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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인권, 배려가 아닌 ‘권리’

기자명 김영란

사람들은 왜 종교의 담장 안으로 들어오면 순종적으로 변할까? 상식이 왜곡되거나 침해받을 때 시정을 요구하는 것이 왜 종교적으로는 ‘아름답지 못한’ 행동으로 배척받는 것일까? 여성을 배려해야 한다는 말에는 동조하면서, “원래 여성이 가져야 할 당연한 권리”라고 말하면 왜 거부감을 느끼는 것일까?


종교의 틀 속에서는 때론 당연한 것이 당연한 것으로 인정되지 않는 듯하다. ‘여성의 권리는 인권이다’라는 말이 선포된 것은 고작 20년도 안된 1995년이었다. 남녀평등이 보편화된 요즘도 여성들이 자기 삶의 주인으로서 본인의 권리를 인식하거나 주장하는 것이 어색한 이유는 아마 오랫동안 순종적인 삶을 살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날 여성 불자들이 사찰문화나 예법, 법문 등에서 성차별적인 관습이나 규범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도, 또 이에 대한 문제제기를 했을 때 과격하다거나 종교인답지 못하다는 반격을 받으면 바로 수긍해버리는 것도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최근 불교계 쇄신법안을 다뤘던 190회 중앙종회 임시회에서는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산중총회의 구성원 자격요건에 비구와 비구니를 차별하는 조항이 문제시되더니 이번에는 차별조항을 바꿔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된 것이다. 그럼에도 본회의에서는 차별적이지만 그나마 있던 비구니가 삭제된 채로 상정됐고 그마저도 다음 회기로 이월되었다.


산중총회법 뿐 아니라 종헌종법 상에도 종단의 주요한 의사결정권자는 모두 비구 스님이며 종회의원의 비구니 숫자는 비구스님의 1/8에 불과하다. 분명한 차별조항인 것이다. 이런 수치도 그나마 배려한 것이라고 하니 종교계가 우리 사회의 미래를 이끌어가야 한다는 기대는 터무니없는 일일 것이다.


종헌종법상에 규정된 비구와 비구니의 차별을 없애자는 것은 단지 비구니 스님의 위상을 높이고 역할을 확대하자는 것이 아니다. 비구니 스님에게 의사결정권을 주자는 것만도 아니다. 차별을 없애는 것은 어느 한 곳에 독점된 권력을 나누는 것, 누군가 오랫동안 가지고 누리지 못했던 권리를 찾는 것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 역시 곳곳에서 성차별이 존재하고 있으며, 불교계와 마찬가지로 의사결정 분야의 차별이 가장 심각하다. 정치·경제 등 각 분야 여성의 참여는 미흡하며 의사결정권을 가진 고위직 공무원 역시 상당히 적다. 반면 비정규직의 대부분은 여성이며 성폭력, 가정폭력의 피해자 대부분도 여전히 여성이다. 뿐만 아니라 집안의 어린이, 노인, 환자에 대한 1차적 돌봄자 역시 여성이며 출산과 자녀양육 역시 여성이 지고 있다.


이로 인한 문제는 여성들의 결혼기피와 출산율 저하로 이어져 결국 대한민국의 가장 큰 사회적 위험이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성평등은 단지 여성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핵심 아젠다(agenda)인 것이다.


여전히 많은 문제들이 산적해있지만 사회는 끊임없이 성평등을 위한 다양한 정책들을 고심하고 또 추진하고 있다. 여성할당제, 여성 일자리와 사회서비스 일자리 확대, 보육시설 확대, 여성폭력 근절을 위한 법과 정책 개선 등이 대표적이다. 또 이 같은 법과 정책이 보다 실질적으로 운용될 수 있도록 예산이나 제도를 강화하고 있으며, 나아가 모든 부문에서 성평등 관점의 통합을 시도하고 있다.


▲김영란 소장
이러한 가운데 불교계는 과연 성평등 의식을 높이는 교육, 여성에 대한 폭력을 대처하기 위한 기구의 설치, 사찰 놀이방 설치, 소외된 여성에 대한 지원, 양성평등의 사찰문화를 위한 지침 마련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가. 여성의 존엄성을 지키는 일에 얼마나 구체적인 관심과 책임을 지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김영란 나무여성인권상담소장 ranyharu@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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