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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 고운사 주지 호성 스님

새에게 가지 내어주는 소나무 마음이 ‘화엄’

청년 시절 우연히 찾은 고운사
‘어디서 왔는고’ 물음에 출가

 

템플스테이·복지·교육 매진
주지부임 5년만에 본사 위용

 

 

▲호성 스님

 

 

7월 장맛비를 온몸으로 받아냈던 나무들이 산을 타고 오르는 구름을 벗 삼아 시원스럽게 서 있다. 그 뿐이다. 눈과 귀, 입을 현혹시키는 상점이나 유흥점은 일체 없다. 고즈넉한 길만이 고운사를 향해 나 있을 뿐이다.


길은 깊어지고, 한적함은 더해만 간다. 고운사(孤雲寺)는 순례객의 참배를 쉽게 허락하지 않는 듯하다. 길 위에서 단 한번이라도 철저한 외로움을 느낀 사람에게만 도량을 내어주려는가 보다.


고독의 단견으로 끝나려는 순간 무언가가 시야에 들어왔다. 화엄일승법계도! 법계도 모양 그대로 4000평 부지에 조성한 작은 숲. 그 속에 한 사람이 걸을 만한 길이 나 있다. 가로수 길과는 또 다른 길. 그 숲이 묻는다. ‘너는 누구냐?’


‘법성게 숲’은 고운사 주지 호성 스님의 작품이다. 어릴 때부터 1년에 한 번은 여행을 떠나야 했던 청년. 강원도 횡성이 고향인 그는 원주에서 부산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딱히 목적은 없었다. 그저 부산에 가 보자는 게 다였다. 무엇이 그를 이끌었을까. 그는 중간 지점인 안동에 내렸다. 어디로 갈까! 버스가 청년 앞에 섰다. ‘고운사’라는 목적지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무작정 몸을 실었다.

 

 

▲하늘에서 내려다 본 의상 스님의 법성게 구조의 숲. 이곳을 거닐다보면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이 절로 떠오른다.

 


고운사 한 켠에 앉았다. 고요했지만 형언할 수 없는 안도감이 일었다. 바로 그 때 한 스님이 경내를 걷고 있었다. ‘저리 잘 생기신 분이 왜 스님이 되었을까?’ 그 찰나의 시공간 속에서 서로의 마음이 통한 것이었을까! 스님이 다가와 청년의 눈을 지긋하게 들여다보며 물었다. ‘젊은이 어디서 왔는고?’ 그 한마디에 그대로 출가했다. 어렸을 때부터 아침이면 ‘어떤 귀인이 왔을까’하는 마음에 문을 열었던 청년. 자신의 방문이 아닌, 고운사 일주문을 열고 들어서서야 ‘귀인’ 근일 스님을 만났던 것이다.


호성 스님은 천진난만한 스님으로 알려져 있다. 상대를 대할 때 격의를 따지지 않으니 ‘위의 좀 지키라’는 핀잔 아닌 핀잔도 듣는다. 명색이 교구본사 주지지만 그 흔한 승용차 한 대 없다. 기차와 버스를 이용할 뿐이다. 다소 급하면 택시를 타면 그만이다. 운불련 불자가 스님의 ‘운전기사’인 셈이다.


다소 즉흥적인 면도 있다. 어느 순간, 평생 전국 선방에서 안거를 보낸 후 받은 해제비 일체를 지역 장학금으로 내놓는가 하면, 1년 동안 모아온 고운사 보시금을 의성은 물론 안동, 봉화 등지로 보내 장학금으로 쓰게 한다. 고운사가 조계종 교구본사라 하지만 여느 본사와 비교해 볼 때 그 규모는 너무도 작다. 관람료도 받지 않고 있으니 사중 살림도 넉넉지 않을 게 분명한데 스님은 덜컥 내놓는다.


상념에 젖다보니 벌써 일주문이다. 산사의 길은 좀 전에 보았던 산책로와는 또 다른 길이다. 금강송으로 꽉 찬 산사 길은 그야말로 호젓하기 이를 데 없다. 우화루 다실에 앉아 보았다. 산에서 내려온 청량한 바람이 37도의 무더위에 흘러내린 땀을 식혀준다. 고운(孤雲) 최치원도 이 자리서 바람 한 점 안았을까?


최치원의 불교인연을 말할 때 주로 해인사를 거론하지만 고운사는 더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의상 스님이 지은 사명 ‘고운사(高雲寺)’를 최치원이 ‘고운사(孤雲寺)’로 바꿨을 정도이니 말이다. 더욱이 ‘고운(孤雲)’은 그의 호가 아닌가.


최치원은 여지(如智), 여사(如事)라는 두 스님과 함께 불사를 일으켰는데 지금도 유명한 전각 두 채가 있다. 그 하나는 가허루(駕虛樓)고 또 하나가 우화루(羽化樓)다. 고운사의 향훈에 젖었던 최치원은 마침내 자신의 멍에를 가뿐하게 털어버리고 허공의 마음을 알아차렸던 것일까? 그는 전각 하나를 가허루(駕虛樓)라 칭했다. 멍에를 던져 버린 그는 신선이 되고자 했나보다. 또 하나의 전각 하나를 우화루라 했으니 말이다. 우화! ‘몸에 날개가 돋아서 하늘로 올라가 신선이 된다’는 우화등선(羽化登仙)에서 따온 말이 분명하다. ‘신선’보다 ‘부처’를 택했으면 더 좋았을 것을. 절 이름의 한자가 바뀐 것도 이 때다.


하지만 현재 가허루(駕虛樓)는 가운루(駕雲樓)로 개칭돼 있다. 우화루 역시 음은 같지만 한자가 다른 우화루(雨華樓)다. 최치원이 지은 전각 이름을 고운사가 다시 바꾼 것이다. 사명(寺名)을 뺏긴 승가의 자존심이었을까? 최치원과 승가의 용쟁호투 한 판을 보는 것 같다.


‘구름을 타고 올라간다’는 등운산(登雲山)이 있으니 ‘가허루’보다는 ‘가운루’가 더 운치 있어 보인다. 우화(雨華)란 다름 아닌 법음일 터. ‘법음이 비처럼 내려 도량을 장엄한다’ 생각하니 이 이름 역시 멋지다. 여기에 장맛비라도 한 줄기 내리면 우화루의 운치는 더해만 갈 것이니 개칭은 탁월한 선택인 듯싶다. 그렇다면 의상 스님이 지은 사명 ‘고운사(高雲寺)’는 왜 되돌려 놓지 않았던 것일까? 너무 극단의 선택이라 판단했던 것일까? 어쨌든 최치원이 지은 ‘홀로 있는 구름’ 고운(孤雲)이 등운산과 잘 어울리는 것만은 분명하다.


호성 스님은 이 우화루를 다실로 개방했다. 다구와 차를 준비해 주고, 벽면 하나에 빼곡히 불서를 꽂아 두었다. 누가 따로 차를 내어주지 않는다. 차 한 잔 하고 싶은 사람이 차 우리고 마신 후 알아서 보시하면 그만이다. 벗과 차 한 잔 해도 좋고, 책과 함께 한 잔 해도 좋다. 우화루로 들어오는 바람과 마주하며 한 잔 해도 누가 뭐라 말 안 한다. 차와 책, 그리고 우화루. 대중을 향한 호성 스님의 세심함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호성 스님은 누구라도 차 한 잔 할 수 있도록 ‘우화루’를 개방했다.

 


고운사에는 분명 뭔가 특별한 게 있음이 감지된다. 화엄일승법계도를 숲으로 조성한 게 예사롭지 않고, 템플스테이 전문 전각과 강원을 짓는 이 모든 불사에 그 어떤 깊은 뜻이 함축돼 있는 게 분명하다. 여기에 장학 불사는 물론 양로원을 비롯한 복지 분야에도 남다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 모든 게 호성 스님이 주지로 부임하면서 이뤄지고 있는 일들이다. 무엇을 펼치고 싶은 것일까! 무엇인가 꿈틀거리고 있는 게 분명하다.


“특별한 거 없습니다. 더불어 가는 세상, 함께 하는 세상을 다 같이 만들어 가 보자는 겁니다. 부처님 뜻이 여기에 있지 않겠습니까?”


‘함께 하는 세상’이란 ‘나와 너가’ 공존공생 하는 조화로운 세상을 말함이니 부처님 뜻과 다름없다. 하지만 그 실천은 쉽지 않다. ‘상대 존엄’이라는 전제 조건이 구현되었을 때 공생이 가능한데 이는 무아라는 빗장을 열지 못하면 한 발짝도 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자아집착이라는 걸림돌 때문입니다. 타인과 소통하지 않고, 세상과 소통하지 않는 자아의 관점은 참으로 무서운 겁니다. 독재나 다름이 없지요. 또한 자신의 관점으로만 세상을 보면 갈등만 일으키고 불만족에만 휩싸이게 됩니다. 거기서 상생을 도모하기란 불가능합니다.”


어디서 시작해야 하는 걸까! 무아의 세계로 가는 길이 그리 녹록치 않은 것만은 분명하지 않은가.


“구름 아래 당당하게 서 있는 저 소나무 보세요. 좀 더 들여다보면 새도 있습니다. 소나무가 제 잘났다고 새를 마다하지 않습니다. 나뭇가지 하나 턱 하니 내어놓지 않습니까? 언제든 말입니다. 새도 한 구절 노래로 답례하고 있지요. 한 여름의 숲입니다. 저 소나무, 겨울이면 눈을 받아 주지요. 눈은 또 그 답례로 ‘설송’(雪松)‘이란 이름을 지어줍니다. 겨울의 숲입니다.”

 

‘나’ 집착이 상생 최대 걸림돌
자신 들여다보아야 무아 체득

 

법성게 숲 조성하며 ‘소통’
화엄의 ‘함께하는 세상’ 펼쳐


연기적 삶을 통한 조화로운 세계를 말하고 있음이다. 화엄의 세계다!


“서로가 서로를 껴안고 있습니다. 어느 한 쪽이 일방적이지도 않습니다. 소나무는 새 보고 앉으라 한 적도 없고, 떠나라고 한 적도 없습니다. 새 역시 가지 하나 내 놓으라고 윽박지른 적이 없습니다. 그저 그렇게 서로서로 공생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면서도 소나무는 소나무이고 새는 새이지 않습니까? 멋진 세계입니다.”


소나무 속의 새 한 마리요, 새 속의 소나무 한 그루라! 그야말로 상즉상입(相卽相入)의 이치가 아닌가.


“상생의 세계로 들어가려면 저 소나무처럼 자신을 고집하지 않아야만 합니다. 무아의 세계를 안다는 게 그리 쉬운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리 어려운 것만도 분명 아닙니다. 돌 사진 한 번 보고 지금의 자신을 보기만 해도 알 수 있는 것 아닙니까? 돌 때의 자신과 지금의 자신 어느 게 진짜 자신의 모습입니까? 우주 만물도 찰나의 순간순간마다 변화의 변화를 거듭하는데 사람인들 뾰족한 수가 있겠습니까? 자신을 내세우지 않으면 상생은 그리 어려운 게 아닙니다.”


고운사 산책로에 화엄일승법계도 숲을 조성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그 숲길을 거닐며 사유해 보라는 것이다. 그 어떤 물음이어도 좋다. 번뇌가 있다면 그 길을 따라 내려놓아보라 이르고 있는 것이다. 화엄의 도량에서는 분명 가능하니 겁먹지 말고, 편안한 마음으로 길을 걸어 보라는 뜻이리라.


“한 티끌 속에 시방세계가 다 들어있다(一微塵中含十方) 했습니다. 현재 이렇게 오롯이 말하고 있는 ‘나’속에도 온 우주가 꽉 차 있습니다. 너무도 소중한 사람입니다. 타인 역시 존엄합니다. 그 속에 담긴 마음은 평생을 써도 넘쳐 납니다. 문제는 어떤 마음을 쓰느냐 이겠지요.”


‘더불어 가는 세상, 함께 하는 세상’의 마음을 다함께 펼쳐 보자는 뜻이다. 스님은 한 발 더 나아가 ‘나에서 우리로, 우리에서 모두로’ 나아가자고 한다. 서로서로 손을 잡고 말이다. ‘화엄’의 세상을 이 땅에 펼쳐 보이자는 원대한 원력이 배어 있는 것이다. 템플스테이, 복지. 인재양성, 강원불사, 숲길 조성 이 모든 게 화엄의 세상을 열려는 원력에서 비롯된 것이다. 고운사의 특별한 꿈틀거림은 다른 아닌 ‘호성 화엄’이었던 것이다.


한쪽 벽에 고운사 대표 선지식 수월 영민 선사의 진영이 걸려 있다. 한 눈에 보아도 범상치 않다. ‘나고 죽는 일이 가장 큰 일이니 촌음을 어찌 아끼지 않겠는가’라 탄식한 수월 스님은 각화사 남암에서 10년간 면벽 수행 결사를 시작한 이후 전국의 선지식을 찾아다니며 깨달음을 구했다고 한다. 생전에 9차례에 걸쳐 64과의 사리가 나왔다는 수월 스님은 계율을 철저치 지키며 무욕의 삶을 살다 가신 스님으로 알려져 있다.


수월 스님은 입적에 앞서 제자들에게 당부했다. ‘내가 갈 때 너희들은 소리 내어 울지 말고, 빈소를 마련하거나 행상을 하지 말고, 낮에 곧 화장하라.’ 화려한 다비가 곧 스님의 법력인 것으로 오인하는 현 시대에 경종을 울리는 메시지가 아닐 수 없다.


“저 자신을 다독이기 위해 진영을 모셨습니다. 순간순간 공부보다 편안함을 찾으려는 때가 있거든요. 그럴 때마다 수월 선사의 진영을 보고 참회합니다.”


화엄의 길을 걷는 스님의 마음가짐 하나가 여실하게 보인다. 호성 스님의 화엄원력은 보기보다 깊고 광대해 보인다. 그러기에 고운사 변모는 여기서 그치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이제 시작일 뿐이다. 분명한 건, 고운사가 펼쳐내는 화엄이 ‘상생조화’의 세상을 여는 데 지대한 역할을 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혼잡한 세상에서 잠시 나와 길을 걷고 싶다면 고운사로 향해보라. 화엄의 일미를 맛볼 수 있을 것이다. 화두는 들지 않더라도 청량한 바람 한 점 안고 사유의 길로 들어서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의상 스님도 좋고, 수월 선사도 좋다. 최치원이면 또 어떠한가. 당대 인물이 던진 메시지가 있지 않은가. 호성 스님이 우화루를 개방한 연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 화엄일승법계도 숲을 다시 한 번 들여다보았다. 숲이 또 묻는다. ‘너는 누구냐!’


채한기 상임논설위원 penshoot@beopbo.com

 


효성 스님
1981년 고운사에서 근일 스님을 은사로 출가. 고금당 선원장을 역임한 스님은 2006년 고운사 주지를 맡았다. 현재 동국대 이사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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