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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문자선(文字禪)-上

기자명 윤창화

선의 진수나 심오한 이치 문자로만 해석
문학적 수사에 치중해 언어유희 비판도

‘문자선’이란 선의 진수나 심오한 이치를 언어문자로 표출·해석하는 것, 또는 고칙·공안 등을 언어적으로 풀이·해설·설명하는 것을 말한다. 즉 좌선을 통한 실제적인 참구보다는 선시(禪詩)나 게송 등 운문으로 선의 세계를 표출하는 것, 혹은 이론적·학문적·교학적으로 따지고 탐구하는 것을 말한다.


문자선의 시작은 고칙과 공안에 대하여, 게송이나 염고(拈古, 산문체 해설)·송고(頌古, 운문체 설명)·대어(代語, 대신 말함), 별어(別語, 별도로 말함)·평창(評唱, 산문체의 염송 해설)·착어(着語, 짧은 촌평) 등 주로 짧고 간결한 시적(詩的)인 언어를 통하여 표출·설명하기 시작한 송대(宋代, 북송)부터이다. 이것이 문자선이 탄생하게 된 동기인데, 여기서 출현한 것이 선문학의 백미이자 유명한 공안집인 분양선소(汾陽善昭, 947-1024)의 ‘송고백칙(頌古百則)’과 ‘공안대별백칙(公案代別百則)’ 그리고 설두중현(980-1052)의 ‘설두송고백칙’ 등이다. 특히 대혜종고의 스승인 원오극근(1063-1135)의 ‘벽암록’은 문자선의 극치였다고 할 수 있다.


선의 세계를 게송이나 착어 혹은 선시(禪詩) 등을 통하여 에둘러 표현하는 이른바 요로설선(繞路說禪)은 때로는 말장난에 그치는 문자선을 탄생시켰지만, 긍정적으로는 ‘선문학’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낳았다. 특히 송대 사대부와 지식층 그리고 문인들이 선에 깊이 매료되어 선문화를 꽃피웠던 것은 선과 시(詩)의 만남 곧 선문학의 특성 때문이었다.


그러나 선(禪)은 학문적 언어적인 탐구를 통하여 알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선은 언어문자를 떠나서(不立文字) 마음으로 체득(心得)하여 진리불(眞理佛)인 법신과 하나가 되는 것이 선이다(一如). 비록 그 표현 방법과 수단은 언어문자를 쓰고 있지만(不離文字), 그 진수는 언어문자가 미치지 못하는 곳에 있다(言語道斷).


결국 문자선은 선의 이치를 드러내는 데 힘쓰기 보다는 문학적인 수사(修辭)나 기교, 시작(詩作) 등에 치중하게 되었고, 언어적 유희라는 비판을 낳게 되었다. 또 선어(禪語)의 표면적인 뜻에 가려서 정작 진실을 보지 못한다거나, 지나친 언어적 풀이나 문자적 해석으로 말미암아 선의 본질과 멀어지게 되었다. 비판은 드디어 ‘문자선’, ‘암흑두(唵黑豆)’, ‘문자법사(文字法師)’ 등 원색적인 신조어를 탄생시켰다.


암흑두(唵黑豆)란 문자를 읽고 있는 것을 말한다. 암(唵)은 우물우물 씹는다는 뜻이고, 흑두(黑豆)는 검은 콩으로, 문자를 가리킨다. ‘입으로 문자를 읽다’는 뜻인데, 과거 1980년대 초 운동권에서 학자나 공부에 열중하고 있는 학생들을 두고 ‘먹물들’이라고 비꼬아 말한 적이 있는데, 같은 말이다. 민주화 등 현실적인 문제는 도외시한 책상 앞에서 책이나 보고 있는 답답한 친구들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문자법사(文字法師)란 오로지 경전이나 논서에만 매달리는 사람, 또는 경전만 연구할 뿐, 참선에는 뜻을 두고 있지 않는 사람을 비하하는 말이다.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사람, 교학만 하고 선수행은 하지 않는 사람, 종지(宗旨)는 모르고 말이나 언어문자에만 얽매여 있는 수행자를 비방하는 말이다. 그 밖에 언어문자로 반야지혜를 표현, 설명하는 것을 ‘문자 반야’라고 한다.


문자선에 대한 비판은 많은 선승들이 언급했지만, 그중에서도 톱(top)은 간화선의 거장 대혜선사(1089-1163)일 것이다. 그는 ‘서장’과 ‘보설’ 등에서 밤하늘의 별처럼 비판했다.


특히 무자화두를 참구할 때 주의해야 할 열 가지 사항인 ‘무자화두 십종병(十種病)’에는 ‘언어적으로 (무자를) 참구하지 말라(不得向語路上作活計)’, ‘문자를 인용하여 해석하려고 하지 말라(不得向文字中引證)’ 등 묵조선 비판 못지않게 문자선을 비판했다.

 

▲윤창화

시대적으로 문자선이 만연했기 때문이었는데, 이 시대(북송) 시(詩)나 게송으로 선의 심의(深意)를 표출했던 선종의 송고문학(頌古文學)은 가히 르네상스를 이루었다고 할만하다. 


윤창화 changhwa9@hanmail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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