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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 권위보다 높았던 조선 스승의 위엄

기자명 법보신문

‘왕세자의 입학식: 조선의 국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 김문식 저 / 문학동네 / 2010

▲‘왕세자의 입학식: 조선의 국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지난 2010년,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일본 국왕의 손녀 도시노미야 아이코(敬宮愛子) 공주가 ‘친구들에게 따돌림 당하는 것이 무서워 학교에 가기 싫어한다’는 소식이 전해진 적이 있다. 일본 왕은 상징적 존재에 불과할 뿐인데도 그 왕실의 일원이 궁궐 밖에 있는 학교에 다니려면 이처럼 어려움이 따른다. 그러니 막강한 통치력을 가졌던 조선시대 왕실 가족, 그 중에서도 다음 왕위를 이을 왕세자(또는 世孫·世弟)가 외부 학교에 가는 일은 그 절차가 매우 복잡하고 까다로웠을 것이다.


유교를 국가 운영의 기본 이데올로기로 삼았던 조선시대에는 역대 왕들이 유학자 신하들과 유교 경전을 자유롭게 논하거나 이들을 상대로 강의를 할 정도의 실력을 갖추어야 권위가 서고 백성들의 존경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므로 다음 왕위를 이을 세자 시절에 탄탄하게 유학의 기초를 다져놓는 일은 정치나 행정 능력을 키워나가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일이었고, 이를 위하여 덕망과 학식을 갖춘 개인 교수 여러 명을 두고 궁궐 안에서 철저한 교육을 실시하였다.


이처럼 궁궐 안에서 이루어지는 개인 교육과 별도로 당시 최고의 교육기관이었던 성균관에 공식으로 입학하여 공자 묘(廟)에 인사를 드리고 스승에게 ‘사제간의 예(禮)’를 극진하게 갖추게 하였다. 조선시대 국왕 교육 체제에 대하여 관심을 갖고 연구를 해온 김문식은 ‘국조오례의’등의 문헌 기록과 1817년(순조 17)에 있었던 효명세자의 성균관 입학 장면을 여섯 장의 그림으로 생생하게 전하고 있는 ‘왕세자입학도첩’을 분석하여 독자들에게 흥미를 더해준다.


저자에 따르면 중국에서는 당(唐) 이후로 관련 기록이 나타나지 않지만 조선시대에는 태종부터 고종에 이르기까지 세자의 입학례(入學禮)를 이어온 것으로 확인되는데, 이것이야말로 ‘학문과 예의를 중시했던 조선 왕실의 특징’이라고 한다.


TV 연속 사극 등의 영향으로 조선시대의 왕들이 전제 권력을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는 일반 대중들의 이해와 달리 학자들은 “조선시대에는 대체적으로 왕권과 신권(臣權)이 균형을 이루었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데, 김문식의 세자 입학 절차 분석 연구에서도 이것이 확인된다.


아무리 지엄한 세자라고 하여도, 성균관 안으로 들어갈 때에는 경호 병력을 모두 물리쳐야 하였고, 왕의 최측근인 환관을 그 안으로 들여보내려던 왕의 시도가 성균관 유생들의 반대로 좌절되기도 하였다. 입학례가 이루어지는 날 스승은 책상 위에 책을 펴놓고 강의를 하는데 반하여 왕세자는 바닥에 엎드려 책을 보게 하여 사제지간의 예를 철저하게 지키게 하였는데, 인조와 효종이 “세자를 위해 책상을 만들도록 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가 신하들의 반대로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이것은 왕권에 대한 유학자 신하들의 견제가 만만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사례일 것이다.

 

▲이병두
심지어 세자가 대리청정을 하면서 왕의 지위를 대신할 때에도 스승에게는 깍듯한 예를 갖추어 절을 하도록 했는데, 여기에는 ‘사제지간은 군신(君臣) 관계를 뛰어 넘는다’는 이념적 배경이 있었던 것이다. 
 

이병두 문화체육관광부 종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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