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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해탈과 존재의 이중적 도리

생멸법은 곧 존재와 무의 有無 대대법
有無 아닌 空 이해는 직관적 알아차림

“돈오(頓悟)하여 무생(無生)을 요달하고서 부터는 모든 영욕에 어찌 근심하고 기뻐하겠는가?”


돈오의 경지에 노니는 것은 공의 경지에 존재하는 것을 의미한다. 공의 경지는 이미 원효대사가 ‘금강삼매경론’의 서문에서 암시하였듯이, 비유비무(非有非無)라는 이중부정과 같은 초탈의 경지에서 머무는 것을 말한다. 초탈의 경지는 곧 바로 해탈의 경지를 말한다. 해탈의 경지는 일체의 경계를 다 벗어나 있는 상태이니, 그것은 존재와 무의 양 경계를 떠난 상태와 같다.


이 세상의 모든 존재방식은 다 대대법(待對法)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은 다 서로 짝을 이루어 존재한다. 부처님이 보리수 아래서 반짝거리는 새벽별을 보고 홀연히 깨달았다고 하는 것도 새벽별의 반짝거리는 이중적 대대법(待對法)이 우주의 진리임을 부처님이 문득 깨달았다는 뜻이겠다. 연기법도 우주의 모든 것이 서로 대칭적인 한 쌍을 이루어 생기고 사라지는 대대법을 말함인데, 생멸법은 곧 존재와 무의 유무(有無) 대대법이다.


선가에서 말하는 돈오는 유무의 대대법을 동시에 다 벗어난 해탈의 경지를 말하므로 그 경지는 바로 공의 경지를 증오(證悟)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깨달았다는 의미의 증오는 해오(解悟)와 다르게 쓰인다. 해오는 지성의 과정을 거쳐 이해하고 깨달았다는 뜻이지만, 돈오는 그런 지성적 이해의 차원 즉 개념적 이해의 수준을 건너 뛰어 문득 순식간에 직관적으로 깨달음이 열렸다는 것을 말한다. 어린 아기가 자기의 엄마를 알아보는데 어떤 지성적 개념의 놀이가 전혀 필요하지 않다. 자기의 엄마를 보자마자, 그 아기는 단박에 자기의 엄마임을 알아본다. 이것이 곧 증오와 일치한다.


유(존재)도 아니고 무도 아닌 그런 공의 이해는 직관적인 알아차림의 차원이므로 아기가 자기의 엄마를 바로 알아차리듯이, 그렇게 단박에 깨달아 버린다. 원효대사의 표현처럼 유무의 양변을 다 벗어난 상태이므로 존재가 없듯이 무도 없다. 이 말은 생(生)도 없듯이 자연히 멸(滅)도 없다. 공의 경지는 비유비무(非有非無)의 이중부정이듯이, 또한 무생무멸(無生無滅)의 이중부정이기도 하다. 그런 초탈과 해탈의 경지에서 어찌 더 잡다한 다른 구별들인 근심이나 기쁜 일이 생기겠는가?


“깊은 산 들어가 고요한 곳에 머무니, 깊고 험한 산 그윽하게 뻗어 낙락장송 아래로다. 한가로이 노닐며 고요히 앉은 야승가(野僧家=세상을 여기 저기 유람하는 중)이지만, 고요하고 쓸쓸한 안거 참으로 소쇄(蕭灑)하도다.”


이 영가대사의 표현은 공의 도리를 증득한 이의 자유스럽고 한가하지만, 깨끗하고 청아한 풍모를 기술한 것이겠다. 우리가 불법을 닦아 얻는 이익은 먼저 이중부정의 도리를 증득하여 공의 도리로서 무한 자유의 경지를 체득하여 생활하고자 함이고, 또 다른 경지가 있으니, 그것은 원효대사의 말처럼 이번에는 이중긍정의 도리를 터득하여 존재의 풍성한 도리를 역시 증득하여 즐거움을 누리고자 함이다.


초탈의 이중부정의 도리는 마치 가을 겨울의 시절처럼 나무가 겨울을 보내기 위하여 모든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다 벗어 버리는 모습과 유사하고, 이중긍정의 도리는 인간이 자의식으로써 아상을 세워서 소유의 경계에 젖어 사는 어리석음을 훌훌 벗어던지고 세상을 여여하게 바라보면서 자기의 자의식이 없이 누구나 그처럼 이 세상을 오고 그처럼 이 세상을 가듯이 여실하게 세상을 살아가는 태도를 말한다.


▲김형효 교수
이것은 마치 봄과 여름의 시절처럼 만물이 풍성하고 넉넉하게 존재하는 법을 불법이 역시 닮으려는 것을 상징한다 하겠다. 원효대사가 암시했듯이, 불법은 초탈의 사고방식을 말하면서 가을 겨울을 말하고, 동시에 불법은 존재론적인 풍요를 말하면서 봄, 여름처럼 넉넉한 세상과 즐겁게 사귀기를 종용하는 이중성을 말한다.
 

김형효 서강대 석좌교수 kihyhy@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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