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ril is the cruellest month, breeding
Lilacs out of the dead land, mixing
Memory and desire, stirring
Dull roots with spring rain.
Winter kept us warm, covering
Earth in forgetful snow, feeding
A little life with dried tubers…
4월은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피워내고
추억과 욕망을 뒤섞고
봄비로 잠든 뿌리를 일깨운다.
차라리 겨울에 우리는 따뜻했다.
망각의 눈이 대지(땅)를 덮고
마른 구근으로 가냘픈 생명만 유지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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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시는 그의 대표작인 장편 서사시 ‘황무지’의 도입부입니다. 해마다 4월만 되면 인용되는 이 구절은 깊은 함의를 지니고 있습니다. 엘리어트는 얼어붙은 땅을 뚫고 새로운 생명의 새싹이 돋아나는 4월을 오히려 잔인한 고통의 달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시 전체를 통해 엘리어트는 탄생 속에 죽음이 있고, 그 죽음 속에 탄생이 있다는 생명윤회 사상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4월은 생명의 ‘고통(suffering)’이 시작되는 잔인한 달인 것입니다. 이 시가 쓰인 1922년은 제1차 세계대전 직후로서 엘리어트는 전후 유럽의 정신적 황폐를 상징적인 시로 표현했던 것입니다. 물론 훗날 엘리어트 본인이 밝혔듯 자기 자신의 무의미한 삶에 대한 개인적 회의도 동시에 담겨 있었습니다.
‘4월은 잔인한 달’이란 구절은 해마다 4월이 되면 우리가 신문이나 방송에서 한두 번쯤은 듣게 되는 시구입니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왜 사월이 잔인한가에 대해 잘 알지 못합니다. 1970년대 전후하여 4월이 오면 연례행사처럼 일어났던 데모나 최루탄 연기가 자욱한 삭막한 봄을 이 시구와 연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는 엘리어트가 불교에 심취하여 생명의 순환에 대한 고뇌를 노래한 불교적인 시입니다.
이 시를 쓸 즈음 엘리어트는 거의 불교도였다고 스스로 고백한 적이 있습니다. 이 시는 계절의 순환 속에서 다시 봄이 오고, 힘들고 고통스런 삶의 세계로 돌아와야 하는 모든 생명체의 고통을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망각의 눈’에 덮인 겨울은 차라리 평화스러웠지만, 마른 땅에서 싹이 움트고 다시 살아나야하는 4월은 그래서 잔인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