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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종 노동위원회의 과제

참 반가운 일이다. 조계종이 노동위원회 설치를 본격화했다. 자승 총무원장이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약속한 게 현실화한 셈이다. 당시 자승 원장은 “노동문제가 사회적으로 심각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그렇다. 비정규직 비율이 한국 사회처럼 높은 나라는 드물다. 이 나라처럼 정리해고가 자유로운 나라도 많지 않다. 당장 독일과 비교해볼 일이다. 독일은 직장 문을 닫으려면 경영진이 노동자들의 ‘생계 대책 계획서’를 제출해야 가능하다. 한국처럼 기업은 망하지만 기업인은 평생 호의호식하며 살아가는 나라는 전형적인 후진국 문화다.


조계종이 노동위원회 법령을 만들겠다고 나선 계기가 된 쌍용자동차 해고사태로 노동자들이 곰비임비 생명을 잃고 있는 현실은 단순히 개탄만 할 일이 아니다. 전쟁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무자비한 공권력의 탄압에 이어 ‘무급휴직 뒤 복직’ 약속을 모르쇠 하는 경영진에 대한 분노는 마땅히 필요하다. 동시에 그런 사태를 원천적으로 막을 수 있는 법과 제도를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는 확신과 실천이 우리 사회에 퍼져가야 옳다.


기실 문제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차별이나 정리해고 노동자들의 절망으로 그치지 않는다. 청년들의 실업 또한 총무원장 표현을 빌리면 대단히 ‘심각한 수준’이다. 전 세계적으로 비싼 대학 등록금을 4년 꼬박 내고 졸업한 뒤 취업을 못해 스스로 목숨 끊는 젊은이들이 줄을 잇고 있다. 등골이 빠지도록 일을 해서 어렵게 학비를 대준 부모 얼굴 대하기가 부담스럽기에 벌어지는 비극이다. 신문과 방송이 온전히 보도하지 않기에 그런 참극들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현실을 국민 대다수가 모르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정규직 노동자는 편할까? 천만의 말씀이다. 한국의 정규직 노동자들은 언제 정리해고 될지 몰라 불안한 상황에서 일하고 있다. 일부 정규직 노동자들이 이기주의적 행태를 보이는 이유도 무조건 비난만 할 일은 아니다. 그들 또한 정규직으로 일하고 있을 때 미래를 대비해야 한다는 절박감에 쫓기고 있기 때문이다. 정규직의 노동조건도 ‘심각한 수준’임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한국의 노동자들은 평균 한 해에 2100시간 이상을 일한다. 자연스럽게 장시간 노동을 받아들이고, 더러는 그래도 일할 수 있는 일터가 있어 얼마나 좋은가라는 시각도 있지만, 그렇게만 볼 문제는 아니다.


왜 그런가? 차분히 톺아볼 일이다. 한국 노동자들은 우리처럼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선택하고 있지만 유럽의 복지국가들에 견주면 연간 700시간 이상을 더 일한다. 독일만 하더라도 연간 휴가가 6주다. 1년 내내 일을 하면 몸이 망가진다는 게 그들의 판단이다. 여기서 몸이 망가진다는 표현은 은유가 아니다. 보라. 1년 내내 일을 하는 한국의 노동자들을. 40대 남성 사망률이 세계에서 가장 높다.


정규직의 노동시간 문제는 실업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노동시간을 줄여서 실업을 해소하는 방안이 있기 때문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실업을 비롯해 모든 노동문제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지난 4월 화쟁위원회가 연 토론에서 도법 위원장은 자본과 노동,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진정한 대안과 지혜를 낼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주목할 발언이다. 자칫 노동위원회가 ‘고담준론’만 펼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손석춘
조계종은 이미 쌍용자동차 정리해고로 목숨을 잃은 노동자들을 위한 천도재를 봉행했다. 종단 노동위원회가 ‘진정한 대안과 지혜’를 내놓을 때 그때 비로소 쌍용자동차의 원혼들도 편히 쉴 수 있을 터다. 종단 노동위원회가 한국 불교의 위상을 한껏 높이기를 기대한다.


손석춘 언론인 2020gi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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