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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골동선(骨董禪)

기자명 윤창화

오래되고 늙어서 아무 쓸모가 없는 선
선은 과거 가치관과 기존 관념도 거부

골동품(骨董品)은 오래되어서 희소가치가 있고 또 예술적 가치도 높다. 고완(古玩)·고동(古董)이라고도 하며, 요즘은 ‘골동’이라는 말 대신 주로 ‘고미술품’이라고 부른다. 한편 ‘골동(骨董)’이라는 말은 시대에 뒤떨어지고 쓸모없는 낡은 것이나 그런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기도 한다.


서양에서는 처음에 그리스·로마 시대의 고전문화 유물들만을 지칭했으나 점차 시대와 공간을 초월해 오래된 장식품들을 모두 가리키게 되었다. 동양에서는 중국에서 ‘골동’이라는 말을 쓰기 시작했는데 송대(宋代)에는 문인들 사이에서 골동품 수집과 완상(琓賞)이 교양의 하나였다. 명대(明代)의 문인 동기창(董其昌)도 골동을 매우 좋아했고, ‘부생육기’의 작자 심복과 비운의 아내 운이는 둘이서 매일 같이 시장에 나가 싼 공동품을 사다가 매만지는 것이 낙이었다.


이렇듯 골동품은 적어도 100년 이상은 지나고 예술적·역사적으로 중요한 물건이라야 한다. 반면 ‘골동선(骨董禪)’이란 ‘오래되고 늙어서 아무 쓸모가 없는 선’이라는 뜻이다. 낡고 닳아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 들끓는 번뇌 망상과 변화된 현실의 삶에 조금도 대처하지 못하는 선, 옛말이나 되풀이하는 무력한 선을 이른다.


선은 응고되어(執着) 매너리즘에 빠져 있는 것을 스스로 거부한다. 과거의 통속적인 사고나 생각에 고착화되어 본드처럼 붙어 있는 것을 싫어한다. 과거의 가치관은 물론 기존의 관념도 거부한다(無執着). 선은 항상 새로운 것을 지향한다(日日是好日). 그것이 자신을 고정된 틀에 매어 있지 않게 하는 방법이다(空, 中道). 선에서는 그것을 ‘깨어 있다(惺惺着)’라고 한다. 과거에 매몰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운허 편 ‘불교사전’에서는 골동선에 대해 ‘경심(輕心, 남을 업신여기는 마음)과 만심(慢心, 아만)으로 기운 없이 참선하는 모양을 꾸짖는 말’이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불분명하다. ‘경심과 아만심이 가득차서 활발발하게 참선을 하지 못함을 꾸짖는 말’이라는 뜻인 것 같다.


운문선사는 골동선에 대하여 ‘운문광록’에서 다음과 같이 혹평한다.


“선을 도둑질 하는 놈들(掠虛漢, 사기꾼 등)은 남이 뱉은 침이나 먹고(남의 말, 남의 법문) 한 무더기 골동(낡아빠진 옛말)이나 기억하여 가는 곳마다 ‘나는 선문답을 다섯 번, 열 번 이해했다고 자랑하고 떠들어 댄다. 그들이 아침저녁으로 물어서 이런 식으로 겁(劫)을 지나도록 논해보았자 꿈에서도 도(道)를 볼 수 없을 것이다”라고.


여러 선어록의 갖가지 법문 방식을 졸졸 외워서 여기저기 다니면서 법문이나 하고 선승인 척 삼배(三拜)를 받고 있는 이들이 적지 않지만, 천 년 전 당송시대에도 많았던 모양이다. 시대만 다를 뿐 사람의 심성은 불변인 것 같다. 운문선사는 이들을 가리켜 ‘남이 뱉은 침이나 핥아 먹고 낡은 골동이나 복창(復唱)하여 팔아먹는 자들이라고 평한다.


‘선문염송’ 1419칙에도 골동선에 대한 공안이 나온다.


오조 법연(五祖法演)이 외출했다가 들어와 법문을 하였다.


“밖에 나간 지 반 달 동안 눈으로 콧구멍(본래면목)을 보지 못했다. 조사선(祖師禪)을 잃고 골동품(骨董品) 하나를 주워왔다. 자, 말해 보라. 어디에 둘까? 한몫은 석가부처님께 바치고, 한몫은 다보불탑에 바치리라.”


▲윤창화
골동품, 고미술품은 한인(閑人)이 쳐다보는 완상(玩賞)의 대상이다. 그러나 선은 완상의 대상은 아니다. 선은 맑디맑은 가을날이다. 안개 낀 날의 아련한 감상적 풍조가 아닌, 청아한 가을날 저녁이다. 티 한 점, 구름 한 점 없는 날, 번뇌 망상이 확 걷혀버린 만리무운(萬里無雲)이다.
 

윤창화 changhwa9@hanmail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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