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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사성제와 사회적 고-16

무명은 타인과 관계속에서 형성
12연기도 사회적 인과가 만들어

유식학과 인지공학을 종합하여 결론을 내린 것처럼, 모든 고통은 사회적이며, 사회적 고통의 출발은 타인이다. 이에 대해 사람들은 생노병사 가운데 생은 그렇다 치고, 노병사의 고통은 남과 상관이 없이 내 스스로 그런 것이 아니냐고 반문할 것이다. 모든 생명체가 노화하지만, 자연 안에서 생명체의 순환이라 생각하면 고통이 아니다. 타인의 말과 행동, 직장의 환경, 복지를 비롯한 국가제도와 시스템이 나의 늙음과 연기적 관계이며, 남이 있어서 남보다 늙어 보이는 것이 괴롭고, 남과 어울려 놀고 운동을 하다 보니 늙음이 한스러운 것이다. 병과 죽음도 마찬가지다.


고가 개인적이 아니라 사회적이니 집(集) 또한 사회적이다. 어리석음과 무지에 휩싸여 허상을 진여라고 착각하는 무명(無明)은 사회 안에서 타인과 연기적 관계 속에서 형성된다. 인간이 사회 속에서 사회적 삶을 사는 한, 무명 또한 이 사회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경전 속의 부처님 말씀은 석가모니께서 주변의 사람들과 만나고 맞서고 어울리고 소통하고 생활하면서 겪은 일과 그 속에서 깨달음을 적은 것이다. 그 경전을 해석하는 나 또한, 분명 부처님 당시의 사회와 차이는 있지만, 다른 이들과 생활하면서 교리를 해석한다. 가장 비사회적인, 독백적인 글인 시나 일기를 쓸 때도 우리는 사회에서 살아서 돌아다니는 말을 선택하여 쓴다. 또, 미지의 타인을 독자로 상정하고 글쓰기를 한다. 낱말 하나에도 사회가 스미어 있고 타인이 숨어 있으니, 낱말들이 모여서 이루어지고 타인을 지향하는 온갖 법문 또한 사회적이다. 이처럼 집과 무명, 그에서 벗어나게 하는 깨달음의 말과 글 또한 사회적이다.


집(集)에서 벗어나는 길도 사회적이다. 신문 기사에서 국가와 자본주의 체제에 이르기까지 고통을 주는 원인을 알지 못하면 그 고통은 지속된다. 예를 들어, 쌍용자동차 공장에서 적자를 본다는 이유로 2,646명의 선량한 노동자를 하루아침에 정리해고를 하였다. 노동자들은 이에 맞서서 파업을 하였고, 그들은 경찰로부터 전쟁 상황에 이르는 폭력을 당하였다. 실제로 거의 절반에 해당하는 노동자들이 전쟁상태의 스트레스 증후군을 앓고 있고, 그 와중에서 22명이 죽거나 자살하였다. 3년이 지난 얼마 전에서야 회계조작이었음이 밝혀졌다. 이를 진작 알고 정리해고가 원천무효임을 주장하였다면,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의 고통도, 그들의 고통에 공감하여 우리의 가슴이 함께 아픈 고통도 없었을 것이다.


사회적 무지로 인하여 자신만 잘 사고자 하거나 그런다고 착각하고 살아가니 행(行)이 생겨난다. 이리 살아가려면 이리저리 생각해야 하니 식(識)이 깃들고, 이런 생각과 생활을 하는 몸이 명색(名色)이고, 이 몸에 맞게 눈, 귀, 코, 혀, 몸의 오관(五官)과 이를 합쳐 통일적으로 생각하는 마음이 합쳐져 육처(六處)를 만든다. 그 몸으로 타인과 접촉하여 느끼고 판단하는 것이 촉(觸)이며, 이 촉을 바탕으로 이 사회가 괴롭고도 즐거운 이치를 깨달으며 사회생활을 하니 수(受)다. 이 수를 통하여 괴로운 것을 피하고 즐거운 것을 좋아하면서 점점 돈과 성적 욕망에 빠지니 애(愛)다.


▲이도흠 교수
이 갈망과 탐욕에 집착하니 취(取)요, 이 집착으로 말미암아 업을 만들며 자신을 유지하려 드니 유(有)다. 그리 자신을 존속하며 생활하니 이는 생(生)이요, 이런 생도 곧 시간이 지나면 늙어 죽으니 노사(老死)를 낳는다. 이렇게 사회 안에서 인(因)과 과(果)가 서로 조건이 되고 상호작용을 하며 12인연을 형성한다. 

 

이도흠 한양대 국문학과 교수 ahuru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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