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4. 도예가의 비유

기자명 법성 스님

같은 근본에도 역할 따라 상중하 발생

이 비유는 정법화경과 범본 법화경 제5 약초유품에 나온다.


“가섭이 부처님께 여쭙되 삼승이 없다고 하는데 어떤 까닭에 보살·연각·성문이 있는 것입니까?, 하고 묻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비유를 들자면 도예가가 진흙을 이겨 그릇을 만들되 혹은 감로의 꿀을 담는 그릇이 되기도 하고, 혹은 발효유나 우유를 담는 그릇이 되기도 하고, 혹은 짠 기름을 담는 그릇이 되기도 하며, 음식을 담는 막그릇이 되기도 하지만, 진흙은 본래 한 가지이며, 만들어진 그릇에 각기 다른 것이 담길 뿐이니라. 그 근본에서 또한 그러하여 한 가지로 평등해 조금도 다르지 않지만, 각기 행하는 역할에 따라 상중하가 생겨나느니라.”


진흙으로 만든 그릇에 꿀을 담으면 꿀단지가 되고, 우유를 담으면 우유그릇이 되고, 참기름이나 들기름을 담으면 기름그릇이 되며, 일반 음식을 담으면 음식 그릇이 되는 것과 같이, 그릇의 성분은 진흙이되 그 기능에 따라서 그릇의 이름이 달라지는 것이다. 성문·연각·보살도 부처님이 되기 위한 수행법에서는 똑같지만 자신의 수행과 중생들을 구제하겠다는 원력에 따라서 보살이 되기도 하고 성문이나 연각이 되기도 한다는 가르침이다. 향을 싼 종이는 향내가 나고, 생선을 쌌던 종이는 비린내가 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똑같이 수행을 하더라도 그 목표를 상구보리 하화중생에 둘 때, 진정한 대승의 보살도를 실천하는 것임을 도예가의 비유로 표현하고 있다.


법화경 도예가의 비유를 읽을 때 마다 생각나는 것이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의 도예가들이다. 그 대표적인 사람은 이삼평과 심수관 가문이다.


일본이 자랑하는 사가(佐賀)현 아리타(有田)자기의 시조로 추앙 받는 이삼평(李參平, 출생년 미상~1655)도 정유재란 당시 조선 침략에 나선 히젠국(肥前) 사가번(佐賀藩)의 번주(藩主) 나베시마 나오시게(鍋島直茂 1536~1618)의 군대에 사로잡혀 끌려온 조선 도공이었다.


이삼평이 자기 생산에 적합한 흙을 찾아 나베시마의 영지 일대를 전전하다가 1616년 아리타 동부 이즈미야마(泉山)에서 양질의 자석광을 발견하고, ‘덴구다니요(天狗谷窯)’를 열어 일본 최초의 백자기를 생산했고, 오늘날 이삼평은 도조(陶祖)로 추앙받고 있다.


이삼평이 도조(陶祖)로 불리었다면 그와 견줄만한 사람은 일본 도예계를 이끌고 있는 심수관가(家)이다. 심수관가의 시조는 1598년 정유재란 때 일본으로 끌려간 심당길(深當吉) 후손이다. 심당길은 전라북도 남원에서 살다가 사쓰마(현재 가고시마현) 번주였던 시마즈 요시히로에게 끌려간 조선 도공이었다. 심수관가의 13대부터는 이름까지 그대로 습명하는 전통을 만들었으며 그 후손들은 뛰어난 예술혼으로 ‘사쓰마 도자기’의 명성을 드높였다. 심수관 가는 1873년 빈 만국박람회에 금수목단문화병을 출품해 사쓰마 도자기 이름을 전 세계에 알리면서 일본을 대표하는 도예명가로 자리 잡았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이라는 두 전쟁을 통해서 조선의 무고한 백성들이 학살당하는 등 큰 고통을 겪었는데, 이 전쟁을 흔히 도자기 전쟁으로도 부른다. 그 이유는 무수한 도공들이 일본으로 끌려갔고, 그들이 일본 역사에 길이 남을 업적을 남겼기 때문이다.


케이넨(慶念)이라는 스님은 일본 안양사의 주지승이었는데 규슈의 우스키성의 성주인 오오타 히슈우(大田飛州)라는 무사의 군의승(軍醫僧)으로 정유재란 때 조선에 오게 된다. 그리고 1597년 6월부터 1598년 2월까지 8개월 동안 조선에 머물면서 왜군의 진공루트를 따라서 목격한 경상도와 전라도의 전투상황과 조선인의 참상과 피해 등을 상세히 기술한 ‘정유재란종군기’를 남긴다.


‘1597년 8월6일-들도 산도 ,섬도 죄다 불태우고 사람을 쳐 죽인다. 산사람은 금속줄과 대나무 통으로 목을 묶어서 끌어간다. 어버이는 자식걱정에 탄식하고 자식은 부모를 찾아 헤매는 비참한 모습을 난생 처음 보게 되었다.’
‘11월19일-왜에서 상인이 왔는데 그 중에 사람을 사고파는 자도 있어 본진의 뒤에 따라 다니며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사서 줄로 목을 묶어 앞으로 몰고 가는데…잘 걷지 못하면 뒤에서 지팡이로 몰아붙여 두들겨 패는 모습은 지옥의 아방이 죄인을 잡아들이는 것도 이와 같을 것이다.’


▲법성 스님
법화경 도예가 비유는 슬픈 민족의 전쟁사를 떠올린다. 그 슬픔 속에서도 일본을 대표하는 도공들이 조선인이라는데 한 줄기 위안을 삼아본다.
 

법성 스님 법화경 연구원장 freewheely@naver.com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