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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물질현상(色)

내 육체와 외부 물질적 환경까지 망라

물질현상이란 무엇인가. 오온의 첫 번째 항목으로서 느낌이나 지각 따위의 정신현상과 대조를 이루는 물질적 경험내용을 가리킨다. 자신의 몸을 비롯하여 외부적으로 보거나 듣는 감각적 대상들이 여기에 포함된다. 이것에 대해 경전에서는 땅의 요소(地大), 물의 요소(水大), 불의 요소(火大), 바람의 요소(風大)라는 4가지 요소(四大)와 이들 4가지로부터 파생된 물질현상(四大所造色)으로 설명한다(MN. I. 185). 이들은 ‘나’의 육체를 비롯하여 외부의 물질적 환경까지를 망라한다.


물질현상은 ‘나’라는 스펙트럼을 투과하여 경험된다. 뻣뻣하거나 부드러운 것은 땅의 요소에, 흐르거나 적시는 것은 물의 요소에, 뜨겁거나 차가운 것은 불의 요소에, 움직임은 바람의 요소에 배대된다. 물질현상이란 이들 가운데 어느 하나이거나 혹은 이들이 뒤섞인 양상으로 경험된다. 이들은 계량화된 수치로 그 뻣뻣함이나 뜨거움의 정도를 측량할 수 없다. 뻣뻣함이라든가 뜨거움 따위는 어디까지나 ‘나’의 경험에 의존할 뿐이다.


물질현상은 자명하게 포착된다. 몸으로 경험되는 뻣뻣함이라든가 뜨거움 따위는 무엇보다 직접적이다. 이것은 사고나 추리를 통하지 않고 즉각적으로 알려진다. 혹자는 이러저러한 물질현상을 두고 “이들은 과연 어떻게 발생하였을까?”라는 따위의 의문을 갖는다. 그러나 물질현상은 그러한 의문에 앞서 존재한다. 이점에서 그때그때의 물질현상이 먼저이고 그것의 원인이나 조건에 대한 반추는 나중에 속한다. 오온의 물질현상은 관념적 분석이 아닌 즉각적인 경험의 대상이다.


그러나 물질현상은 있는 그대로(yathabhūtaṁ)의 실재가 아니다. 예컨대 어젯밤에 마셨던 시원하고 달콤했던 음료가 아침에 깨어나서 살펴보니 해골에 담긴 빗물이었다고 치자. 그러한 사실을 알게 된 이상 시원함도 달콤함도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이와 같이 물질현상은 경험하는 주체에 따라 각기 다른 모습으로 드러날 수 있다. ‘나’ 자신이 처해 있는 조건과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이것에 대해 ‘나’의 존재 여부와 상관없는 객관적 현상으로 간주하는 것은 잘못이다. 붓다는 물질현상에 대해 무상(無常)으로, 괴로움(苦)으로, 무아(無我)로 관찰하라고 이른다(SN. III. 21). 무상이란 변화한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이것은 자연과학적인 변화를 가리키지 않는다. 무상의 진리는 물질현상을 통해 드러난 ‘나’ 자신에 관한 이야기이다. 붓다는 오온설을 통해 ‘내’가 지닌 관점과 태도만을 문제 삼고자 했던 것이다. 즉 ‘나’에 의해 포착된 물질현상의 덧없음과 허망함을 일깨우는 데에 주력하였다. 괴로움과 무아의 가르침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접근할 때 무리 없는 이해가 가능하다.


붓다는 물질현상에 대한 의욕(chandarāga)을 없애라고 이른다. 그리하면 그것은 제거될 것이고 뿌리가 잘린 야자수처럼 다시는 자라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한다(SN. III. 27). 물질현상은 ‘나’의 바람이나 의도와 무관하게 생겨났다가 사라진다. 어느 누구도 스스로 원하여 몸을 받은 것이 아니며 또한 늙거나 죽어가는 것도 아니다.

 

▲임승택 교수
그럼에도 물질현상에 매달리는 이들은 그것을 자신과 동일시하는 어리석음에 빠진다. 그리하여 그것의 허구성과 맞닥뜨리게 될 때 비로소 존재의 가벼움에 몸서리를 친다. “‘물질현상이 바로 나다.’라는 [견해에] 사로잡힌 자에게도 물질현상은 변화하여 다른 것으로 바뀐다. 물질현상이 변화하여 다른 존재로 바뀌는 까닭에 근심·슬픔·괴로움·불쾌·절망이 일어난다(SN. III. 3).”
 
임승택 경북대 철학과 교수 sati@k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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