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치동. 흔히 ‘대치동 사람들’이라는 유행어가 돌만큼 서울 강남구에 자리한 그 동네는 대한민국 고소득층이 밀집해 사는 곳이다. 특히 교육열이 높기로 유명하다.
대치동에 살고 있는 한 중학생은 자기가 살고 있는 동네를 “학원천국”이라며 “(학원을) 안 다니고 싶어도 엄마들끼리 정보 다 주고받고, 일등이 다니는 학원 우르르 몰려다니고, 시험 끝나서 성적 잘 안 나왔으면 바로 끊어버린다”고 증언했다. 인터넷에 올린 글에서 그 중학생은 대치동 아이들이 “거의 다 정말 유학 갔다 오고 살다 와서 영어 장난 아니게 잘 한다”며 집안이 “진짜 다 빵빵”하다고 말했다. 친구들과 이야기 하다보면 부모 모두 서울대를 나온 아이들이 많고 직업도 의사, 변호사, 검사와 같은 전문직이 많다며 그 결과 아이들이 “우월한 유전자를 받아서 머리도 다 좋고”라고 썼다.
실제로 서울대와 연세대, 고려대 입학생 가운데 대치동을 중심으로 한 서울 강남, 서초, 송파구에 사는 학생들의 비율이 가파르게 올라가고 있다. 어렸을 때 미국 유학으로 영어를 익히고 ‘유명 학원’들에서 배운 뒤 수능시험을 앞두고는 서민들로선 상상하기 어려운 거액으로 ‘족집게 과외’를 받은 10대와 평범한 집안의 아이들이 ‘공정 경쟁’을 한다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않을 터다.
문제는 더 심각하다. 대학 강의실에서 지난 학기에 ‘교육 세습’을 주제로 토론하는 시간을 마련했을 때다. 졸업을 앞둔 고학년 학생이 당당하게 “부모가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고, 그래서 그 돈으로 자식에게 더 많은 투자를 하는 것은 불공정한 게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고백하거니와 나는 그 20대 중반의 젊은이를 학기 내내 보며 가슴이 몹시 아팠다.
교육열 높은 대치동 부모들이 최근 자기 동네에서 저지른 일을 새삼 곱씹어보는 이유가 여기 있다. 대치동 은마아파트에서 우유 배달을 하는 50대 여성은 열대야가 가시지 않은 새벽에 땀을 뻘뻘 흘리며 걸어와 승강기에 올랐다가 봉변을 당했다. 우유 상자 30개를 싣고 탔는데 한 주민이 빤히 쳐다보면서 “지금 전기세 내고 엘리베이터 이용하는 거냐”며 따지고 들었기 때문이다. 딱히 할 말이 없어 “미안하다”고 말하고 고개만 숙였다는 그 50대 여성은 옹근 10년 동안 그 지역에서 우유를 배달해왔다. 아파트 주민들에게 10년 내내 우유를 집 앞까지 배달해주는 친절한 서비스를 제공해온 셈이다.
하지만 그 50대 여성에게 돌아온 것은 고마움의 표시가 아니라 ‘당신 지금 이 엘리베이터를 전기세 내고 이용하느냐’는 살천스런 ‘성냄’이었다. 마침내 이 아파트는 전체 27개 모든 동의 1층 승강기 앞에 큼직한 경고문을 붙였다. 경고문은 “배달사원들은 배달시 반드시 계단을 이용하여 배달”하라고 적혀 있다. 이유도 밝혔다. “배달사원들이 각 층마다 승강기 버튼을 눌러 사용하므로 주민들의 불편과 전기료 발생 등으로 인해 입주민 민원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실 폭염으로 주민들이 에어컨을 많이 틀면서 올라가는 전기료의 책임을 우유 배달해주는 서민에게 물은 꼴이다. 더구나 경고문은 지키지 않을 때 “강력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대체 그 ‘강력한 조치’라는 게 무엇인가? 전기료 아깝다며 우유 배달을 못하게 막겠다는 것이고 그것은 그 사람들의 목줄을 죄겠다는 ‘협박’ 아닌가.
어떤가. 자녀 교육열로 소문난 주민들, 대한민국 상류층들, 대다수가 ‘사’자 돌림의 전문직 종사자들, 그들이 그 경고문을 읽으며 자라날 자녀들에게 물려줄 ‘마음’은 대체 무엇일까.
|
손석춘 언론인 2020gil@hanmail.net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