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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가 문제다

기자명 이민용

세속의 얽힌 문제가 풀리지 않을 때, 사람들은 종교로 눈길을 돌린다. 정치적인 난국, 사회적인 파행이 생길 때마다 종교적인 해법이 있지 않을까 궁금해 한다. 종교를 현실문제의 마지막 돌파구로 생각하는 것이다. 이럴 때면 “화쟁적인 태도”, “상생적인 접근”, “마음 비우기”, “하늘의 뜻에 따라야 한다”는 말이 들린다. 어느 특정종교에서 제시한 해법이라도 그렇게만 될 수 있으면 좋은 일이다. 그러나 종교의 이념이 오히려 전쟁의 명분으로 그대로 이용되는 것을 보았다. 악은 반드시 제거되어야 하고 정의로운 선이 기필코 승리하는 사회로 만들어야 한다며 전쟁을 선언한 부시 대통령은 최근의 예다. 오히려 동양전통의 용어인 파사현정(破邪顯正)이란 말을 붙였으면 더 간단했을 것 같다. 이 말은 역사적으로 반대편 제거의 명분으로 무수하게 사용됐으니 말이다.


종교적인 이념은 보는 각도에 따라 또는 사용되는 현장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아마 종교는 현실해법의 방법이 아닐지도 모른다. 오히려 현실의 문제에 덧붙여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종교적 문제를 보라. 종교가 저지르고 있는 온갖 파행들, 갈등을 해결해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종교는 갈등의 중심에 위치해 있으며, 문명의 충돌을 부추기고 혼란과 전쟁을 유발시키고 있다.


그래서 심지어 ‘종교가 사악해 질 때’(찰스 킴볼)라는 제목의 책까지 나타나고 있다. 이 책에서 주장하는 주제는 바로 종교가 변질될 경우, 폭력과 사악함을 증대 시키는 결정적 요인으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절대적 진리의 주장, 맹목적 복종, 이상(理想) 세계의 도래,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시키는 태도, 성전(聖戰)을 선포하는 일 등이 바로 종교가 부패하고 사악하게 되는 결정적인 징후라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믿는 종교의 진리를 주장한 일, 거룩한 직분(職分)을 충직히 이행한 일, 완벽한 세계가 오리라고 기대하고, 오직 성스런 목적만 바라보며 감행한 일들이 자칫하면 오히려 종교가 변질되는 발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빠질 수 있는 종교 폭력과 종교적 사악함의 구렁텅이는 생각보다 크고 그것들이 바로 내 종교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이다. 서구 기독교와 이 땅의 기독교의 현장일 뿐만 아니라 다른 종교도 마찬가지다. 부정할 길 없는 우리의 현실, 우리 종교의 현장들이다.


자신만이 진리를 가지고 있다는 주장을 기독교가 강조하면, 한국의 다른 종교들은 위화감을 느끼고 기독교와 상대하지 않으려고 한다. 기독교와 맞서 봤자 소용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더욱이 한국의 개신교는 정치권력과 결탁하고 있으며 공권력에도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오죽하면 불교가 ‘아쇼카 선언’을 하면서 개신교와 함께 이 땅에서 공존공생할 수 있는지를 다른 종교에 묻겠다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겠는가?


불교와 기독교는 엄연히 다르고 차이도 많다. 닮은 점을 찾는 작업이 학문의 새 영역을 열고 있다. 그동안 서양은 불교를 이해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했고 불교학까지도 발주시켰다. 그러나 아직도 서양은 불교를 제대로 모르고 있다. 그런데 서양만이 아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서양을 얼마나 이해하는가? 아니 기독교의 무엇을 안다는 말인가? 갈등의 원만한 해결을 위해 화쟁을 내세운다. 그러나 화쟁이란 이념은 잘못하면 서로의 입장을 호도시킬 수 있다. 종교간 갈등이 등장하면 만병통치약처럼 내세우는 “종교간의 대화” 역시 냉철하게 살펴봐야 한다. 종교의 역사 속에서 대화의 주장 자체는 타 지역으로 기독교를 선교하기 위한 틀일 수 있다는 것을 너무 흔히 보아왔다.


▲이민용 원장
종교의 이념을 앞세워 마구 현실을 질타하고 당장 해법을 찾은 듯 착각하는 것은 금물이다. 종교가 현장에서 어떻게 펼쳐지는 것인지 깊이 들여다보아야 한다. 종교는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문제의 핵에 떠올라 있다. 종교는 해법이 아니라 현장을 보는 시각일 뿐이다. 


이민용 한국불교연구원장 minyonglee@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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