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음주계 외면하는 불자들
불음주계 외면하는 불자들
  • 김형규 기자
  • 승인 2012.07.21 12: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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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절대금주’ 당부에도 교계 음주 일상화는 고질병
‘깨어있음’의 정신과 배치…너그러운 술문화 개선돼야

술이 문제다. 일상의 작은 실수에서 흉악범죄에 이르기까지 술이 원인인 경우가 적지 않다. 삶이 힘들어서 괴로움 때문에 술을 마시기도 하지만 친구 연인과 즐겁게 마시는 술도 있다. 술이 딱히 나쁜 것은 아니다. 문제는 너무 많이 마신다는데 있다. 폭음문화가 남긴 그늘이다.

 

사람들은 종류를 헤아릴 수 없는 다양한 폭탄주에, 하룻밤에도 몇 차례나 자리를 옮겨가며 술을 마신다. 술을 거부하면 사회에서 낙오자가 되거나 왕따가 되기 쉽다. 억지로라도 마셔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삶이 힘들어지고 사회생활에 윤기가 흐르지 않는다. 오죽했으면 ‘술상무’라는 직함이 다 있을까? 그러나 이렇게 마시다 보면 사람이 술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술이 사람을 마셔버린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엽기적인 흉악 범죄의 상당수가 술에 취해 있거나 술을 마신 상태에서 일어났다. 술은 맑은 정신을 처분해 버리고 광란(狂亂)으로 직행하게 만든다. 그렇게 깨어난 오늘은 평온했던 어제의 오늘이 아니다.


농경과 유교문화가 근간을 이루는 한국에서 술은 문화이며 통과의례다. 온대성 기후로 여름이 짧아 뜨거운 뙤약볕 아래 쉴 틈이 없이 일을 해야 한다. 2~3개월 안에 1년 먹을 양식을 마련해야하니 노동 강도가 살인적이다. 그래서 술이 필요하다. 농사일은 막걸리의 힘이라는 말이 있다. 술의 힘을 빌려 노동력의 최대치를 뽑아내는 것이다. 그래서 마을마다 양조장이라 불리는 술도가가 하나쯤은 필요했다.

 

유교문화도 술에 너그럽다. 조상에게 바치는 제사음식에 술은 빠지지 않는다. 정종이 귀했던 과거, 명절날 정종이 최고의 선물이었다. 제사에 술을 올리는 것은 제사에 참여할 수 있는 성년이 되면 술을 마셔도 좋다는 의미다. 그래서 성년이 된 의미로 아버지로부터 제일 먼저 배우는 것이 술이기도 하다. 공자는 “술은 양을 정하지 않고 마시되 난잡한 지경에 이르러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유교를 종교의 범주로 본다면 술에 관한 가장 관대한 종교라고 할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산업화로 힘든 농사일이 없어져도 수시로 마시고, 공자의 권위마저 떨어져 난잡해질 때까지 마신다. 술버릇 가르칠 어른도 없고, 규제할 방법도 없으니 결국 경찰이 나섰다. 최근 술에 취해 폭력을 휘두르는 이들과의 전쟁을 선포한 것이다. 인권과 실효성에 대한 논란이 있지만 술에 의한 폐해가 사회가 용인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 것은 분명해 보인다.


부끄럽게도 술로 인한 병증이 불교계에선 고질병이다. 승속을 가릴 것 없이 술에 취해있다. 불자들이 지켜야 할 가장 기본계율인 오계(五戒) 중에 불음주계(不飮酒戒)가 있다. 이게 아니더라도 부처님은 ‘아함경’에서 ‘범망경’에 이르기까지 무수히 많은 경전에서 결단코 술을 마시지 말 것을 당부했다. 술에 취하면 음행과 거짓말과 도둑질과 살인까지 연달아 범하기 쉽다. 수행자로서 경계할 일이다.

 

무엇보다 술은 명징한 상태로 깨어있음을 방해한다. 술은 마시면 흥분하게 되고 곧 이어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이 한꺼번에 밀려든다. 지혜는 끊어지고 어두운 무명(無明)이 몸과 마음을 뒤덮는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풀잎에 맺힌 이슬 같이 작은 양이라도 절대 먹어서는 안 된다”고 경계했다. 아예 마시면 안 된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자들은 진묵 대사와 경허 스님의 활달한 경지를 핑계로 술을 마신다. 술을 ‘곡차(穀茶)’라 부르며 도인 흉내를 내고 있다. 허깨비 놀음에 빠져 있으니, 부끄러움이 없다. 승속 가릴 것이 없다. 계를 지키지 않으면서 불교를 말하니 그 불교는 불교가 아니다. “요즘 계율에 어긋난 것이 문화가 되고 계율을 지키는 것이 오히려 용기가 필요한 시대”라는 탄식이 그래서 나온다.

 

▲김형규 부장
불자라면 더 이상 술을 마셔서는 안 된다. 승속을 막론하고 술에 너그러운 문화를 용납해서도 안 된다. 근본 계율의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 사회생활 속에서 어쩔 수 없다하더라도 줄이는 노력을 해야 한다. 흠뻑 취할 정도로 마시지 말고, 적게 마시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렇더라도 결국은 끊어야 한다. 기독교에서는 술을 금하지 않는다. 그러나 독실한 기독교인들은 마시지 않는다. 불자들이 부끄러워해야 한다. 


김형규 kimh@beopbo.com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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