相鶴經記)’가 서술한 동물이다.


오대산 적멸보궁에도 이 새 그림이 있다. 두루미다. 보통 학이라 불린다. 두루미는 줄곧 옛 얘기에서 학으로 등장한다. 황새나 두루미, 백로 등을 두루뭉술하게 학으로 말해 왔기 때문이다. 옛 사람들은 두루미를 고고하고 도를 통달한 그 무엇으로 여겼다. 학을 물건에 새기면 장수와 행복, 풍요도 따른다고 믿었다. 눈만 마주쳐도 새끼를 낳는다니 두말하면 입 아프다.


두루미는 불교와 인연이 깊었다. 스님이나 단청장이었다. 오대산 월정사 전신(前身)격인 자장율사의 모옥(茅屋, 띠나 이엉 따위로 지붕을 인 초라한 집) 얘기에 두루미가 등장한다. ‘삼국유사’ 제3권 제4 탑상편 대산월정사 오류성중조 기록이다. 자장율사가 오대산에 처음 이르러 문수보살을 친견하려 산기슭에 모옥을 짓고 살았으나 보지 못했다. 이에 율사는 떠났고 뒤에 신효거사가 모옥에서 살았다.


왜 신효거사는 율사의 모옥에서 살았을까. 그는 고기가 아니면 끼니를 먹지 않는 어머니를 위해 사냥으로 고기를 구했다. 마침 길에서 학 5마리를 보고 활시위를 당겼다. 허나 ‘살생 미수’에 그친다. 활은 학 1마리 날개 깃 한 조각만 떨어뜨린다. 그 깃으로 눈을 가리고 사람을 보니 모두 짐승으로 보이자 아예 자기 넓적다리 살을 베어 어머니께 바쳤다.

 

그는 출가한 뒤 깃으로 눈을 가려도 사람으로 보이는 곳에 살고자 길에서 늙은 부인에게 물었다. 노부인은 “북쪽으로 향한 골짜기가 살 만하다”고 말하고 사라졌다. 그는 관음보살 가르침인 것을 알고 자장율사 모옥에 들어가 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스님 5명이 오더니 생뚱맞게 가사 한 폭을 달라고 했다. 영문 몰라 하던 그는 다른 스님이 깃을 말하자 깃을 내줬다. 스님이 가사의 뚫어진 폭 속에 깃을 갖다 대니 서로 꼭 맞았다! 그는 스님들과 작별하고 나서야 이들이 다섯 성중 화신임을 알았다. 월정사 9층 석탑이 다섯 성자 자취라고 일연 스님은 말한다.


전해지는 얘기에 따르면 무주 안국사 극락전 단청은 두루미 솜씨란다. 주지스님이 단청을 그릴 스님을 찾고 있었다. 어느 날 하얀 도포를 입은 노인이 나타나 “100일 동안 안을 보지 말라”며 단청을 시작했다. 마음에 일어난 호기심을 어쩌랴. 주지스님이 단청 99일째 안을 들여다보고 말았고, 노인은 온데간데없고 붓을 입에 문 학이 놀라 어디론가 자취를 감췄다. 그래서 극락전 단청이 미완성이라나.


온천이 유명해진 데도 두루미가 공(?)을 세웠다. 절름발이 노파가 3대 독자 외아들 결혼 문제로 부처님께 지성으로 기도드릴 때 일이다. 꿈에 선인이 “그대 다리를 먼저 고치라”며 절름거리는 학을 보고 따라하라 이른다. 과연 다리 다친 학이 들판 연못에서 사흘을 머물다 다리를 고쳐 날아갔고, 노파도 뜨거운 물에 다리를 담그니 다리가 나았다. 외아들도 장가를 갔다 한다. 바로 온양온천이다.


어딜 가나 두루미는 입에 꽃이나 불로초를 물고 있다. 늙지 않고 천수를 바라는 우리네 탐심일 게다. 악업이 새 몸 받아 지옥이나 축생계로 떨어지는 게 무서워서 일까. 모를 일이다.
 

최호승 기자 time@beopbo.com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