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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이 진실 증득해도 그 바탕이 불거나 줄지 않는다

기자명 법보신문

제석천 그물의 그물코 마니주 하나 끌어올리면
나머지 모든 그물코 모습이 거기에 드러나듯이
진리는 중중무진이니 모든 중생 부처님 되어도
부처 세계나 중생 세계 모두 줄거나 늘지 않아

 

 

▲중국 대불사 와불.

 

 

120.감각기관 갈무리는 거북이처럼

 

法句經 心意品 云. 昔佛在世時 有一道人 在河邊樹下. 學道十二年中 貪想不除 走心散意. 但念云 欲目色耳聲鼻香口味身受心法 身靜意遊 曾無寧息 十二年中 不能得道. 佛知可度 化作沙門 往至其所 樹下共宿. 須臾月明 有龜從河中出 來至樹下. 復有水狗 飢行求食 與龜相逢 便欲龜. 龜縮其頭尾 及其四脚 藏於甲中 不能得. 水狗小遠 復出頭足 行步如故 不能奈何. 遂便得脫.


‘법구경 심의품’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옛날 부처님이 세상에 계실 때 한 수행자가 강변 나무 밑에서 머무르고 있었다. 도를 닦은 지 12년이나 되었지만 탐욕스런 생각이 남아 있어 마음은 헐떡거리고 산란하였다. 그는 다만 “눈은 색, 귀는 소리, 코는 냄새, 입은 맛, 몸은 느낌, 마음은 법에 집착하니, 몸은 가만히 있지만 마음이 몹시 번거로워 일찍이 편안하게 마음을 쉰 적이 없다. 그러니 12년을 공부해도 도를 얻을 수 없구나.”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부처님은 이 수행자를 제도할 수 있다는 것을 아셨다. 사문의 모습으로 변신한 부처님은 그 장소로 찾아가 나무 밑에서 같이 밤을 지새우게 되었다. 달이 밝아지자 거북이가 강에서 나무 밑으로 기어왔다. 배가 고픈 한 수달이 먹을 것을 구하러 오다 거북이와 마주치자 곧 잡아먹으려고 하였다. 거북이는 머리, 꼬리, 네 다리를 움츠려 단단한 껍질 속으로 숨어버렸다. 수달은 거북이의 껍질이 단단하여 잡아먹을 수 없었다. 거북이는 수달로부터 조금 멀어지면 다시 머리와 다리를 내밀어 평소대로 기어가고 가까워지면 바로 몸을 움츠려 갈무리니 수달이로서는 어떻게 해볼 수가 없어서 마침내 거북이는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於是道人 問化沙門 此龜有護命之鎧 水狗不能得其便. 化沙門答言 吾念世人 不如此龜. 不知無常 放恣六情 外魔得便 形壞神去. 生死無端 輪轉五道 苦惱百千 皆意所造. 宜自勉勵 求滅度安. 於是化沙門 卽說偈言 藏六如龜 防意如城 慧與魔戰 勝則無患. 是以 意地若息 則六趣俱閑. 一切境魔 不能爲便 如龜藏六 善護其命.


이에 수행자가 부처님께 “이 거북이는 생명을 보호하는 껍질이 있어 물개가 잡아먹을 수 없지 않습니까?”라고 묻자, 부처님은 “나는 세상 사람이 거북이만 못하다고 생각한다. 무상을 알지 못하고 여섯 감각기관의 욕정을 따르니 외도와 마구니가 그 틈을 타 몸과 마음을 망가뜨리기 때문이다. 끝없이 생사에 윤회하며 나쁜 세상에서 온갖 고통을 받는 것은 다 마음이 만든 것이다. 부지런히 노력하여 번뇌를 없애고 편안한 삶을 살아야 한다.”라고 대답하셨다. 이 내용을 부처님은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감각기관 갈무리는 거북이처럼
성곽처럼 마음가짐 굳게 지켜라
그 지혜로 마구니와 맞서 싸우면
승리하여 근심 걱정 없으리로다.


이처럼 마음이 쉬어지면 여섯 감각기관 육근의 활동은 번뇌로부터 한가롭다. 모든 마구니 경계가 틈을 엿볼 수 없으니, 이는 머리, 꼬리, 네 다리를 잘 갈무리한 거북이가 자신의 생명을 잘 보호하는 것과 같다.
강설) 바깥 경계로 치닫는 감각기관을 잘 다스려 탐욕스런 마음이 없어져야 도를 얻을 수 있다.


121.법이 상응하여 앞뒤 없는 관점에서


十玄門者 一同時具足相應門. 智儼師 釋云. 此約相應無前後說. 此十玄門 一一皆具十法 同時具足 一敎義 二理事 三境智 四行位 五因果 六依正 七體用 八人法 九逆順 十感應. 隨有一處 卽具此十法 悉皆同時具足.


십현문(十玄門)에서 첫째 동시구족상응문(同時具足相應門)을 지엄 스님이 풀이하여 말한다.
이는 ‘온갖 법이 상응하여 앞뒤가 없는 관점’에서 설한 것이다. 이 십현문 하나하나에는 모두 열 가지 법을 함께 동시에 다 갖추고 있다. 첫째 교의(敎義)이고, 둘째 이사(理事)이며, 셋째 경지(境智)이고, 넷째 행위(行位)이며, 다섯째 인과(因果)이고, 여섯째 의정(依正)이며, 일곱째 체용(體用)이고, 여덟째 인법(人法)이며, 아홉째 역순(逆順)이고, 열째는 감응(感應)이다. 십현문 어느 하나를 따라도 곧 이 열 가지 법을 함께 동시에 다 갖추는 것이다.


강설) 십현문은 사사무애법계(事事無法界)의 모습을 드러내니, 이 뜻에 통하면 화엄경의 깊은 바다에 들어갈 수 있기에 ‘현문(玄門)’이라 말한다. 화엄종에서는 이 ‘십현문’과 ‘육상원융(六相圓融)’으로 근본교리를 삼는다. 이 둘을 회통하는 것이 법계연기의 중심내용을 구성하는데, 현상과 현상이 상호 한바탕이 됨[相卽]을 드러내고, 서로 상대 쪽으로 들어가는데 방해가 되지 않음[相入]을 나타내는 것이다.


122.보살마하살이 삼매에 머무는 것


十定品 云. 譬如有人 爲鬼所持 其身戰動 不能自安 鬼不現身 令他身然. 菩薩摩訶薩 住此三昧 亦復如是 自身入定他身起 他身入定自身起. 佛子 譬如死屍 以力故 而能起行 隨所作事 皆得成就. 屍之與 雖各差別 而能和合成就彼事. 菩薩摩訶薩 住此三昧 亦復如是 同境入定異境起 異境入定同境起.


‘화엄경 십정품’에서 말한다.
비유하면 귀신 들린 사람이 스스로 자제하지 못하고 심하게 떨 때 귀신이 몸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의 몸에 영향을 끼치듯, 보살마하살이 삼매에 머무는 것도 이와 같아, 자신이 선정에 들어가 다른 사람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다른 사람이 선정에 들어가 자신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불자여, 비유하면 죽은 시체가 주력의 힘 때문에 벌떡 일어나 돌아다니며 주문이 요구하는 일을 모두 성취할 수 있는 것처럼, 시체와 주문은 서로 차별이 있는 다른 경계이지만 하나로 화합하면 그 어떤 일을 성취할 수 있다. 보살마하살이 삼매에 머무는 것도 이와 같아 똑같은 경계로 선정에 들어가 다른 경계를 나타나고 서로 다른 경계에서 선정에 들어가 한 경계로 나타난다.


佛子 譬如比丘得心自在 或以一身作多身 或以多身作一身 非一身歿多身生 非多身歿一身生. 菩薩摩訶薩 住此三昧 亦復如是 一身入定多身起 多身入定一身起. 佛子 譬如大地 其味一種 所生苗稼 種種味別 地雖無差別 然味有殊異. 菩薩摩訶薩 住此三昧 亦復如是 無所分別 然有一種入定多種起 多種入定一種起.


불자여, 비유하면 비구가 자유자재한 마음을 얻으면 혹 한 몸으로 여러 몸을 만들고 혹 여러 몸으로 한 몸을 만드는 것과 같으니, 이는 한 몸이 사라져 많은 몸이 생기는 것도 아니며, 많은 몸이 사라져 한 몸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 보살마하살이 삼매에 머무는 것도 이와 같아, 한 몸이 선정에 들어가 여러 몸으로 나타나며, 여러 몸이 선정에 들어가 한 몸으로 나타난다.


불자여, 비유하면 대지는 한 맛인데 그 땅에서 생겨나는 곡식의 맛이 전부 다른 것과 같으니, 땅은 차별이 없더라도 맛에는 서로 차이가 있다. 보살마하살이 삼매에 머무는 것도 이와 같아, 분별할 것이 없으므로 하나의 모습으로 선정에 들어가 여러 모습으로 드러나며, 여러 모습으로 선정에 들어가 하나의 모습으로 드러난다.
강설) 보살마하살이 삼매에 들어가 일으킬 수 있는 신통을 말하고 있다.


123.지혜의 차별이 있기 때문


若此宗明卽入 不論神力 乃言自體常如此者 斯則 渾無疆界 無終無始 何緣得辯 因果敎義等十法耶. 只以隨智差別故. 擧一爲主 餘皆爲伴. 猶如帝網 擧一孔爲首 衆孔現中 一孔旣爾 一切孔現亦如是. 又 如諸方菩薩 皆來證誠 同其名號 一切十方證誠 皆亦如是. 所以 成其無盡復無盡 而不失因果先後次第 而體無增減. 故經云 一切衆生成佛 佛界不增 衆生界不減.

 

문: 화엄종에서 ‘즉입(卽入)’을 밝히며 신통력을 논하지 않고서 스스로의 바탕이 늘 이와 같은 것이라 말한다면, 이는 경계가 없기에 처음과 끝이 없는 것인데 무슨 인연으로 인과(因果)와 교의(敎義) 같은 열 가지 법을 말할 수 있습니까?


답: 다만 지혜의 차별이 있기 때문이다. 하나로 주(主)를 삼으면 나머지 모두 동반자가 되니, 이는 제석천 그물의 그물코 마니주 하나를 끌어올리면 나머지 모든 그물코 모습이 거기에 드러나듯이, 하나의 그물코가 그러하니 나머지 모든 그물코 마니주에 나타나는 모습도 이와 같다. 또 사방에서 보살들이 와 진실을 증득하면 그 명호가 같아지듯, 모든 시방세계 보살들도 진실을 증득하면 모두 이와 같다. 이 때문에 중중무진이니 인과, 앞뒤, 차례를 잃지 않으면서 그 바탕이 불어나거나 줄어들 것이 없다. 그러므로 경에서 “모든 중생이 부처님이 되어도 부처님의 세계는 불어나지 않으며 중생의 세계도 줄어들지 않는다.”라고 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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