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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마아파트와 혜월 선사

기자명 법보신문

지난 8월8일 아침에 접한 한겨레신문(인터넷판) 머리기사는 분노보다는 서글픔과 연민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내용이었다. 강남구 대치동의 은마아파트 주민들이 우유와 신문 등 배달원들의 승강기 이용을 금지시켰는데, 배달사원들이 각 층마다 승강기버튼을 누르기에 주민들의 생활이 불편하고 전기료가 상승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닌가? 어찌 보면 소소하다 싶은 이런 이유로 무더운 여름에 육체적 고통을 감내하고 계단을 사용하라니…. 한편으로는 주민들도 나름대로 고충이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 그 근처에 사는 몇 분의 지인에게 직접 물어보았다. 그러자 자기들이 봐도 ‘좀 너무했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인터넷판에 게재된 댓글도 살펴보았지만, 대부분이 비난이었다. ‘돈 있는 사람들이 너무한다’. ‘당신들도 직접 계단을 오르내리며 경험해보라’. 그리고 강남 주민들을 집단으로 묶어서 멸시, 비하, 증오, 보복 등 적의를 보냈다. 이 댓글에서 또 다른 서글픔과 연민을 느꼈다.


그렇다면 이 하나의 사태를 우리는 어떻게 해석하고 답을 찾아야 할 것인가? ‘하나에 곧 여럿이 있다’라는 연기적 관계의 법칙에 따라, 은마아파트 사태 해결에 대한 실마리를 지혜와 자비행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번뇌가 깨달음이고, 예토가 정토이며, 중생이 곧 부처라고 했으니 말이다.


먼저, 이 하나의 사태는 우리 사회의 소소한 일상에까지 ‘자본과 권력’의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결코 개인의 교양이 문제가 아니다. 돈 있는 사람이 강자가 되고 지배자가 되어 돈 없는 사람들을 무시하고 억압하는 나쁜 자본의 논리가 사람의 정신까지 스며든 것이다. 양쪽 모두에게 무서운 일이고 진정한 삶에 대한 위기가 아닌가? 나아가 더 심각한 위기는 이러한 사태를 맞아 진정한 해법을 찾지 않고 대립과 적대적 관계를 형성하는 일이다. ‘약자는 정의, 강자는 부도덕한 자’라고 편을 갈라 증오와 긴장의 삶을 만들어내어 살아간다면 이 또한 모두의 일상적 삶의 불행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사태에서 반드시 우리가 극복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잘못된 관계의 형성이다. 아파트에 드나드는 배달원들을 ‘사회적 약자’라고 일컫고 규정해서는 안 된다.‘약자’라고 일컫고 규정하는 순간 ‘강자’가 자리 잡기 때문이다. 강자와 약자의 규정과 인식은 오만한 의식과 권력욕이 작동하는 허망하고 위험한 분별이다. 대승불교에서 자비심을 강조하면서, 존재의 공성을 말하고 관계의 금 긋기를 배척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것들에 대한 극복이 앞으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관계의 모습이다. 곧 다수와 소수자, 강자와 약자의 금 긋기를 해체하고 우리 모두를 도움과 은혜를 주고받는 ‘고마운 관계’로 정립하는 것이다. 은마아파트 주민에게 배달원들은 우유와 신문을 공급해주는 고맙고 귀한 존재다. 배달원에게도 마찬가지다. 아파트주민은 그저 돈 많은 우월자가 아니다. 자신들에게 경제적 도움을 주는 고맙고 귀한 존재다. 거래 관계는 긴장과 불화를 낳지만, 고마운 관계는 이해와 사랑을 길러준다. 관계를 어떻게 해석하는가에 따라 우리의 삶은 극락과 지옥의 세계로 갈라진다.


개간선사로도 일컬어지는 근대 고승 혜월 큰스님의 일화. 그는 부산 선암사에서 문전옥답 다섯 마지를 팔아 그 돈으로 일꾼을 고용하여 밭을 일구었다. 그러나 일꾼들이 게으름을 피우고 큰스님의 법문 듣는 데 정신이 팔려 겨우 세 마지기만 개간하자 제자들이 크게 불평했다. 선사의 답은 이렇다. “다섯 마지기는 그대로 있고, 자갈밭이 세 마지기가 더 생겼으니 좋지 않으냐?”


▲법인 스님
우리 모두가 행복하게 사는 길이 여기에 있지 않을까? 작은 이익에 집착하면 우리의 삶이 삭막해진다. 혜월 선사는 땅과 농민과 자신을 하나의 몸으로 여기며 살았던 것이다.


조계종 교육부장 법인 스님 abcd369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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