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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지혜의 寶庫 언어가 사라진다

기자명 법보신문

‘사라져 가는 목소리들: 그 많던 언어들은 어디로 갔을까?’
다니엘 네틀·수잔 로메인 공저 / 김정화 옮김 / 이제이북스 / 2003

▲‘사라져 가는 목소리들: 그 많던 언어들은 어디로 갔을까?’

통역이 없이는 육지 사람들과 소통이 어려울 정도로 달랐던 제주 토박이말을 아는 이들이 사라지고 있다. 뒤늦게 이에 대한 반성이 일어나서 초등학교에서 토박이말 시간을 따로 정해서 가르치기 시작했다고 하지만, 가정에서 일상 언어로 사용될 가능성이 없는 상황에서 제주 토박이말의 재생이나 부활은 기대하기 어렵다. 그런데 ‘국민 통합을 가로막는 사투리’라며 무시하던 토박이말을 왜 학교에서 정식으로 가르치려고 할까?


지구상에는 본래 수천 가지도 넘는 서로 다른 언어가 있었고 그 말을 사용하는 민족(또는 부족)들은 서로 다른 자연 환경 속에서 서로 다른 문화를 가꾸며 살아왔다. 이 과정에서 중심부의 지배적인 언어가 주변부의 그것을 ‘흡수 통합’하거나 서로 뒤섞이면서, 다양한 언어가 생주이멸(生住異滅)의 과정을 거듭하여 왔다.


수만 년이 넘는 인류 역사에 걸쳐 이런 과정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져 왔지만, 서구 제국들이 이른바 신세계로 식민지를 넓혀가면서 각지의 토착 원주민들이 급감하며 정치 경제 문화의 주도권을 잃는 것과 동시에 숱한 언어들이 빠른 속도로 사라져갔고, 지금 이 순간에도 매년 몇 개씩 흔적도 없이 죽어간다. 중소규모의 슈퍼마켓이 들어서서 동네 구멍가게를 흡수하고, 대형마트가 들어와 주변부의 상권을 모두 빨아들이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 세계 곳곳의 언어를 둘러싸고서도 벌어지는 것이다.


저자들에 따르면, 그러나 “세계의 언어들은 특정 집단의 사람들이 여러 세대에 걸쳐 특정한 목적으로 사용해 오면서 각자 자기 문화에 중요한 것들에 대해 하나하나 개별적으로 이름을 지으며 뚜렷하고도 효율적인 방식으로 표현되어 온 것”으로, “한 언어의 어휘는 세상을 이해하고 지역 생태계 내에서 생존하기 위해 한 문화가 이야기하고 분류하는 사물들의 목록이다.”


현대 생물학자들이 엄청난 연구비를 써가며 찾아낸 전체 동식물들보다 수십 배가 넘는 다양한 종(種)에 대하여 세계 각지, 특히 열대 우림 지역의 토착 원주민들은 나름의 분류법을 갖고 있었고 그것이 생존에 어떤 도움을 주는지 알고 있었으며, 그렇게 축적된 지식과 지혜는 토착 언어에 담겨 있었다. 따라서 세계의 토착 언어들이 죽어가는 것은, 인류 역사 발전 과정에서 쌓아온 지혜의 보고가 사라지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고 본다.


인간의 죽음과 마찬가지로 언어에도 자연스러운 소멸이 있고, 또 ‘자살과 타살’도 있다. 일제 강점기의 말살(抹殺) 시도를 겪은 우리는 ‘언어의 타살’이 무엇을 뜻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러면 ‘언어의 자살’은? 영어 구사 능력이 신분 상승의 지표가 되고, 교육과 소득 수준이 높은 가정에서는 미국 교과서로 아이들을 가르치며 가능한 빨리 미국 문화에 젖어들게 하려 애쓰고 있는 우리 현실을 보면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병두
수천 년 동안 지키며 가꾸어온 우리말이 오래도록 살아남아 수준 높은 문화를 간직해줄지 아니면 소멸될지 알 수 없지만, 혹 사라진다면 그것은 ‘타살’이 아니라 ‘자살’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이병두 문화체육관광부 종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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