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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봉 스님 [상]

多讀으로 14세에 백일장서 장원

▲스님은 12세에 사서삼경을 통달했다.

스스로 동구불출(洞口不出), 오후불식(午後不食), 장좌불와(長坐不臥), 묵언(默言)의 4가지 규약을 정하고 엄격히 지켰던 선사. ‘판사 출신 선사’, ‘절구통 수좌’, ‘통합종단 초대종정’ 등의 수식어가 따라붙는 근대 한국불교 고승 효봉(曉峰, 1888~1966)스님이다.


효봉은 1888년 5월28일 평남 양덕 쌍룡면 반석리 금성동에서 아버지 수안(遂安) 이 씨 병억(炳億)과 어머니 김 씨 사이에서 5남매 중 3남으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유달리 영특해 이웃은 물론 인근 동리에까지 신동으로 소문이 났다. 그리고 신동답게 12세에 이미 할아버지로부터 ‘사서삼경’을 배워 통달했다. 평생 선비로 산 할아버지 영향을 받아 많은 책을 볼 수 있었고, 그런 다독의 결과는 14세 때 평양감사가 연례행사로 연 백일장에서 수많은 재동들과 글재주를 겨뤄 장원급제하는 영광으로 나타났다.


백일장에서 장원급제를 할 정도로 글재주가 비상함은 많은 책을 보고 사유의 깊이가 남달랐음을 의미하는 것임에도, 효봉의 어릴 적 책읽기가 어느 정도 수준이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입적 3일 전에야 출가 전 속가 이야기가 알려졌던 만큼, 구체적으로 어떤 책을 읽었는지까지는 밝혀지지 않은 것이다.


여하튼 어려서부터 영특했던 효봉은 한학에 이어 신학문을 배우기 시작했고 평양고보를 졸업한 뒤에 일본 와세다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그리고 26세 때부터 36세까지 10년간(1913∼1923) 서울과 함흥에서 지방법원 및 고등법원에서 판사로 재직했다. 이때 효봉의 삶을 바꾼 일대 사건이 벌어졌다. 나이 서른여섯이던 1923년, 최초로 사형선고를 내린 후 몇 날을 뜬눈으로 지새우며 자기 자신의 존재를 돌아보고 인간사회의 구조를 재인식했다. 결국 ‘이 세상은 내가 살 곳이 아니다. 내가 갈 길은 따로 있을 것’이라는데 생각이 미치자 미련 없이 집을 떠나 유랑생활을 시작했다.


효봉은 입고나온 옷을 팔아 엿판 하나를 사고 이후 3년 동안 엿판을 낀 채 팔도강산을 방랑했다. 장마철엔 서당에 들러 글을 가르치기도 하고, 농짝을 짊어지고 옮겨주는 일을 하며 먹고 자기를 해결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누더기 엿장수 뒤를 졸졸 따르는 시골 아이들에게 엿을 공짜로 나눠주다가 밑천이 바닥나기도 했다. 고난은 스스로 선택한 참회의 길이었다.


효봉은 참회의 시간을 거쳐 1925년 금강산 유점사에 들러 스승을 찾기에 이르렀다. 수소문 끝에 찾아간 이가 금강산 도인으로 불리는 신계사 보운암 석두(石頭)스님이었다.


이곳에서 석두 스님에게 사미계와 함께 원명(元明)이라는 법명을 받은 효봉은 ‘늦깍이’ 출가를 의식하며 쉼 없이 정진에 정진을 거듭했다. 조주무자를 화두로 받아 좌선에만 전념하던 효봉은 제방의 선지식 친견을 위해 길을 나섰으나, 수행은 결국 남의 말에 팔릴 일이 아니고 오로지 스스로 참구하며 깨달아야 하는 것임을 절감하고는 다시 금강산으로 돌아왔다. 엉덩이 살이 허는 줄도 모르고 화두일념에 미동도 하지 않아 ‘절구통 수좌’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하지만 깨달음에 대한 갈망이 컸던 효봉은 드디어 생사 결단을 내렸다.


1930년 늦은 봄 금강산 법기암 뒤에 단칸방 토굴을 짓고는 ‘깨닫기 전에는 죽는 한이 있더라도 토굴 밖으로 나오지 않으리라’는 맹세와 함께 토굴로 들어갔다. 밖에서 출입문까지 봉쇄하도록 한 후 토굴에 들어간 지 1년 6개월 만에 스스로 벽을 허물고 나온 효봉은 그 깨달은 바를 “바다 밑 제비집에 사슴이 알을 품고/ 타는 불속 거미집엔 고기가 차 달이네/ 이 집안 소식을 뉘라서 알랴/ 흰 구름은 서쪽으로 달은 동쪽으로”라는 게송으로 읊었다. 

 

심정섭 기자 sjs88@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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