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종교가 담기는 그릇

기자명 법보신문

내가 좋아하는 신앙적 시구(詩句) 한 수가 있다. 불교 경전의 구절은 아니다. 서양의 한 시인의 시구이다. 나에게는 일종의 신앙고백과 같은 글귀로 들렸다. 신앙고백이라 하면 초월적인 분에게 의지하며 지극정성으로 무엇인가를 희구하고 발원하는 일로 시작된다. “나는 죄인입니다”라거나 혹은 “나는 참회합니다”라고 고백한다. 그러나 기도를 드리고 소망을 비는 방향이 이 시인에게서는 거꾸로 되어있었다. “하나님, 당신은 제가 죽고 없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였다. 요즘 말하듯 윗사람에게 불손하게 공갈(?)하듯 발설하는 것으로 이 시의 첫 구절은 시작되었다. 오히려 미약한 죄인으로 자신을 고백하거나 참회를 하는 것이 아니라 절대적인 그 분에게 항변하듯 말한다.


그러나 기실 이 시인은 남처럼 자신의 신앙을 들어낼 줄도 모르고 그런 세속적 용기마저 없다. 오히려 무었을 해주십사고 비는 일은 자기 자신을 주장하는 일이 된다. 그럴 용기도 없는 것이다. 감히 절대적인 분에게 무엇을 요구하다니. 아예 나 자신을 부정하고 지고한 절대자는 어떻게 나에게 관여하실까를 조심스럽게 묻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시인은 “나는 당신(신)의 목마름을 축여줄 물그릇”이고 “당신을 꾸밀 장식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당신이 이 세상에 담기게 할 의미”라는 것이다. 절대자를 이 지상에 있게끔 하는 것, 이 세상에 나타날 통로가 이 미천한 자기를 통해서라는 것이다. 자기 없이 드러나는 하나님(종교)은 이미 하나님(종교)이 아닌 것이다. 독일의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신앙시 한 구절이다.


그는 분명 서양 기독교적 시를 읊고 있지만 그 내용은 기독교가 되었건 불교나 혹은 어떤 형태의 다른 종교가 되었건 세속에 존재하는 모든 신앙의 내용을 여실히 그려주고 있다. 신앙은 초월의 존재, 세속의 영역을 넘어선 것을 희구하고 높은 이상을 설정한다. 그러나 실제로 신앙이 담기고 드러나는 곳은 바로 지금 우리들이 거처하는 이곳일 뿐이다. 그리고 구체적인 사실들, 낱낱의 사건들을 통해 드러난다. 바로 우리들을 통해서이다. 성스러운 모습일 수가 없다. 차라리 그 성스러움마저 내가 없으면 어떻게 나타나겠는가고 항변하는 릴케의 말이 보다 솔직하다.


그런데 그 말은 이미 부처님이 말씀하지 않았는가. 부처님께서 살아 계실 때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에 대해 낱낱이 잘못을 말씀해 주셨다. 대부분은 수행과는 어긋나는 인간적 한계, 세속의 궂은 일, 모순에 찬 사건들이었다. 이렇게 빚어진 궂은 세속의 일들이란 성스러운 고매한 일들이 아니었다. 그래서 일정한 규율을 지키는 승단이 존재하게 되었다. 임종에 즈음하여 제자들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어찌하오리까? 법을 등불(法燈明)로 삼고 자기를 등불(自燈明)로 삼으라고 하셨다. 우선 있는 사실들, 원인과 결과의 세속 연결고리를 그대로 보라고 한 말씀이 법등명이다. 자등명은 그걸 보고 터득해야 할 수행자의 경지이다. 높은 경지일 수도 있지만 낮은 단계에 머물러 있을 수도 있다.


그러니 어쩌랴. 파승(破僧)도 생기고 분파도 발생했다. 승가를 파괴하는 행위가 일어나면 승단에서 나가게 했다. 파계를 행한 순간 이미 그는 승단과는 상관없는 세속인이다. 종교화합의 상징인 아쇼카 소칙에서도 이 파승에 대한 언명은 명확히 드러나고 있다. 곧 “백의를 입혀 승단의 주거처 이외의 곳에서 살게 하라”고 공포했다. 세속적인 벌을 주고 매도하고 파멸시키라는 말이 아니다. 백의란 일반 세속인이 입는 옷이다. 그리고 절을 떠난 다른 곳에서 살게 하면 된다. 승단과의 관계를 단절시키면 되는 것이다. 그 행위가 세속 법마저도 저해하는 일이라면 세속의 기준에 따른 또 다른 규준이 적용되면 그만이다. 불교는 성스러운 영역이 아니다. 철저한 세속 사업이다. 세속에 존재하는 모든 종교가 그렇듯 말이다.

 

▲이민용 원장
그러나 종교를 담는 우리를 통해 불교는 드러난다. 파행적 불교집안의 일도 정화되고 깨달음에 이르는 일도 이 미천한 불자들을 통해서이다. “그래도 부처님 제가 없으면 당신의 불법은 어떻게 펼쳐지겠습니까?”  
 

이민용 한국불교연구원장 minyonglee@hotmail.com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