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손가락질 받는 이름

기자명 청화 스님

산에 가서 보면 반듯한 바위에 음각된 이름들이 있다. 만일 그것이 사람의 이름이 아니고 멋있는 짧은 시구라면 어떨까? 아마 사람들은 그 앞에 걸음을 멈추고 그 시의 맛을 즐기면서 모처럼의 도도한 시심에 잠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이름 석 자는 시가 아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보아도 무슨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니고, 어떤 신선한 감흥을 주는 것도 아니다. 솔직히 말해서 바위에 새겨진 이름 석 자는 차라리 한 줄기 풀잎을 보는 것만도 못하고 한 마리의 송충이를 발견하는 것만도 못하다. 좀 더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사람의 이름자가 바위에 새겨진 그 자체가 식상해서 보기 싫은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왜 자기의 이름을 바위에 새기고 싶었을까? 혹 덧없는 인생을 살다가 어느 날 흔적 없이 사라질 것을 생각하면 허무하니까 자신의 무엇인가를 세상에 남기고 싶은 욕구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럴 수도 있다. 특히 이름은 여러 가지의 자기 것 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이니까. 아니 또 하나의 실질적인 자아이니까 그 바위에 자신의 이름을 썼을 것이다.


우리나라 속담에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있다. 이 말에서 우리는 유의해서 생각할 것이 있다. 그것은 여기서의 이름은 사람이 죽은 다음의 이름이라는 것이다. 죽은 다음의 이름은 보통의 이름과 엄격히 다른 점이 있다. 곧 그 이름은 그 사람의 생애가 다 담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속담의  그 이름은 결코 좋은 의미의 이름만은 아니다. 여컨대 악질적으로 산 사람은 악질적인 내용이 담기고 부도덕한 사람은 부도덕함이 담기기에 그렇다. 에디슨은 발명왕으로 그 이름이 세상에 회자되고 있지만, 유태인을 육백만이나 학살한 히틀러는 살인마라 하고, 정치에 간섭한다고 해서 자신의 어머니를 죽인 네로는 폭군으로 악명이 높다. 그러므로 사람은 이름을 남기되 어떤 의미의 이름을 남기느냐가 중요하지 않을 수 없다.


자연인 이명박은 전 국민적인 주목과 관심과 지지를 받아 한국 대통령이라는 최고의 명예의 자리에 그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4년이 지난 지금에 보면 대통령이라는 권한과 직책은 그 이름을 빛내기는커녕 오히려 손가락질을 받게 하고 있다. 이것은 대통령으로서 직무를 수행하는데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국민적 실망과 우려를 안겨준 임기 초의 미국과의 쇠고기 협상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쇠고기 협상 타결 건은 이 대통령의 경솔함의 극치였다. 이 대통령은 마치 자기 손 안의 떡 하나를 선심 쓰는 식으로 너무 쉽게 결정해버렸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국민적인 실망이 어느 정도였는가는 이른바 촛불정국을 떠올리면 알 수 있다.


4대강 사업도 그렇다. 그것도 마치 자기 집의 하수도공사나 하듯이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해버린 것이다. 많은 학자들의 반대, 국민들의 우려 같은 것은 아예 무시하고, 절차와 과정에 대한 면밀한 분석을 생략하거나 속이면서까지 오직 속도에만 역점을 두고 해치우고 있다. 그 밖의 미디어법 날치기, 한미 FTA 재협상, 한EU FTA 타결, 방송3사 어용화, 강정마을의 해군기지 건설 강행, 민간인 불법 사찰 등등 다 마찬가지다. 재고, 고민, 숙고, 이런 신중함이 없이 국가 대사를 자기 호주머니 속의 물건처럼 취급해버린 것이다. 다시 말해서 국민들의 의사나 견해나 바람 같은 것을 감안하거나 참고하거나 반영하려는 의지가 전혀 없었다.


▲청화 스님
국민들은 어느 결에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를 지루하게 여기고 있다. 어쩔 수 없이 시간은 갔고 그에 따라 이명박 대통령도 뉘엿뉘엿 져가는 서산의 해가 되었다. 이미 임기 중에 했던 일들이 나무들처럼 세상에 긴 그림자를 던지고 있다. 이제 그것들이 대통령 이명박의 이름을 쓰는 물감이 되고 있다. 빛나는 것도 아니고 아름다운 것도 아니다. 볼수록 혐오스러운 빛깔이다. 대통령 이명박의 이름을 쓸 그 물감이. 이런 물감으로 쓴 이름을 남기기 위해 대통령이 되었단 말인가.

 

청화 스님 전 조계종 교육원장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