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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광사 회주 지홍 스님

실천이 참 불자의 모습

 

▲지홍 스님

 

 

법우 형제 여러분 반갑습니다.


올해도 벌써 사월에 접어들었습니다. 부처님오신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오늘은 ‘중생의 아픔 따라 오신 부처님’이라는 주제로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뜻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화엄경’에서는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의미를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중생은 죄악이 깊고 두려움에 싸여있다. 백 천겁 동안 부처님을 친견하지 못해서 생사에 표류하며 온갖 고통 받을 때, 이들을 구하려고 부처님이 세상에 오셨네.’

 

이 세상 중생들의 고통이 너무 커서 그 고통으로부터 중생을 건지기 위해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은 다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중생의 고통이란 어떤 모습일까요.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어떤 과정을 통해 고통스런 중생의 곁으로 오셨을까요. 또 하나는 우리안의 부처님, 스스로가 완전한 완성자로서, 내 안의 부처님을 어떻게 하면 현실 삶 속에서 드러내 내 스스로가 부처의 삶을 살 것인가의 측면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보신 우리 중생의 고통은 ‘생로병사(生老病死)’의 고통입니다. 이것을 이 중생의 네 가지 고통이라고 했습니다. 업을 갖고 이 세상에 태어난 것도 고통이고, 늙어가는 것도 고통이며, 병들어 신음하는 것도 고통이고 죽은 것도 고통이라 했습니다. 이 네 가지는 중생의 근본 고통입니다. 우리가 중생심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이 사고(四苦)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생이 고통인 이유는 우리가 과거에 업을 지어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고통이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태어난 것 자체가 축복 이고 즐거움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우리는 태어남을 그렇게 봐야 되고 생을 그렇게 축복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살지 못했을 때 생은 고통이 됩니다.


늙어가는 것도 고통입니다. 연세 많으신 분들 중에는 나이를 먹어가면서 세상을 알고 부처님의 법을 배우며 다양한 삶의 경험 속에서 젊은 사람들보다 더 훌륭한 세계를 경험하시는 분들, 마음이 넓어지신 분들, 자비가 넘치시는 분들도 많이 계실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분들을 제외하고 대다수의 많은 사람들은 늙어가는 것 자체를 고통스러워하고 있습니다.


중생의 고통 따라 오신 부처님


그 다음은 병입니다. 병이 드는 것은 고통입니다. 젊은 시절 잠깐 아프고 거쳐 가는 것이 병이라고 생각 한다면 왜 병드는 것이 고통인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늙음과 함께 오는 노병(老病)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고 합니다. 그것은 어떤 통증과도 비교할 수 없으며 우리가 그 상황에 처해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외롭고, 괴롭고, 아픈 일입니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눈에 보이는 고통입니다. 이런 고통을 지나 맞이하게 되는 죽음의 고통은 여기 있는 사람 누구도 체험해 보지 못했기 때문에 아무도 알 수가 없습니다. 도를 깨달으신 분들, 거창한 도가 아니라도 진리의 한 귀퉁이를 본 사람들은 죽음을 또 다른 삶의 과정으로 여기며 받아들일 수 있지만 죽음이 이생의 끝이라는 생각을 하며 자기 자신과 삶에 집착한다면 그 죽음은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인 우리 인생의 근본적인 네 가지 고통입니다. 여기에 애별리고, 원증회고, 구부득고, 오온성고의 네 가지 고통이 더 해져 우리의 삶은 더욱 고통스러워집니다. 즉 오욕이 충족되지 못해 생기는 고통입니다.


그런데 요즘 보면 이런 것 말고도 많은 고통이 있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크고 작은 갈등에 직면해 있습니다. 양극화의 심화로 빈부격차는 더욱 벌어져가고 국민들의 삶은 날로 고통에 시달리며 지쳐있습니다. 생태환경, 민족통일, 국민소통, 분배의 문제로 정부와 국민들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주도권을 지닌 기득권과 정치권력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기 보다는 자신들의 이익만 채우기에 급급한 모습에 마음이 아픕니다. 만약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다면 이러한 문제들을 어떻게 대면하실까요?


부처님께서는 세상에 태어나시자마자 ‘삼계의 중생들이 모두 괴로움에 빠져있으니 내가 이들을 편안하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일체 중생 모두가 평화스런 삶을 누리게 하겠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고통스럽게 살고 있는 우리들 삶의 현장에 부처님께서 그 고통을 따라서 오신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마땅히 이 삶 속에 부처님께서 오실 수 있도록 해야 하며 이 고통스런 삶 속에서도 부처님을 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부처님이 현재 이 세상에 계셨다면 우리에게 닥친 많은 문제들을 모른 척 하지 않으시고,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해 먼저 앞장서셨을 것입니다. 수많은 경전의 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 부처님은 중생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싸우고 갈등할 때 대중 속으로 직접 들어가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말씀뿐만 아니라 몸으로 직접 나서셔서 우리의 고통을 함께 아파하셨습니다. 그리고 중생들의 어리석음을 깨우쳐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지내던 두 부족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그들이 사는 곳에 가뭄이 들자 두 부족은 서로 강물을 쓰겠다고 싸우게 되었습니다. 한 부족은 부처님께서 태어나셨던 석가족이었고 다른 부족은 코살라족이었습니다. 석가족이 매우 작은 부족인데 비해 코살라족은 당시 인도에서도 규모가 큰 군사국가였습니다. 그런데 말다툼이 커져 전쟁까지 불사하게 되자 이 모습을 보신 부처님께서는 직접 그들 곁으로 나아가 말씀하셨습니다. “상대를 적으로 여기는 어리석음을 버리고 함께 힘을 모아 이 어려움을 극복하라”고 가르침을주셨습니다. 경전에서는 단순하게 설해져 있지만 아마도 부처님께서는 두 부족 곁에 오래 머물며 이 사람 저 사람을 만나 많은 가르침을 주셨을 것입니다. 두 부족이 모두 살 수 있는 길을 가르쳐 주셨던 것입니다. 부처님의 말씀을 들은 두 부족은 잘못을 뉘우치고 힘을 합쳐 가뭄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집단과 집단 뿐 아니라 개인과 개인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만 생각하고 자기중심적으로만 생각한다면 싸움이 일어납니다. 서로 힘을 합쳐 서로 이해하고 더 큰 사랑으로 승화시키려는 마음이 모아진다면 더 큰 성취가 있습니다.


우리가 부처님께 귀의한다는 것은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살고, 부처님을 닮아가겠다는 의미입니다. 부처님 앞에서 오직 나와 내 가족만을 위한 기도를 하고 있지는 않는지 돌이켜봐야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중생의 아픔에 대해 연민을 가지셨고, 그 아픔에서 우리들을 구하고자 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는 한 순간도 누구 한사람만을 위해 법을 설하지 않으셨습니다. 모두가 함께 사는 길을 찾으셨고, 자비를 베푸셨으며, 누구도 차별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또 그런 일을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가장 고통스러운 일을 스스로 찾아 맨발로 다니셨습니다. 그것이 부처님의 삶이었습니다. 우리가 그 길을 따르는 부처님의 제자라면 누구든 우리만 잘 살게 해달라는 기도로만은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평화를 얻도록 기도하는 마음을 가져야 대승불교의 불자며 부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신 가르침에 합당할 것입니다.


불교사 생각하면 전법 힘써야


그런데도 우리는 늘 자기 혼자만을 생각하곤 합니다. 자기만을 위한 신행, 생각, 사고방식은 버려야 합니다. 적어도 불자라면 그런 생각을 버려야 부처님의 가르침이 내 맘에 깃들 수 있고, 그래야만 부처님의 가르침이 우리 삶의 현장에서 구현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부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많은 사람들의 안락과 이익을 위해 살아가야 합니다. 부처님과 같은 원력을 세워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소외계층에게 따뜻한 온정을 베풀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부처님이 우리 곁에 오신 뜻을 잘 받드는 일입니다. 우리 안에 계신 부처님을 우리의 삶 속에 드러나게 하고 내가 부처로서의 삶을 사는 방법은 자비심을 갖고 나와 남을 차별하지 않는 것입니다.


불교가 우리나라에 전래된 과정을 살펴보면 우리는 불교를 소홀하게 대해서는 안 됩니다. 조선 오백년의 배불정책은 지금까지도 사실상 이어지고 있습니다. 정치권력이 불교를 차별하는 역사가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속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이 이 사회에서 실현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바로 우리입니다.


우리 이전의 시대에는 어떻게 살았던가요. 조선조에 불교가 명맥을 이을 수 있었던 것은 조선조의 불자들이 엄청난 고통을 겪으며 불교를 이어왔기 때문입니다. 스님들은 전시에 동원돼 승군이 되었고 평상시에는 노역에 동원되었습니다. 국가의 동원령은 결코 거부할 수 없었고 국가에서도 가장 동원하기 쉬운 집단이 스님들이었습니다. 그 스님들은 목숨을 걸고 묵묵히 그 역할을 했습니다. 어찌 보면 국가의 필요에 의해 불교를 존치시켰던 측면도 있는 셈입니다.


그 이전에도 수많은 구법승들이 불법을 구하기 위해 인도로 향했습니다. 구법을 길을 가다가 죽고, 가서 죽고, 갔다 돌아오는 길에 죽으면서도 그 가르침을 전했습니다. 또 수많은 유학승들이 고향을 떠나서도 열심히 공부해 가르침을 전했습니다. 그 수많은 사람들, 우리 민족의 역사와 함께하며 자신의 삶을 걸고 부처님의 법을 우리에게 전한 것입니다. 피를 흘리며 전한 법을 우리는 결코 소홀히 대해서는 안 됩니다.


비록 목숨을 바치지는 않더라도 정성을 다해 전법하겠다는 마음이 있어야 우리 후대에, 미래세대에 평화의 세계를 물려줄 수 있습니다. 열심히 전법하고 수행하고 자비심으로 모두를 감싸 안고 살아간다면 내 안에 계신 부처님은 부처님오신날 이전이라도 우리의 삶 속에 오실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정리=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이 법문은 4월1일 서울 불광사 일요정기법회에서 회주 지홍 스님이 설한 법문을 요약한 것입니다.

 


 

지홍 스님
1970년 범어사서 출가했다. 1971년 사미계를, 1974년 비구계를 수계하고 1990년까지 광덕 스님을 시봉했다. 1994년 조계종 개혁회의 의원 겸 포교부장, 1998년 조계사 주지를 역임하고 11, 12, 13대 조계종 중앙종회의원으로 활동했다. 현재 불광사·금강정사 회주이며  인드라망생명공동체 공동대표와 민족공동체추진본부 본부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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