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옳은 것을 따지게 되면 옳지 않은 것을 논하게 된다

기자명 법보신문

생각이 모두 실체 없는 줄 알면
그 곳서 여여한 마음 드러나며
빛나는 그 마음이 부처님 지혜

 

▲국보 298호 갑사 삼신불회괘불.

 


135.늘 분별하는 마음을 멀리 여의고


雖一切時演說開示 而恆遠離妄想分別 雖知諸法皆無所作 而能示現一切作業 雖知諸佛無有二相 而能顯示一切諸佛 雖知無色 而演說諸色.


어느 때나 법을 말하되 늘 분별하는 마음을 멀리 여의고, 온갖 법에 만들어 낼 것이 없음을 알되 온갖 것을 만들어 보여주며, 모든 부처님이 다른 모습이 없다는 것을 알되 온갖 부처님을 드러내고, 설명해 줄 수 있는 색이 없음을 알되 온갖 색을 설명해 준다.


강설) 부처님의 마음 쓰임새 ‘종경’을 이야기하고 있다.


136.온갖 법의 성품인 진여는 말을 떠나


一切法性 皆離言故 亦通四種法界 皆不可說. 名無得物之功 物無當名之實. 理本無言 故事理交徹 不可作事理說 事事相卽 不可作一多說. 如楞伽 雖明五法 名相妄想正智如如 五皆空寂. 何者. 謂迷如以成名相 妄想是生. 悟名相之本如 妄便稱智 則無名相妄想 唯如智矣. 智因如立 智體亦空 如假智明 本來常寂 故空矣.


온갖 법의 성품인 진여는 말을 떠나 있으면서 또한 네 종류의 법계에 통하지만 다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름’에는 사물을 얻는 공능이 없고 ‘사물’에는 이름에 들어맞는 실체가 없으며 이치는 본디 말이 없다. 그러므로 ‘이(理)’와 ‘사(事)’가 서로 통하지만 ‘이(理)’와 ‘사(事)’로 말할 수 있는 게 아니며, ‘사(事)’ 하나하나의 본디 모습이 서로 상즉(相卽)이지만 ‘일(一)’과 ‘다(多)’로 말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이는 ‘능가경’에서 “다섯 가지 법 ‘명(名)’ ‘상(相)’ ‘망상(妄想)’ ‘정지(正智)’ ‘여여(如如)’의 실체를 밝히더라도 다섯 가지 모두 공적이다”라고 말한 것과 같다. 무엇 때문인가? 이는 ‘여여’를 깨닫지 못하여 ‘명名’과 ‘상相’을 만들게 되므로 이로 인해 ‘망상’이 생겨난 것을 말하기 때문이다. ‘명(名)’과 ‘상(相)’이 본디 ‘여여’인 줄 깨달으면 ‘망상’이 바로 ‘지혜’가 된다. 곧 ‘명(名)’과 ‘상(相)’과 ‘망상(妄想)’은 없고 오직 ‘여여한 지혜’일 따름이다. ‘지혜’는 ‘여여’에서 생기지만 ‘지혜의 바탕’ 또한 ‘공(空)’이요, ‘여여’는 ‘지혜’로 밝아지지만 본래가 늘 ‘공적’이니 그러므로 모두 ‘공’이다.


강설) 온갖 법의 성품인 참으로 여여한 ‘진여’를 알지 못하므로 ‘명(名)’과 ‘상(相)’과 ‘망상(妄想)’이 생긴다. ‘명(名)’은 개념이요 ‘상(相)’은 개념을 좇아 연상되는 모습이며 ‘망상(妄想)’은 실체가 없는 ‘명(名)’과 ‘상(相)’을 가지고 이리저리 분별하는 생각이다. 이들 모두 실체가 없는 줄 알면 그 자리에서 여여한 마음이 드러나고 그 마음이 빛나고 있는 것이 부처님의 지혜이다. 


137.공양 목탁을 올려라


夫入宗鏡 法爾亡言 非智所知 唯信所及. 如讚般若偈云 若人見般若 論義心皆絶 猶如日出時 朝露一時失. 故祖師云 論卽不義 義卽不論 若欲論義 終非義論.


‘종경’에 들어가면 법이 그러하여 말이 사라지니, 세간의 지혜로 아는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으로 도달하는 곳이다. 이는 반야를 찬탄하는 게송으로 말한 것과 같다.

사람들이 반야지혜 보게 된다면
옳다는 것 따질 마음 다 끊어지니
동쪽 하늘 붉은 태양 떠오를 때에
아침 이슬 한 순간에 사라지듯이.


그러므로 조사 스님은 “따지는 건 옳은 것이 아니니 옳은 것은 따질 것이 아니다. 옳은 것을 따지려 하면 결국 옳지 않은 것을 논하게 된다.”라고 말씀하신다.


昔梁武帝 於華林園重雲殿 集四部衆 自講三慧般若經 時傅大士在會. 太子遣問 大士何不論義. 答曰 皇帝菩薩所說 非長非短 非廣非狹 非有邊非無邊 如如正理 復有何言. 劉中丞 又問 大士 何不往復 衆所願聞. 答曰 日月停景 四時和適.


옛날 양무제가 화림원 중운전에서 사부대중을 모아놓고서 ‘삼혜반야경’을 강의하였는데, 그때 부대사가 법회에 참석하고 있었다. 태자가 사람을 보내 물었다.


문: 대사께서는 어찌 불법의 이치를 논하지 않습니까?
답: 황제 보살의 말씀이 긴 것도 아니요 짧은 것도 아니고, 넓은 것도 아니요 좁은 것도 아니며, 유(有)에 집착하는 것도 아니요 ‘무(無)’에 집착하는 것도 아니면서 여여한 올바른 이치인데 다시 여기에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
유중승이란 사람이 또 물었다.
문: 대중이 법문 듣기를 원하는데 대사께서는 어찌 나아가질 않습니까?
답: 해와 달이 아름답게 뜨고 지니 사시사철이 온화하고 편안합니다.


又 中天竺有出家外道馬鳴 世智辯才 善通言論. 唱言 若諸比丘 能與我論義者 可打揵搥 如其不能 不足公鳴揵搥 受人供養. 時長老脅 到彼國言 但鳴揵搥 設彼來者 吾自對之 卽鳴揵搥. 外道卽問 今日何故 打此木耶. 答言 北方有長老沙門 來鳴揵搥. 外道問言 欲論義耶. 答言 然. 於是廣備論場 大衆雲集 乃至 長老脅言 吾旣年邁 故從遠來 又 先在此座 理應先語. 外道言 亦可爾耳 現汝所說 吾盡當破. 長老脅卽言 當今天下泰平 大王長壽 國土豐樂 無諸災患. 外道黙然 不知所言. 論法無對 卽墮負處 伏爲弟子 剃除鬚髮 度爲沙彌 受具足戒. 又 有學人 請忠國師 和尙立義 師云 立了也. 學人罔措 被師喝出 非公境界. 故知 若入宗鏡 玄鑒豁然 如臨鏡中 自見面像 見卽便見 更俟發言耶.


또 중천축에 있던 출가외도 마명은 세간의 지혜와 변재가 뛰어나 말에 막힘이 없었다. 마명은 큰 소리로 “모든 비구가 나와 이치를 논할 수 있다면 공양 목탁을 올려도 좋지만, 그렇지 못하면 목탁을 올려 다른 사람의 공양을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라고 말하였다. 그때 협장로가 그 나라에 와서 “공양 목탁을 올려라. 마명이 오더라도 내가 상대하겠다.” 하여, 공양 목탁을 올리게 되었다. 마명이 물었다.


마명 : 오늘은 무엇 때문에 공양 목탁을 올렸습니까?
대중 : 북방에 계신 장로 사문이 오셔서 공양 목탁을 올렸습니다.
마명 : 공부의 이치를 논하고자 하는가?
대중 : 그렇습니다.
이에 넓은 토론 장소가 갖추어져 대중들이 많이 모이자 협장로가 먼저 말하였다.
장로 : 내가 나이도 많고 일부러 멀리서 와 먼저 이 자리에 앉았으니 순리로 먼저 말하겠다.
마명 : 그렇게 해도 좋습니다. 장로께서 말씀하신 것을 제가 모조리 논파할 것입니다.
장로 : 지금 천하가 태평하고 대왕이 장수하여 국토가 풍요롭고 온갖 재앙과 근심이 없구나.
마명 : (…… 장로의 말을 듣고 멍하니 대답할 바를 몰랐다)


법을 논할 대답을 찾지 못하자 토론에 진 마명은, 협장로의 제자가 되어 머리를 깎고 사미가 된 뒤 구족계를 받았다.
또 어떤 학인이 혜충 국사에게 “불법의 이치를 밝혀주십시오.”라고 청하기에, 국사께서 “이미 밝혔다.”라고 일러주니, 학인이 어찌할 바를 줄 몰랐다. 국사께서 꾸지람하며 “그대가 알 수 있는 경계가 아니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알아야 한다. 종경에 들어가면 깊이 탁 트인 마음자리를 보는 것이, 거울 속의 자기 얼굴 보듯, 보면 바로 보니 여기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느냐.

 

강설) ‘대승기신론’에서 말하는 부처님의 마음인 ‘대승’이 ‘종경’의 다른 말이다. 부처님의 한마음인 ‘종경’을 얻기 위하여 ‘큰 믿음을 일으켜 주는 글’이 ‘대승기신론’의 내용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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