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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 휘두르던 아버지 마지막 당부

기자명 법보신문

아내와 이혼하고 아들 둘, 딸 하나를 둔 57세 폐암 말기 환자가 있었다. 막노동 하다 발병한 환자는 자식들이 간병의 어려움을 호소해 정토마을로 왔다. 작은 아들이 먼저 떠나고 28살 큰아들이 남아 하룻밤을 지내고 가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환자인 그의 아버지는 가난 속에서 술만 먹으면 폭력을 휘두르는 할아버지에게 무척 많이 맞으며 자랐다고 했다. 견디다 못한 아버지는 매일 매를 맞는 할머니를 남겨두고 고향을 떠나 객지 노동판을 전전하며 생활했다. 곧 어머니를 만나 가정을 꾸렸지만 할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아버지는 술을 마시면 어머니와 자기들에게 폭력을 행사했다고 했다.


“아버지가 죽고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크면 복수를 하겠다고 다짐도 했죠. 저희들 때문에 도망가지도 못하는 어머니를 보면 분통이 터졌어요.”


아버지처럼 큰아들도 집을 나왔다. 그러나 어린나이에 가정도, 자식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여자를 만나 매일 싸우며 살다가 이혼했다고 했다.


“저는 절대로 가족을 때리지 않겠다고 다짐했죠. 하지만 저 역시 할아버지, 아버지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큰아들에게서 미워하며 닮아가는 동업(同業)의 갈고리가 무겁게 느껴졌다.


큰아들이 떠나고 쓸쓸히 누워있는 환자 모습에서 폭력성의 흔적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다만 선한 모습으로 자식들을 기다리는 아버지가 있었을 뿐이었다. 삶이 답답하고 하는 일도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마다 가족들에게 폭력을 휘둘렀다고 말하는 환자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졌다. 환자는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날 길 없는 현실에 좌절해서 술을 마셨고 폭력을 휘둘렀다고 했다.


때릴 때 어떤 생각을 하느냐는 질문에 환자는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그냥 세상이 다 부서져라 하고요. 나도 너도 다 죽자, 그런 마음이었죠.”


환자는 가족들에 대한 죄책감과 함께 아버지에 대한 원망도 털어놨다. 어머니가 아버지 때문에 죽었다고 말하는 환자에게 끝없는 분노가 느껴졌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아버지가 어디서 어떻게 살았는지, 지금 생존해 있는지조차 모른다며 한숨을 쉬었다.


환자는 자신의 죄가 자식들에게 대물림하지 않기를 바랐다. 또 자신의 죽음으로 자식들의 가난과 불행이 멈추기를 원했다. 하지만 막내딸이 학교에서 싸움을 하고 도둑질을 하더니 지금은 자기같이 무능력한 남자를 만나 살고 있다며 눈물을 흘렸다.


가끔 정토마을을 찾아오던 둘째아들의 눈에는 분노가 가득하곤 했다. 하지만 말없이 음료수 하나를 환자 머리맡에 두고 가는 뒷모습을 볼 때마다 아릿한 아픔과 함께 ‘도대체 핏줄이라는 게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죽음이 임박한 환자가 두 아들과 딸을 불렀다. 용서를 청하기 위해서였다. 자식들은 불편한 표정이 역력했지만 환자는 자식들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속내를 털어놨다. 환자가 힘들게 말하는 와중에도 딸의 시선은 창밖을 향해 있었다. 둘째아들과 딸은 아버지를 용서할 마음이 전혀 없어 보였다. 그저 술 마시고 행패 부리던 한 인간이 죽음을 앞두고 있는 것일 뿐, 더 이상의 의미는 없는 것 같았다.


“그동안 사는 게 너무 버거웠다. 가족이 무엇인지 생각해볼 여유도 없이 먹고 살기에 급급했어. 아버지 노릇, 남편 노릇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배우지도 못하고…. 정말 미안하다, 너희들은 나처럼 살지 말고 부디 좋은 부모가 돼야 한다.”


가난에서 벗어나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서였겠지만 자식들은 그런 마음을 외면했다. 환자는 마지막으로 아내를 보고 싶어 했지만 차마 자식들에게 속내를 드러내지 못했다. 며칠 후 환자는 큰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거칠게 몰아쉬던 숨을 내려놓았다.


부모가 살아온 삶의 그림자는 그대로 자식들의 삶에 드리워져 덫이 되곤 한다. 문제를 유발하는 아이에게는 반드시 문제의 부모가 있다. 하지만 자식과 남편, 아내와 부모 그 누구도 ‘나의 것’이 아니다.

 

▲능행 스님

서로 존중하고 소중히 여겨야할 귀한 생명일 뿐이다. 싫건 좋건 아이들은 부모를 보며 부모의 역할에 대해 배운다. 그런 면에서 아이의 모습을 결정짓는 건 전적으로 부모의 몫이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닐 듯싶다. 


능행 스님 정토마을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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