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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출가학교의 희망

기자명 법보신문

솔직히 털어놓자. 최근 조계종단을 둘러싸고 불거진 사건들은 암담했다. ‘폭로’가 줄을 이을 것처럼 보이면서 자칫 종단이 무너지지 않을까 우려마저 들었다. 스님들의 청정무구한 이미지가 크게 훼손됐다는 안타까움은 비단 나만의 걱정은 아니었을 터다.


하지만 보라. 절망스럽던 조계종에 희망의 근거가 보이고 있다. 조계종 교육원이 7월1일에서 9일까지 땅끝마을 미황사에서 연 청년출가학교에는 예상보다 훨씬 많은 젊은이들이 몰렸다. 청년출가학교 법인 교장은 “홍보 기간이 짧아 지원 청년들이 많아도 100여명에 그칠거라 생각했는데 많이 지원했다”고 밝혔다. 스님이 말하기 어려웠겠지만 모집기간 내내 종단을 둘러싼 폭로가 불거졌기에 과연 얼마나 신청할까 내심 긴장했을 법하다.


주최 쪽의 예상보다 3배 가까운 사람들이 몰린 사실은 불교의 가능성을 새삼 확인해준다. 종단이 어느 때보다 실망스런 모습을 보이고 있었기에 더 반갑다.


실제로 오늘의 젊은 세대 대다수는 길을 찾고 있다. 더러는 오늘의 젊은이들이 이기적이고 세상사에 무심하다고 개탄한다. 특히 1980년대 반독재투쟁에 참여했던 사람들 가운데 20대를 비판하는 이들이 많다. 심지어 어느 대기업의 인사담당자조차 젊은이들이 책을 읽지 않아 지적 수준이 크게 떨어진다고 일갈했다. 그 개탄과 일갈을 전혀 무시할 필요는 없다. 대학에서 강의하며 나 또한 그런 젊은이들을 적잖게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판단은 너무 안이하다. 무엇보다 객관적 현실을 무시하고 있다. 첫째, 2010년대와 1980년대의 젊은 세대가 놓인 객관적 조건은 차이가 크다. 1980년대까지 대학 진학률은 30%를 밑돌았다. 하지만 그 뒤 진학률은 가파르게 높아져 80%를 넘어선지 오래다. 한국교육의 성과라고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당사자들에게는 전혀 아니다. 과거에는 대학을 다니며 학점(성적)에 신경 쓰지 않아도, 심지어 학생운동에 참여해도 졸업 후에 정규직 일자리를 찾기 쉬웠다. 대졸자가 소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대학을 졸업해도 실업자가 되기 십상이다. 청년실업의 문제는 구조적이다. 따라서 그들이 처한 어려움을 모르쇠하고 일방적으로 질타하는 것은 정작 그런 사회구조를 만들어놓은 기성세대의 ‘책임 떠넘기기’에 지나지 않는다.


둘째, 젊은이들이 정치에 무관심하다는 단언도 더는 사실이 아니다. 지난 19대 총선을 보자. 새누리당이 단독으로 과반의석을 확보하는 개표 결과를 보며 숱한 윤똑똑이들이 ‘20대 개××’론을 함부로 폈다. 총선 패배의 분노와 함께 20대 전체 투표율은 27%이고 게다가 여성은 8%라는 통계까지 인터넷과 SNS으로 퍼져갔다. 하지만 그 살천스런 비난은 출구조사에서 서울 지역의 20대 투표율이 64%라는 수치가 나오면서 더없이 민망해졌다. 전체 투표율보다 오히려 높았기 때문이다.


과거 여느 세대와 달리 오늘의 20대는 앞날이 불투명하다. 2008년 미국의 금융위기로 시작된 세계 경제 침체는 올해 유럽의 위기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지금도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다. 한국 경제 또한 현재의 신자유주의 틀로는 청년실업을 비롯해 부익부빈익빈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이명박의 실패가 단적으로 입증해주고 있지 않은가.


▲손석춘
출가학교의 한 참석자가 “경쟁, 시험, 스팩 쌓기에 지쳤고 내려놓고 싶었어요”라고 토로했듯이, 또 다른 젊은이가 “앞으로 삶이라는 여행에서 주인으로 살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어요”라고 체험 소감을 밝혔듯이, 좁게는 개개인에서 대한민국과 인류에 이르기까지 신자유주의 체제를 넘어서는 데 불교는 큰 가르침을 줄 수 있다. 바로 그래서다. “이들이 왜 이렇게 출가학교를 지원하는지 좀 더 면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법인 스님의 말이 참 미덥다. 희망은 찾는 게 아니라 더불어 만들어가는 것이기에 더욱 그렇다.
 

손석춘 언론인 2020gi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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