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사의 생명과 영화를 누리며 영원히 살 수 있었던 인간은 자신들이 저지른 단 한 번의 실수로 돌이킬 수 없는 죄인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이같은 죄는 대물림되어 아담과 하와 뒤 태어나는 모든 인간들에게 똑같은 형벌이 내려진다.
전지전능하다는 기독교의 신은 자신의 피조물들이 죄를 범한다는 사실을 사전에 몰랐을까? 만약 몰랐다면 전지전능이 아닐 것이고 만약 알았다면 애초에 약속 따위는 하지 말았어야 했다. 신은 공의롭고 자비한 존재이다. 그런데 신이 어떻게 자신의 피조물들을 향해 단 한 번의 실수조차 용서치 않고 이런 가혹한 형벌을 내릴 수 있을까? 그러나 인간은 신이 하는 일에 이유를 붙여서도 안 되고 저항을 해서도 안 된다. 절대의 신 앞에 다만 머리를 조아리고 신이 주는 대로 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가 기독교의 인간이다.
신의 명령을 저버린 최초의 인간과 그 뒤에 태어난 모든 인간들을 향해 내린 신의 형벌은 다음과 같다. 첫째, 영혼의 죽음이다.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신은 인간과 단절하고 인간 생명의 근원인 영혼을 죽여 버린다. 인간은 이로 인해 신을 찾지 않고 무죄성과 도덕성과 자유성을 상실한 채 정신적 방황과 혼란을 맞이하게 된다. 둘째, 육체적 죽음이다. 기독교에서 생명은 육체와 영혼의 결합이다. 따라서 영혼이 죽으면 육체는 영혼과 분리되어 다시 흙으로 돌아간다. 이것이 곧 죽음이다. 셋째, 지옥의 형벌이다. 신의 인간에 대한 형벌은 인간의 일생에만 그치지 않고 영원한 불구덩이의 지옥 속으로 처넣어 무섭고 끔찍한 고통을 당하게 한다.
기독교에서 인간에게 가장 심한 것은 원죄의 문제다. 이 원죄가 해결되지 않는 한 인간에게는 빛도 미래도 없다. 영원한 고통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이에 비해 불교에서는 대물림 되는 죄를 인정하지 않고 모든 죄는 인간 각자가 태어나면서부터 지니고 온 무명에서 기인된다고 본다. 무명은 중생이 일으키는 모든 죄의 근원이자 생로병사의 원인이라는 기독교의 원죄와 흡사한 성질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불교에서 인간들이 고통을 겪는 원인은 본질적으로 무명에 두고는 있지만 이는 신의 형벌 때문이 아닌 몸과 마음이 지니고 있는 본래의 성질 때문이라고 본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사실은 생로병사를 비롯한 모든 괴로움의 원인이 되는 이 무명은 실체가 없다는 점이다. 즉 이 무명은 그 성질이 고정되어 있다거나 영원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무명은 인간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 정화될 수 있다. 또 불교에서 볼 때 인간은 신의 형벌이 있든 없든 생로병사를 비롯한 갖가지 고통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인간은 애초부터 영생할 수 없는 존재였다. 죄의 삯은 사망이 아니라 생(生)으로 말미암아 사(死)가 있는 것이다.
또한 불교에서는 영혼을 인정하지 않으므로 영혼의 죽음을 말하지 않는다. 인간에게 마음은 존재하지만 영혼은 존재하지 않는다. 불교에서는 마음 스스로가 무명을 일으키기도 하고 죄를 짓기도 하지 영혼이 죽음으로 인해 도덕적 타락의 결과를 가져왔다고 말하지 않는다. 인간은 신의 징벌이 아니더라도 도덕적으로 타락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이미 지니고 태어났다고 보는 것이 불교의 입장이다.
이는 지옥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신은 인간이 죄를 지을 줄 알고 미리 지옥을 만들어 놓았다. 지옥은 신의 창조물이며 복수의 장소다. 그러나 불교에서 지옥은 인간 스스로의 업이 만든 유한의 세계이며 죄의 과보가 끝나면 벗어날 수 있는 희망의 세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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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열 유마선원 원장 yoomale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