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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사성제와 사회적 고-3

삶 자체가 물화로 번진 현대사회
풍요롭지만 모두가 고독에 빠져

이처럼 4고와 7고를 실체론을 넘어서서 연기적, 사회적으로 해석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고통에 대해 모두 말할 수 있는가. ‘지금’ 중생들이 겪고 있는 고 가운데 4고와 7고로 아우를 수 없는 것이 또 있는가. ‘지금’이란 현재를 뜻하고, 현재란 현실과 이어진다. 곧, 오늘 이 순간에 중생들이 발을 디디고 현실의 맥락에서 고란 무엇인가에 대한 성찰이 있어야 한다.


21세기 오늘 대중들은 4고와 7고 외에 과연 어떤 고로 인하여 자유롭고 행복하지 못한가. 쌍용자동차 한 곳에서만 벌써 21명이 자살하거나 그 후유증으로 사망하였다. 그들은 열심히 일한 죄밖에 없는데 정리해고를 당하고, 생존을 위해 복직을 주장하다가 무자비한 폭력을 당하고 재취업도 불가능하여 폭력의 후유증과 경제난을 견디다 못하여 자살하였다. 그들의 그토록 처절한 고통은 4고나 7고 가운데 과연 어디에 속하는가. 나열하자면 한이 없겠지만, 크게 소외, 구조적 폭력에 의한 고, 문화적 폭력에 의한 고, 재현의 폭력에 의한 고 등 네 가지로 범주화하여 다룬다.


소외는 따돌림 이상의 것이다. 따돌림이란 인간 집단이 형성되면서부터 생긴 것이라면, 소외는 엄격히 말하여 자본주의 체제가 등장하면서 보편화한 것이다. 펜촉이 닳고 닳아 글씨는 쓰는 족족 번지고 뚜껑은 너덜너덜해진 만년필이라 할지라도, 그 펜으로 밤을 새워 시를 쓰고 연애편지를 써서 한 여인을 아내로 삼게 된 이에게 만년필의 가치는 수백 만 원 이상일 것이다. 하지만, 그 만년필을 백화점에 가서 명품 옷과 바꾸어 달라 하면 점원은 그 사람을 미친 사람으로 여기리라. 이처럼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느 사물은 그 고유가치보다 시장에서 교환되는 가치로 대체된다.


교환가치와 사용가치가 전도된 사회에 나타나는 보편적 현상이 물화(物化, reification)다. 자본주의 사회는 모든 이들이 교환가치를 우선시하면서 모든 것을 물질로, 돈으로 대체하여 바라보기에 사람들의 관계가 사물의 성격을 지닌다. 물화한 개인은 자기 주변의 모든 것을 물질의 눈으로, 상품관계로 바라본다. 피가 흐르고 숨을 쉬는 생명의 생명다움은 사라지고 그를 가방이나 옷과 같은 사물처럼 바라보며, 양자의 가치의 차이는 얼마에 교환되는가 이다. 돈 몇 만 원에 살인할 수 있는 것은 사람을 사물처럼 여기고, 또 그 가치를 교환가치로 따졌기에 가능한 것이다. 온갖 삶들이 이렇듯 물화되어 있으니 우리는 서로를 소외시킨다. 배우자를 고를 때조차 그 사람의 교환가치를 따진다. 우리는 나를 가장 이해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몇 푼 돈에 나를 죽일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노동은 진정한 자기를 실현하는 것도, 자기 앞의 세계를 변화시키는 인간 주체의 실천 행위도 아니다. 돈을 버는 수단일 뿐이다. 싫지만 돈을 벌어야 생활이 가능하기에 하는 행위다. 내가 생산한 상품은 나와 아무런 연관이 없다. 그러니 노동하는 순간 자유로운 것이 아니라 괴롭다. 노동이 외려 소외의 양식이 되었다.


이뿐이 아니다. 현대인은 자기로부터, 정확히 말하여 자기 동일성으로부터 소외된다. 우리는 부패한 공무원이나 선생을 비판하지만, 그들이 특별히 악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자신은 청렴한 공무원을 이상형으로 알고 이를 지향해 왔는데 자본주의 체제와 관료제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촌지나 뇌물을 받게 되었다면, 그는 얼마나 자기 자신이 낯설게 보이겠는가. 차이가 있을 뿐 우리는 누구나 자기로부터 낯선 경험을 한다.

 

▲이도흠 교수
이처럼 우리는 물화, 노동의 소외, 자기로부터 소외 등으로 인하여 타인을 소외시키고 나 또한 낯설게 만든다. 그러니 현대인들은 물질적 풍요에 있으면서도 모두가 고독하고 항상 불안하다. 
 

이도흠 한양대 국문학과 교수 ahuru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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