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신령한 나무
10. 신령한 나무
  • 김상현 교수
  • 승인 2012.06.18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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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생 지켜보고 계를 주며 깨달음 일깨웠던 초목불성(草木佛性)

사라수·보현수·지식수·관음송 등 불교적으로 승화된 나무 등장
지통은 나무 밑에서 계를 받고 원효 기리는 소나무 관음송으로 불려

 

 

▲800년 수령의 포항 보경사 회화나무.

 

 

‘삼국유사’에는 신성한 나무들이 여러 차례 등장한다. 보양(寶壤)과 배나무, 그리고 낭지승운(朗智乘雲) 보현수(普賢樹)는 제목에까지 나무가 강조된 경우다. 이외에도 신단수, 관음송, 지식수, 사라수 등 신성한 나무들이 있었고, 여러 나무들이 이룬 숲이 신성한 장소로 된 경우도 있었다. 문잉림(文仍林) 신유림(神遊林) 천경림(天鏡林) 등이 그렇다.


먼 옛날 태백산 꼭대기에는 신단수(神檀樹)라는 나무가 있었다. 하늘에서 환웅(桓雄)이 처음 이 세상으로 내려올 때 신단수 나무 아래로 왔고, 이곳을 신시(神市)라고 불렀다. 환웅으로부터 쑥과 마늘을 받아먹은 곰이 여자의 몸으로 변한 뒤에 아이 배기를 빌었던 곳도 신단수였다. 이처럼 단군신화에는 신단수라는 나무가 등장한다. 이 나무는 천상과 지상을 연결하는 우주목이었고, 아이를 점지해 줄 수 있는 신성한 나무였다. 신단수는 세계의 중심이자 우주를 떠받치는 기둥이었다. 원효가 천주(天柱)를 다듬겠다고 길거리에서 노래하고 다녔던 그 천주처럼 하늘을 떠받치는 기둥이었다.


효성왕(737~742)이 잠저에 있을 때다. 그는 신충(信忠)과 대궐 뜰의 잣나무 밑에서 바둑을 두면서 말했다.
“내가 만약 훗날 그대를 잊는다면 저 잣나무가 증명할 것이다.”


신충은 일어나 절했다. 몇 달 후 효성왕은 즉위했다. 공신에게 상을 주면서 잊어버리고 신충을 등급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신충은 원망하면서 노래를 지었는데, 이 노래가 곧 향가 원가(怨歌)다.


‘무성한 잣나무는 가을에도 아니 시드니/ 너를 어찌 잊어 하시며 우러러보던 얼굴은 계시오나/ 달그림자가 옛 못의 지나가는 물결 원망하듯/ 모습이야 바라보나 세상이 싫구나!’


이 노래를 잣나무에 붙였다. 갑자기 나무가 말라버렸다. 이상하게 여긴 왕이 사람을 시켜 살펴보게 했는데, 그 나무에서 노래를 발견한 사람은 곧바로 그것을 왕에게 가져다 바쳤다. 왕은 매우 놀라며 말했다.


“정무가 번잡하여 공신을 잊을 뻔했구나.”


이에 신충을 불러 벼슬을 주었다. 잣나무가 그때서야 되살아났다. 말라 죽었던 잣나무가 되살아났다고 하는 것은 재생(再生)을 의미한다. 잣나무가 되살아났듯 효성왕의 신충에 대한 약속도 재생했다.


보양(寶壤) 스님은 10세기 전반 후삼국시대에 활동한 고승이다. 스님이 중국에서 불법을 전해 받고 돌아오다가 서해 중간에 이르자 용이 그를 용궁으로 맞아들여 불경을 염송하게 하고 금라(金羅)가사 한 벌을 주며 또 그의 아들 이무기[璃目]을 시켜 조사를 모시고 돌아가게 했다. 이무기는 늘 절 곁의 작은 못에 살면서 남 몰래 스님을 도왔다. 그런데 어느 해에 크게 가뭄이 들자 보양 스님은 이무기를 시켜 비를 내리게 했다. 온 고을에 비가 흡족하게 왔다.


그러나 천제(天帝)는 이무기를 죽이려고 했다. 자기 직분에 넘치는 짓을 했다는 이유였다. 이무기가 급한 사정을 보양 스님에게 알렸고 스님은 그를 평상 밑에 숨겨주었다. 얼마 뒤에 천사(天使)가 절의 뜰에 내려와 이무기를 내놓으라고 요구하자 스님은 뜰 앞에 있는 배나무를 가리켰다. 배나무는 한자로 이목(梨木)이 된다. 그리고 이무기 또한 한자로는 이목(璃目)이 되어 그 음이 서로 같다. 아마도 보양은 이무기와 음이 같은 배나무를 지목했을 것이다. 천사는 그 배나무에 벼락을 치고 돌아갔다. 배나무가 쓰러지자 용이 그것을 어루만져 다시 살려 놓았다. 이처럼 벼락을 맞고 쓰러져 죽었던 배나무는 다시 살아났다. 말라죽었던 잣나무가 되살아났듯이. 잎이 졌던 나무에 봄이 오면 무수한 나뭇잎이 되살아나듯 나무는 무한히 재생한다.


진표(眞表)는 금강산의 발연사 동쪽 큰 바위 위에서 세상을 떠났다. 제자들이 그 시신을 옮기지 않고 그대로 공양하다가 해골이 흩어져 떨어질 무렵에 흙으로 덮어서 무덤으로 삼았다. 그 무덤에 푸른 소나무가 났는데, 세월이 오래 되자 말라 죽고 다시 한 나무가 났으며 후에 또 한 나무가 났으니 그 뿌리는 모두 하나였다. 이처럼 진표의 무덤에는 푸른 소나무가 거듭 재생하고 있었다.


불교적으로 숭배되는 나무들도 있었다. 사라수와 보현수와 관음송 등이 그랬다. 종교학자 엘리아데가 지적하고 있듯이, 나무는 다만 그 자체로서 숭배되는 것이 아니고 항상 나무를 통하여 계시된 것, 나무가 내포하고 의미하는 것 때문에 숭배되었다.


원효는 밤나무 아래에서 탄생했다. 원효 탄생 후에 그 밤나무는 사라수라는 이름으로 불리면서 여러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았고, 드디어 역사의 기록으로 전해졌다. 원효의 집은 본래 압량군 남쪽 불등을촌(弗等乙村) 북쪽 밤나무골 서남쪽에 있었다. 그 어머니가 아기를 배어 달이 차서 마침내 골짜기 밤나무 밑을 지나고 있었다. 갑자기 산기(産氣)가 있었지만, 너무 급하여 미처 집에 돌아갈 겨를이 없었다. 남편이 옷을 벗어 나무에 걸고 그 속에 누워서 아이를 낳았다. 오색구름이 땅을 덮은 속에서.

 

 

▲나이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오래된 강진 백련사 느티나무.

 


이처럼 원효는 밤나무 아래에서 탄생했다. 이로 인하여 민간에서는 그 밤나무를 사라수(娑羅樹)라고 불렀다. 원효의 탄생설화는 석존의 탄생설화와도 비슷하다. 마야부인이 해산을 위해 친정인 코올리 성으로 가던 도중 룸비니 동산에 이르러 갑자기 산기를 느껴 장막을 친 무우수(無憂樹) 아래에서 태자가 탄생했고, 그때 하늘에서 상서로운 광명이 갓난아기를 향해서 뻗쳤다고 한다. 원효도 사라수라 불리는 밤나무 밑에서 태어났고, 오색구름이 땅을 덮는 상서로움이 있었다. 불등을촌은 원효가 탄생한 인연으로 해서 불지촌(佛地村)으로, 그리고 밤나무는 사라수로 불린 것은 원효의 탄생을 석존의 탄생에 비견한 대문이다. 무우수는 사라수의 의역이요 사라수는 사라(Sala)를 음사(音寫)한 것이라고 한다. 사라수 밑에서 탄생한 석존처럼 원효 또한 사라수 아래에서 탄생한 것으로 설화는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지통(智通)은 이량공(伊亮公) 댁의 종이었다. 그가 일곱 살 때다. 까마귀가 와서 울면서 말했다.


“영취산에 가서 낭지(朗智)의 제자가 되어라.”


지통은 영취산으로 갔다. 골짜기 안의 나무 밑에서 쉬고 있는데, 문득 이상한 사람이 나와서 말했다.


“나는 보현보살인데 너에게 계품(戒品)을 주려고 왔다.”


이에 계를 준 뒤에 숨어버렸다. 그는 길을 가다가 한 승려를 만나 낭지 스님이 어디 계시냐고 물었다. 그 스님은 말했다.


“어찌하여 낭지를 찾느냐?”


지통이 까마귀로부터 들은 바를 말하니, 그 스님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내가 바로 낭지이다. 지금 집 앞에 까마귀가 와서 거룩한 아이가 스님에게 오고 있으니 나가서 영접하라고 하기에 와서 맞이하는 것이다.”


그는 손을 잡고 감탄하며 말했다.


“신령스러운 까마귀가 너를 일깨워 나에게로 오게 했고, 또한 나에게 알려서 너를 맞이하게 했다. 아마도 이것은 신령이 몰래 도운 상서(祥瑞)일 것이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이 산의 주인은 변재천녀(辯才天女)라고 한다.”
지통은 그 말을 듣고 울면서 감사하며 스님에게 귀의했다. 조금 후에 스님이 계를 주려고 하자 지통이 말했다. “저는 동구의 나무 밑에서 이미 보현보살로부터 정계(正戒)를 받았습니다.”


낭지 스님은 탄식하며 말했다.


“잘했구나. 너는 이미 보살의 구족계(具足戒)를 친히 받았구나. 나는 아침저녁으로 조심하며 보현보살 만나기를 은근히 염원했으나 오히려 정성이 통하지 못했는데, 이제 너는 이미 계를 받았으니, 나는 너에게 훨씬 미치지 못하겠구나.”


도리어 스님은 지통에게 예를 드렸다. 이로 말미암아 그 나무를 보현수(普賢樹)라고 이름 했다. 보현보살이 화신(化身)하여 지통에게 계를 주었던 인연으로 해서 그 나무는 보현수로 불렸던 것이다.


원효는 관음을 친견하고자 낙산사로 갔다. 그가 남쪽 교외에 이르렀을 때 흰옷을 입은 한 여인이 논에서 벼를 베고 있었다. 원효법사가 희롱 삼아 그 벼를 달라고 하니, 여인은 벼농사가 흉년이라고 희롱조로 답했다. 그가 또 더 가다가 다리 밑에 이르렀는데, 한 여인이 월경이 묻은 옷을 빨고 있었다. 법사가 물을 청했더니, 여인은 그 더러운 물을 떠서 바쳤는데, 법사는 그 물을 쏟아버리고 다시 냇물을 떠서 마셨다. 그때 들 가운데 서 있던 소나무 위에 파랑새 한 마리가 있어 “제호(醍)를 마다한 화상아”라고 하고서 홀연히 숨어 나타나지 않았는데, 그 소나무 아래에는 신발 한 짝이 있었다. 법사가 절에 도착해서, 앞에서 본 신발 한 짝이 관음의 자리 밑에 있음을 보고 비로소 앞서 만났던 여인이 관음의 진신(眞身)임을 알았다. 이 때문에 당시 사람들은 그 나무를 관음송(觀音松)이라고 했다. 낙산사 가까이에는 고려후기까지도 관음송이 살아 있었다.


자장은 자기가 태어난 집을 원녕사로 고치고 낙성회를 베풀어 ‘화엄경’을 강의했다. 52명의 여인이 감동하여 현신(現身)하여 강의를 들었다. 제자에게 숫자대로 나무를 심게 하여 그 이상스러운 자취를 나타내게 하고 그 나무 이름을 지식수(知識樹)라고 했다. 지식은 선지식(善知識), 그리고 52명의 여인이 강의를 들었다고 하는 것은 선재동자가 만났던 선지식을 의미하는 것 같다. 나무는 나무 이외의 것을 의미할 때, 히에로파니가 되는, 즉 성(聖)을 구현하고 보여주게 된다.

 

▲김상현 교수
나무가 성스럽게 되는 것은 어떤 초월적 실재를 의미하고 있기 때문이다. 관음보살이 파랑새로 화신하여 나타나고 보현보살이 나타나 계를 주었던 나무처럼. 초목성불설이 있다. 산천초목 등 무정의 자연물에도 불성이 두루 하여 성불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 세상의 모든 것은 다 불성이 있고 의미가 있다.
 

김상현 교수 sanghyun@dongguk.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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