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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물고기

24시간 눈 뜨고 수행자 정진 경책

 

▲광주 문빈정사 벽화.

 


비울수록 목소린 청아하다. 배불러도 두 눈 번뜩인다. 잠 잘 때도 눈 감지 않는다. 배고프면 기운 빠지고 배부르면 눈 감기는 우리네 모습과 사뭇 다르다. 그래서 전통가구 쾌, 반닫이, 뒤주 자물통 모양으로 인기다. 눈 감지 않는 보물 감시자 물고기다.


물고기는 절 이름에 들어가기도 한다. ‘삼국유사’ 제4권 제5 의해편엔 이런 얘기가 전한다. 어느 날 혜공 스님과 원효 스님이 시내를 따라가며 물고기와 새우를 잡아먹고 돌 위에 큰일(?)을 봤다. 혜공 스님이 장난쳤다. “원효 스님이 눈 똥은 내가 잡은 물고기일 거요.” 좀 각색하면 더 흥미롭다. 두 스님이 법력 내기를 했다. 산채로 물고기를 삼켜 큰일을 본 뒤 살아있는 물고기가 나오면 이기는 내기였다. 물고기 두 마리가 나왔는데 한 마리는 물을 거슬러 올라가고 한 마리는 죽어 나왔다. 올라가는 물고기를 보고 서로 자기 고기라고 했단다. 포항 오어사(吾魚寺) 설화다.


물 속 생명이지만 뭍 위에서도 산다. 사찰 종각마다 여의주 물고 눈을 부라리고 있다. 목어다. 사찰에서는 나무로 만든 긴 물고기 모양인 목어를 걸어 두고 두드린다. 범종과 법고 그리고 운판과 더불어 불교사물이다. 목어는 중국에서 유래했는데 가슴에 새길만한 전설이 있다.


덕 높은 스님 제자 가운데 유독 한 명만 제멋대로 생활했다. 계율에 어긋나는 속된 행동도 주저하지 않았다. 결국 몹쓸 병에 걸려 일찍 죽은 그 스님은 등에 나무 단 물고기 과보를 받았다. 헤엄은 힘들었고, 풍랑이라도 만날라치면 나무가 흔들려 피 흘리는 고통이 뒤따랐다. 어느 날, 스승이 배를 타고 강을 건널 때였다. 큰 나무가 등에 매달린 물고기가 뱃전에 머리를 대고 슬피 울었다. 스승은 깊은 선정으로 방탕한 생활 탓에 일찍 생을 마감했던 제자가 그 물고기란 사실을 알았다. 가여운 제자를 위해 수륙재를 베풀고 물고기 몸을 벗게 도왔다. 그날 밤, 스승 꿈에 제자가 나타났다. 제자는 감사와 함께 서원을 밝혔다. “다음 생에는 열심히 정진하겠습니다. 부디 제 등에 난 나무를 베어 저와 같이 생긴 물고기를 만들어 나무막대로 쳐주세요. 제 이야기를 수행자들에게 교훈으로 들려주십시오.” 광주 무등산 문빈정사 법당 입구엔 이 이야기를 그린 벽화가 있다.


‘백장청규’는 물고기가 종각에 걸려 있는 이유를 잘 설명해준다. “물고기는 밤낮으로 눈 감지 않으므로 수행자로 하여금 자지 않고 도를 닦으라는 뜻으로 목어를 만들었다. 수행자의 잠을 쫓고 혼침(惛沈)을 경책한다.”


자세히 살펴보면 목어는 용머리를 하고 있다. 게다가 여의주를 문다. 물고기가 여의주라니! 여기엔 물고기가 변해 용이 된다는 뜻이 담겼다. 물고기란 중생이 깨달은 중생인 용, 즉 보살이 되는 것을 말한다. 여의주는 말 그대로 보물인데 대자유나 견성을 상징한다. 목어를 두드려 나는 법음은 수행정진으로 보살이 되라는 경책인 셈이다.
목어가 변형돼 생긴 목탁도 물고기 모양이다. 다만 둥근 형태일 따름이다. 손잡이가 있는 우리나라 목탁은 꼭 손이 필요하다. 왼손엔 목탁, 오른손은 목탁 채를 쥔다. 왼쪽은 변하는 않는 체(體)를 뜻하며, 오른쪽은 움직이는 용(用)을 상징한다. 이 둘의 마주침으로부터 생기는 목탁소리는 바로 체와 용이 둘이 아닌 하나가 되는 순간의 법음이다.


목어나 목탁은 속 빈 물고기다. 몸속 오장육부를 다 긁어내 비운다. 그래야 청아한 소리가 난다. 마음속 오만가지 번뇌와 분심, 탐심을 다 긁어내야 우리네 불성도 비로소 소리낼 수 있으리라.  


최호승 기자 time@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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