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덕숭총림 수덕사 방장 설정 스님

“탐진치서 벗어나 걸작 인생 만들라”

 

▲설정 스님

 

 

인생을 흔히 예술작품에 비유합니다. 누구나 주어진 시간과 공간 속에서 자신의 열정과 의지, 지혜를 모두 쏟아 부어 예술품을 만들어 갑니다. 그 과정에서 어떤 사람은 걸작을 만들어 많은 사람에게 감동과 희망, 용기를 주기도 합니다. 그런데 똑같은 생을 살아가면서 어떤 사람은 졸작을 만들어서 자신도 불행해지고, 남도 어렵게 만드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럼 인생을 살아가면서 걸작을 만들 것인지, 아니면 졸작을 만들 것인지는 누가 결정할까요. 그것은 바로 자기 자신에게 달려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이 사바세계를 고의 세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이 삼재와 팔난이 계속되는 고통의 연속이기 때문입니다. 늘 삼재와 팔난이라는 위협이 존재하는데도 껍데기에만 매달려서 우왕좌왕하면서 고통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어리석은 중생이라고 하는 겁니다. ‘나’라는 것이 누구인지를 모르고 어리석은 행위를 하고 안 좋은 환경 속에서 스스로 힘들게 살아가는 게 중생입니다.


우리의 생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욕생(欲生)이고, 다른 하나는 원생(願生)입니다. 욕생이라는 것은 이 사바세계에 태어난 보통 중생들이 살아가는 방식입니다. 자기가 이 세상에 어떻게 나왔는지, 또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그냥 자기 업대로 살아갑니다. 그래서 다른 말로 업생(業生)이라고도 합니다.


이에 반해 원생은 자기의 의지대로 살아가는 겁니다. 분명한 원을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에 날 때도 울지 않고, 인생을 살아가면서 전혀 고통을 느끼지 않습니다. 중생을 위한 삶을 살아가기 때문에 따로 근심걱정도 없고, 오직 걱정이 있다면 중생을 더 즐겁게 해주지 못하고 편안케 하지 못하는 것뿐이라고 여깁니다.


욕생은 늘 고통이 따릅니다. ‘나’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늘 괴로움이 뒤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욕생을 사는 사람은 ‘탐진치만의(貪瞋痴慢疑)’라는 다섯 가지에 사로잡혀 자기 삶을 운영해 갑니다. 늘 탐욕스럽고, 화내고, 어리석고, 오만하고, 의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그 사람의 삶은 불행하고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 것입니다. 어느 곳을 가든지, 항상 원망하고, 미워하고, 질투하고, 시비하는 마음이 일어 늘 안 좋은 쪽으로 몰고 가는 것입니다.


껍데기에만 매달려 우왕좌왕


그런데 부처님께서는 모든 생명은 본래 지혜롭고, 너그럽고, 자비스럽고, 원만하고, 모든 공덕으로 이미 다 갖춰져 있다고 했습니다. 그럼 왜 이처럼 어리석은 중생으로 살아가는 것일까요. 그것은 스스로 ‘탐진치만의’로 가려 우리 안에 이미 있는 수많은 보물들을 천만분의 일도 꺼내 보이지 못하고 살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이런 중생들에게 자기 자신 안에 본래 있는 보물들을 꺼내 쓰라고 강조하셨고, 그 방법을 말씀하신 게 팔만대장경입니다. 진리라는 것이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자기 안에 있다는 것이고, 그것을 꺼내 쓰도록 가르침을 주신 것입니다.


그럼 우리가 업생으로 고통 받고 괴로워하고 어떻게 태어나고, 죽을지도 모르고, 그냥 업대로 시간을 소모하다 죽을 것입니까. 아니면 자신에게 있는 무한한 보배, 무한한 진리를 꺼내서 자유자재로 쓰면서 영원히 업생의 윤회를 끊어버리고 영원한 생명을 누리면서 대자유, 대무애, 대평화, 대광명을 누리면서 살 것입니까. 여러분은 어떤 삶을 살겠습니까. 부처님은 이런 삶을 살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염불과 주력, 참선을 하라는 것도 결국 자신 안에 있는 무한한 보물을 꺼내서 사용하는 방법을 말한 것입니다.


근데 우리 중생은 어리석게도 좋은 것이 있다고 해도 믿지를 않고, 또 그걸 꺼내서 쓸 생각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보물을 꺼내 쓰는 방법은 복잡하지도 않고 간단합니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부터 염불이든, 주력이든, 참선이든 무엇이든 열심히 해보세요. 염불과 주력, 참선은 모두 자기 마음을 맑히는 것입니다. 자기 마음에 있는 분별과 망상, 탐진치만의를 모두 없애고, 번뇌가 가라앉게 되면 자기 자신 안에 있던 보물이 떠오르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나오는 순간, 여러분은 영원한 자유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영원한 나를 느낄 수 있고, 자유자재로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나이를 먹으면 쉽게 포기하게 되고 망상도 많아집니다. 죽은 뒤에 대한 걱정을 하지요. 그러나 자동차도 오래 타면 폐차를 하고, 집도 오래되면 허물고 새집을 짓는 것처럼 우리 육신도 언젠가는 버려야하고, 놓아야 합니다. 육신을 놓아버리는 것에 당당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그 준비들을 해야 합니다. 늙어서 원망하고 의심해봐야 자기 생에는 전혀 도움이 안 됩니다.


그런 생각을 버리고 공부를 하세요. 자기 마음에 있는 무한한 보배를 지금부터 꺼내 쓰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누가 됐든 늘 좋은 생각으로 대하고, 설사 싫어하고 미워하는 사람이 있더라도 끌어안고, 보듬어야 합니다. 늘 모든 생명에게 감사하고 고마운 생각을 갖고 다른 생명을 편안하게, 즐겁게 해주고 혹 도와줄 것은 없을까라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이런 마음이 점점 쌓이면 자신도 모르게 번뇌 망상이 줄어들고, 원망하거나 미워하는 생각이 없어지게 되고 결국 넓어지고 당당해 집니다. 그 생각은 환희심으로 변하게 되고, 결국 자신에게 복이 되고 덕이 되는 것입니다. 또 지혜가 일어나는 출발점이 되기도 합니다.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섭섭한 생각이나 미워하고 의심하는 생각들은 모두 쓰레기입니다. 이런 쓰레기들을 몸속에서 털어내야 합니다. 죽은 이후 극락과 천국을 생각하지 마세요. 지금 이 순간부터 여러분들이 극락과 천국을 만들어보세요. 만드는 것은 간단합니다. 자기마음 속에 있는 삿된 쓰레기들을 모두 내려놓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을 깨끗하게 하고 아름답게 하는 것입니다.


한번 해보세요. 연습을 해서 그런 마음을 갖게 되면 그 때부터 좋은 기운이 피어나게 됩니다. 우리가 흔히 ‘마음을 밝힌다’, ‘마음을 드러낸다’, ‘견성을 한다’는 것들이 다른 것이 아니라 결국 마음속에 있는 쓰레기들을 놓아버리는 것입니다. 아무리 공부를 하고 염불하고 주력을 한다고 해서, 그 쓰레기들을 마음속에 끌어안고 있으면 절대 공부가 될 수 없습니다. 밭을 고르게 갈고 좋은 씨를 뿌려야 결실을 볼 수 있듯, 인생의 걸작을 만들려면 마음속에 있는 잡초와 못된 벌레들을 걷어내고, 잘 다듬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지금까지 살아온 데로 의심하고, 시기질투하고 섭섭한 그 생각 그대로 살아가면 결국 졸작 밖에 나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도 그걸 원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지금부터 인생의 걸작을 만들어 내기 위해 노력해 봅시다. 그것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마음속에 있는 ‘탐진치만의’를 없애는 것입니다. 염불이건, 주력이건, 참선이건, 어떤 것이라도 꾸준하게 하면 얼마 되지 않아서 금방 환희심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아! 인생 살만하구나. 이런 기쁨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그런 환희심을 느끼는 데는 나이가 많고 적음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이런 생각으로 살면 그 사람은 기쁨과 용기, 자신감으로 삶을 마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젊은 사람이라도 이런 생각이 없으면 항상 따분하고 절망하고, 비관적으로 살게 됩니다.


내 안에 있는 본래 보물 꺼내기


기왕이면 삶을 사는데 왜 실패한 삶을 살아가야겠습니까. 마음이 청정한 사람은 어디가든지 극락입니다. 처처안락국이라고 했습니다. 지금 있는 그 자리에서 극락과 천당인 것입니다. 그러니 죽어서 확신도 없는 극락과 천당을 기대하지 마시고 지금부터 만들어가세요.


근대 대선지식이었던 경허 선사는 어느 날 이런 게송을 하셨습니다.


세여청산하자시 (世與靑山何者是)
춘성무처불개화 (春城無處不開花)
오욕에 물들어 사는 사람과 세상을 버리고 공부하는 사람이 있는데 어느 것이 진리이겠습니까. 봄바람에 꽃피지 않는 곳이 없더라.


마음이 청정하고 자기를 발견해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보배를 드러낸 사람은 세속이니 안식이니 하는 것에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그 경계에서는 일체가 환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미 그 자리는 용기의 땅이요, 광명의 땅이요, 자유의 땅인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 이 순간부터 마음에 있는 오물을 모두 버리고 모든 생명에게 ‘어떻게 하면 기쁨과 희망을 줄 것인가, 혹은 편안함을 줄 것인가.’라는 생각을 마음에 담고 주력이든 참선이든 염불이든 꼭 한 번 해보는 겁니다. 그래서 내 마음에 있는 그 수많은 보물을 찾아내서 영원토록 사랑을 하고 모든 생명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나눠주는 겁니다. 굳은 의지와 신념을 갖고 공부를 하면 얼마가지 않아 환희심이 생겨날 겁니다. 한번 해보세요. 진짜 좋은 길이 있을 겁니다.
 

정리=권오영 기자 oyemc@beopbo.com   


이 법문은 4월21일 서울 호압사 윤삼월 초하루 법회에서 덕숭총림 수덕사 방장 설정 스님이 설한 내용을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설정 스님

원담 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1955년 수덕사에서 혜원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1961년 범어사에서 동산 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했다. 1955년 정혜사에서 수선안거 이래 봉암사 선원 등 제방선원에서 25안거 참선 수행을 했다. 수덕사 주지, 조계종 제11대 중앙종회의장 등을 역임했으며 지난 2009년 덕숭총림 수덕사 방장에 추대돼 후학들을 지도하고 있다.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