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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광선(狂禪)

기자명 윤창화

경전·계율 무시 마구잡이 행동 일삼는 납자
공부도 않는 자들의 경허 스님 흉내는 안돼

무엇을 해석할 때는 반드시 언어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여러 가지 용어 가운데 ‘왜 하필이면 그 말을 썼는지 그 의미와 의도, 그리고 시사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관찰해야 한다. 우리의 생각이나 인식, 사상이나 철학은 언어문자를 통해서 표출된다. 그러므로 언어문자를 제쳐놓고 해석, 풀이한다는 것은 자의적인 해석에 불과하다.


광선(狂禪)이란 ‘미친 선’이라는 뜻이다. ‘광선’이라는 두 자(字)에서 주어는 ‘미칠 광(狂)’이다. 미쳤다는 것은 정상에서 이탈한 정신 상태, 정신착란 혹은 그런 상태를 말한다. 이에 대해 중국 남조(南朝) 제나라의 역사를 적은 책인 ‘남제서(南齊書)’에는 ‘태만교자 위지광(怠慢驕恣 謂之狂)’이라고 말하고 있다. ‘태만하고 교만, 방자한 것을 광이라 한다’는 것인데, 매우 옳은 정의이다.


광선 혹은 광선자(狂禪者)는 ‘비정상적인 언행을 하는 선승’ ‘광대 같은 미치광이 납자’를 가리킨다.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이나 경전, 계율, 교학 등을 무시한 채 마구잡이로 행동을 일삼는 납자를 가리킨다.


그들은 음주(飮酒)와 식육(食肉), 그리고 섹스가 반야지혜를 수행하는데 아무 지장을 주지 않는다고 한다. 손이 닿는 대로 먹고 마시고 껴안고 발이 닿는 대로 ‘갈 지(之) 자’ 걸음을 한다. 그 밖에 선정(禪定)은 하지 않고 문자나 지식만을 탐독한 결과 오만방자한 것도 광선이고, 지혜만 있고 선정력(禪定力)이 없는 광혜(狂慧)도 광선의 일종이다.


천태종 출신 적진(寂震)은 ‘금강삼매경 통종기(通宗記)’에서 다음과 같이 광선을 비판한다.


“달마의 선종은 오직 명심견성(明心見性)만 최고로 여긴 나머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일대 장교(一大藏敎, 경전)를 부질없는 군소리로 여겨서 무엇 때문에 장황하게 49년 동안 말할 게 있느냐고 한다. 아! 말세의 광선자들은 교학을 내팽개치고 망령되이 반야를 말하며, 그 행동은 범부와 같은데도 곧 제불(諸佛)과 견주어 같다고 하니 참으로 슬픈 일이다. 또 여래께서 말씀하신 경전과 가르침은 다 문자에 불과하다고 하니 어찌 언어문자를 떠나서 이치를 설명할 수 있겠는가?”


이상에서, 광선승(狂禪僧)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대장경 등 경전을 아주 하찮게 여긴 나머지 종잇조각이나 휴지조각, 또는 쓸데없는 말, 부질없는 말을 수록한 것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그리고 살불살조(殺佛殺祖) 즉 ‘부처와 조사는 성스러움의 대상이지만 성스러움에 갇히면 진면목, 실체를 볼 수 없다’는 말을 곡해하여 예불도 하지 않고 존경심을 나타내도 않는다. 이런 행동은 주로 문자를 모르는 무식한 납자, 참선도 하지 않는 건방진 납자들이 깨달은 척 그런 짓을 한다.


광선승은 한때 우리나라에도 적지 않았던 것 같다. 당시(1920∼30년대) 불교잡지를 보면 “선승이라고 하는 자들이 너도나도 해인사 팔만대장경을 가리켜 ‘구린내 나는 똥 무더기’라고 말하고 다닌다고 비판하고 있는 기사를 볼 수 있는데, 특히 해방 후 선이 다시 일어나던 1960∼70년대는 이런 말이 더욱 유행했다.


근래 광선의 대표적인 인물은 경허 스님이라고 할 수 있다. 경허화상은 기질이 매우 호탕하여 술과 고기는 다반사(茶飯事)로 여겼다. 마을에서나 저잣거리에서나 어디서나 거리낌 없이 드셨는데, 여색(女色)에도 무애자재했다.


▲윤창화
윤리와는 거리가 먼 광선을 일삼았는데, 무애자재한 세계, 깨달음의 세계라는 미명 하에 윤리 도덕을 무시한 것이다. 깨달았다고 해서 윤리 도덕을 경시하고 몰인격적인 행동을 한다면 그것은 한마디로 광기(狂氣)에 지나지 않는다. 무애자재란 욕망과 번뇌, 망상으로부터 자재함을 뜻하는 것이지, 주색잡기를 뜻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경허 스님의 경우 깨달음이 있어서였는데, 공부도 하지 않은 자들이 너도나도 흉내 내는 것은 조심해야 할 일이다.
 

윤창화 changhwa9@hanmail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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