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플스테이 계절이다. 복사기처럼 반복되는 일상에 지치고 여름철 햇볕마저 사나와 질 때면 템플스테이는 절정을 이룬다. 산업화로 고향이 사라진 현대인에게 산사(山寺)는 고향과 같다. 회색시멘트 감옥에 갇혀 있는 도시인이라면 더욱 그렇다. 도심에는 없는 색과 향이 산사에는 있다. 대숲의 맑은 바람과 그윽한 솔향, 맑고 낮게 흐르는 개울과 쏟아지는 밤하늘 별빛. 여기에 적막한 새벽을 일깨우는 장중한 예불과 정신을 맑히는 청량한 녹차 한잔, 마음을 비워내는 참선이 더해지면 템플스테이의 의미는 더욱 각별해진다. 휴가철 사람들의 발길이 산사로 향하는 이유다.
템플스테이는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시작됐다. 한국을 찾은 외국인들에게 우리 전통문화를 알리기 위해서다. 부족한 숙박을 해결하기 위한 정부의 얄팍한 계산도 없지 않았다. 불교계는 흔쾌히 수행공간을 활짝 열었다. 내외국인을 가리지 않고 품에 안았다. 그로부터 10년. 템플스테이에 대한 평가는 긍정적이다. 첫해 2500여명에 불과하던 참가자가 강산이 한번 바뀌는 동안 20만 명으로 늘었다. 매년 2만 명이 넘는 외국인이 템플스테이를 위해 한국을 찾는다. 템플스테이 사찰도 늘어 전국에 100여 곳이 넘는다. 외형적으론 폭발적 성장이다. 세계경제포럼은 “템플스테이로 인해 한국관광의 국제 경쟁력 및 국가 이미지가 크게 상승됐다”고 밝혔다. 아름다운 자연과 1700년 한국불교의 문화가 어우러진 21세기 최고 체험문화프로그램이라는 평가가 낯설지 않다.
템플스테이는 절에 머문다는 뜻이다. 그냥 머무는 것은 아니다. 잠시 속세를 떠나 출세간의 삶을 경험하는 것이다. 치열하거나 혹은 느슨하게 수행자의 길을 걷는 것이다. 템플스테이의 매력은 느림과 비움이다. 바쁜 일상을 느림의 여백으로 채우고, 참선을 통해 내면의 나를 돌아본다. 고즈넉한 산사의 풍경소리, 한적하게 걷는 숲길, 청량한 녹차 한잔. 강퍅해진 마음이 열리면 비로소 맑은 하늘이 보이기 시작한다. 무심한 달빛에 방 한 켠 내주고 돌돌돌 시냇물 소리 들으며 달빛 벗 삼아 차를 음미하던 법정 스님의 청빈한 마음을 배우는 것이다. 도심에서 느낄 수 없는 내면의 특별한 체험, 이것이 템플스테이만의 묘미다. 그리고 그 끝은 수행과 맞닿아 있다.
그러나 요즘, 점차 템플스테이의 본래 취지가 퇴색되고 있다. 본말이 전도되고 있는 것이다. 템플스테이란 이름으로 요트체험을 하고 쑥뜸을 뜬다. 원두커피로, 바나나보트로 유혹 아닌 유혹을 한다. 산사에서 미혼남녀의 만남을 주선하는 ‘싱글파티’ 템플스테이는 차마 민망하다. 속진(俗塵)을 받아들여 정화하지 못하니, 이제는 속진과 더불어 사찰이 세속화되고 있다. 템플스테이의 역사가 10년쯤 됐으니, 한번쯤 겪어야 할 성장통일 수도 있다. 템플스테이 사찰이 늘다보니, 이것도 경쟁이라면 경쟁이다. 특화된 프로그램에 대한 욕구도 그만큼 높아지고 있다. 경쟁이 심할수록 상업화의 유혹에 쉬이 흔들린다. 지금의 현상은 상업화의 전조일지도 모른다. 근본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 미얀마와 태국, 티베트의 수행센터에 세계 각지 사람들이 몰리는 것은 그곳에서 수행의 향기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눅진한 속세의 때를 씻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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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규 kimh@beop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