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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사성제와 사회적 고-4

고통이 사라진 진정한 평화는
구조적·평화적 폭력 멸한 상태

다른 이에게 맞든, 고문을 당하든, 강간을 당하든, 폭력처럼 고통스러운 일이 없다. 태국의 존경받는 스님이자 환경운동가이자 평화 운동가인 술락 시바락사(Sulak Sivaraksa)는 구조적 폭력이 바로 고(苦)라고 선언하였다. 갈퉁(J. Galtung)은 직접적이고 물리적인 폭력과 함께 구조적 폭력(structural violence)과 문화적 폭력(cultural violence) 개념을 설정한다. ‘구조적 폭력’이란 “(인간이) 지금 처해 있는 상태와 지금과 다른 상태로 될 수 있는 것, 잠재적인 것과 실제적인 것 사이의 차이를 형성하는 요인”이다. 이는 어떻게든 살아남으려 하고 (생존욕구), 보다 나은 삶을 살려하고(복지에 대한 욕구), 타인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려 하고 (정체성에 대한 욕구), 모든 구속으로부터 자유롭고자 하는(자유에 대한 욕구) 욕구들에 대해 “피할 수 있는 모독”을 가하는 것이다.


문화적 폭력이란 “종교와 이데올로기, 언어와 예술, 경험과학과 형식과학 등 직접적 폭력이나 구조적 폭력을 정당화하거나 합법화하는 데 사용될 수 있는 우리 존재의 상징적 영역이자 문화적 양상”이다. 별, 십자가, 국기와 국가, 사열식, 지도자의 선동적인 연설과 포스터 등이 이에 속한다.


예를 들어, 내가 위암에 걸려 죽었다면 그것은 구조적 폭력이 아니다. 누구를 원망할 일 또한 아니다. 하지만, 수술만 하면 살아날 수 있을 정도로 위암에 걸렸는데 수술비가 없어서 병원에서 치료를 거부하여 죽는다면 그것은 구조적 폭력이다. 무상의료를 실시하거나 의료보장이 잘 되어있는 나라에서 살았다면, 나는 돈이 없다는 이유로 위암 수술을 거절당하는 모독을 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자원을 불평등하게 분배하고 착취하는 것, 피지배층의 자율성이나 자치권 확보를 저지하는 것, 피지배계층을 서로 분열시키고 갈등하게 하는 것, 피지배계층을 사회에서 일탈시키고 소외시키는 것, 더 넓게는 강대국이 약소국을 종속의 관계로 놓고 수탈하는 것, 가부장주의로 여성의 사회진출과 활동을 막고 안방에 가두는 것이 모두 구조적 폭력의 양상들이다.


위암으로 수술비가 없어서 죽은 형을 둔 동생이 이를 통하여 무엇인가 깨우치고, 무상의료를 주장하는 시민운동을 하는데, 이를 보수언론이 사회주의적 발상이라고 공격하고, 대중들도 그에 대해 “빨갱이” 운운한다면 이는 문화적 폭력이다.


갈퉁에 의하여 제1세계 및 지배 권력의 폭력, 직접적이고 물리적인 폭력만이 아니라 간접적이고 제도적인 폭력, 지배 권력의 폭력을 정당화하는 문화적 맥락에 대해서도 분석하고 비판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이에 따라 고(苦) 또한 구조적 폭력과 문화적 폭력에 의한 고로 확대될 수 있다. 마음이든 육체든, 폭력이나 고통이 없는 상태란 소극적 평화가 아니라 구조적 폭력과 문화적 폭력을 멸한 상태가 평화라는 적극적 평화를 추구할 수 있게 되었다.


▲이도흠 교수
하지만, 필자의 관점에서 볼 때, 갈퉁의 폭력과 평화이론 또한 한계가 있다. 무엇보다도 그의 이론은 대다수 서양이론처럼 실체론을 넘어서지 못하며, 이분법에 얽매여 있다. 갈퉁의 이론을 연기론을 통해 비판적으로 극복할 필요가 있다. 폭력은 강자(top dog)가 약자(under dog)에게 일방적으로, 정적으로 행하는 것이 아니다. 폭력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힘을 준다고 언제든 막대기가 부러지는가. 막대기는 어느 정도까지는 버틴다. 막대기가 부러지기까지 누르는 힘, 곧 압력(strain)과 버티는 힘, 내구력(strength)이 서로 맞선다, 그처럼 폭력은 억압과 저항의 역학관계에서 발생한다. 이에 폭력과 평화를 연기적이며 역동적이고 생성적인 관점에서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이도흠 한양대 국문학과 교수 ahuru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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