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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성 스님 [상]

기자명 법보신문

‘화엄경’ 통달, 화엄법사로 불려

▲스님은 13세에 만해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춘성 선사/ 그는 아예 상좌 하나도 두지 않았다/ 이불 없이 살았다/ 하기야 절 뒤안에 항아리 묻어/ 거기 물 채워/ 물속에 들어가/ 머리 내놓고 졸음 쫓는/ 선정이니/ 기어이 수마를 모조리 내쫓아 버렸으니(…) -고은 ‘만인보’”


만해의 제자 춘성. 세간에 무애도인으로 알려져 있는 춘성 스님은 만해가 백담사에 주석하며 불교학을 연마하고 맹렬하게 책을 읽어가던 시절, 그의 시자로 불문에 들었다. 그리고 만해가 옥에 수감됐을 때는 서울로 올라와 망월사에 거처하며 서대문 감옥을 드나들면서 옥바라지를 했다.


이때 춘성은 추운 겨울에도 이불을 덮지 않은 채 차가운 방에서 참선하며 밤을 지새우기 일쑤였다. “스승이 독립운동을 하다 왜놈들한테 붙잡혀 지금 서대문 감옥 추운 감방에서 떨고 계신데 그 제자인 내가 어찌 따뜻한 방에서 잠을 잘 수 있겠는가”라는게 이유였다. 그렇게 시작된 습관은 평생 이불을 덮지 않고 잠자고 수행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만해가 옥중에서 몰래 전해준 글을 수차례에 걸쳐 밖으로 가지고 나와 ‘조선독립의 서’를 있게 한 춘성은 1891년 강원도 인제 원통에서 태어났다. 아홉 살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따라 신흥사에 갔다가 출가의 뜻을 세울 정도로 불교 인연이 남달랐던 그는 13세에 백담사로 출가해 만해를 스승으로 삭발했다. 20세에 유점사에서 구족계를 받은 그는 경학을 공부하는데 열성을 다해 ‘화엄법사’로 명성을 드날렸다.


그를 어떤 것에도 걸림 없이 살아간 무애도인으로만 기억하는 이들이 적지 않지만 출가할 때부터 경학을 비롯한 책을 수시로 가까이 했다. 어떤 궁녀가 전해준 ‘조선어독본’을 “어설픈 글은 왜놈 앞잡이밖에 될게 없다”는 만해에게 뺏긴 적도 있으나, “중노릇 잘하라”는 스승의 당부를 새겨 기본적인 글공부를 시작으로 불교 교학에 정통한 강사가 될 정도로 책에 빠져 살았다.


석왕사에서 강원교육과정을 이수하고 유점사와 건봉사에서 수학한 스님은 특히 ‘화엄경’에 정통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춘성을 말하는 수식어에 ‘화엄경’에 정통한 법사, 또는 ‘화엄경’을 거꾸로 읽었다는 이야기가 곁들여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1929년에는 당대 최고 강백인 박한영이 주관하는 개운사에서 대교과 삼현부 과정을 마치기도 했다. 삼현부는 ‘화엄경’을 세부적으로 익히는 과정으로, 보살수행의 지위인 10주 10행 10회향 단계에 있는 보살의 내용을 말한다. 춘성이 ‘화엄경’에 정통했음을 반증하는 자료이기도 하다.


30대 중반 자신이 가야 할 길을 구체적으로 모색해 불교의 진리를 다시 점검하기로 결심한 춘성은 ‘능엄경’과 ‘기신론’을 다시 배웠고, 이때 재발심에서 우러난 공부는 세상과 불교, 사찰, 중생을 다시 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했다. 그리고 은사 만해가 주장한 대중불교의 본질도 더욱 확고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춘성은 이후 자신부터 대중불교 취지에 맞는 일에 나설 것을 결심했고, 그 첫 번째 기회가 각황사 ‘법화경’ 산림법회였다. 백학명, 백용성, 백초월, 이화담, 송병기 등 당시 장안의 소문난 법사들과 나란히 법석에 올랐고, 이어 용성이 개최한 ‘화엄경’ 강의회에서도 법석에 올랐다. 이때 화엄법사 별칭을 얻게 됐고, 어린이법회 교사로도 참여하면서 열정적인 실천성을 보였다.


그러나 이러한 열정의 모태가 됐던 학문적 열망은 참선 수학을 결심하고 찾아간 만공의 한마디에 달라졌다. 만공이 “스님은 글을 너무 잘하니 글을 놓아야 화두를 주겠다”고 한 이후, 춘성은 평생 글 잘하는 티를 내지 않았던 것이다. 

 

심정섭 기자 sjs88@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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