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보시의 공덕
14. 보시의 공덕
  • 법보신문
  • 승인 2012.08.21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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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에서 임금까지 보시의 힘으로 나라를 이끌다

불국사 건립한 대성은 전생 보시 공덕으로
후생에 재상의 아들로 태어나 중시에 올라
비구니 자혜 스님의 절 불사가 힘에 부치자
선도산 성모가 꿈에 나타나 금 10만냥 보시

 

 

▲2005년 쓰나미 피해를 입은 남아시아 국가들을 돕기 위한 탁발행렬.

 

 

늙고, 나이 들고, 태어난 지 오래 되었고, 오래 살았고, 생의 마지막에 이르렀고, 120살이 된 바라문 두 명이 세존께 와서 가르침을 청했다.


“고따마 존자께서 저희들을 훈도해 주시고 저희들을 가르쳐주십시오.”
고따마 존자는 말씀하셨다.
“집이 불탈 때 가져나온 소유물과 타지 않은 것, 그것은 집 주인에게 크게 쓸모가 있듯이, 그와 같이 세상이 늙음과 죽음에 불탈 때, 보시로써 자신을 지켜라. 이미 보시한 것은 잘 지킨 것이니라. 이생에서 몸과 말과 마음으로, 자제하고 살면서 공덕을 지은 것, 그것이 죽을 때 그에게 행복을 가져오리.”


‘앙굿따라 니까야’의 ‘두 바라문경’의 한 구절이다. 이처럼 부처님은 보시의 중요함을 설했고, 불교가 깊이 뿌리박았던 신라사회에도 보시는 중요한 공덕으로 인식되고 행해졌다.


진평왕(579~632) 때의 비구니 지혜(智惠)는 안흥사(安興寺)에 살았다. 불전을 새로 수리하려 했으나 힘이 모자랐다. 꿈에 한 선녀가 와서 말했다.


“나는 선도산 성모(仙桃山聖母)인데, 네가 불전을 수리하려는 것을 기뻐해서 금 10근을 주어 돕고자 한다. 내 자리 밑에서 금을 꺼내어 쓰도록 하라.”


지혜는 놀라 깨어 무리들을 데리고 신사(神祠)의 자리 밑으로 가서 황금 160냥을 파내어 불전을 수리했는데, 모두 신모가 한 말에 따랐던 것이다. 이처럼 선도산의 성모도 안흥사 불전의 수리 불사를 위해 금을 보시했다고 한다.


어느 날 문 앞에 승려가 와서 절을 짓는데 필요한 쇠붙이를 보시하라고 했다. 가난하게 살던 진정(眞定)의 어머니는 솥을 주었다. 비록 다리가 부러졌을망정 그 솥은 집안에 있는 유일한 재산이었다. 아들 진정이 밖에서 돌아오자, 그 어머니는 솥을 절에 시주했다고 말하면서 아들의 뜻을 살펴보고 있었다. 진정은 오히려 기뻐하면서 말했다.


“불사에 보시했으니,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솥은 없더라도 걱정할 것 없습니다.”


이에 그는 와분(瓦盆)을 솥으로 삼아 음식을 익혀 어머니에게 봉양했다. 진정은 너무 가난해서 장가도 들지 못한 채 품팔이로 홀어머니를 봉양하고 있었던 가난한 청년이었다. 이처럼 가난한 사람들도 불사를 위해 보시할 줄 알았다. 태백산에 부석사가 창건된 것은 문무왕 16년(676), 그 무렵에 진정은 부석사로 출가하여 의상 십대제자(十大弟子) 중의 한 명이 되었다.


모량리의 가난한 여인 경조(慶祖)는 아들 대성(大城)을 데리고 부자 복안(福安)의 집에서 품팔이를 했다. 그 집에서 준 약간의 밭으로 생활의 밑천을 삼았다. 어느 날 흥륜사(興輪寺) 승려 점개(漸開)가 복안의 집에 와서 보시를 권했다. 복안이 베 50필을 보시하자 점개는 이렇게 축원했다.


“단월(檀越)이 보시를 좋아하니 천신(天神)이 항상 지켜 줄 것이고, 하나를 보시하여 만 배를 얻게 될 것이며, 안락하고 수명 장수하게 될 것입니다.”


대성이 듣고 뛰어 들어가 그 어머니에게 말했다.


“문간에 온 스님이 외우는 소리를 들었는데, 하나를 보시하면 만 배를 얻는다고 합니다. 생각건대 저는 전생에 선행(善行)이 없어 지금 곤궁한 것이니, 지금도 보시하지 않는다면 내세(來世)에는 더욱 구차할 것입니다. 제가 고용살이로 얻은 밭을 법회에 보시하여 훗날의 응보(應報)를 도모하면 어떻겠습니까?”

 

어머니도 좋다고 했다. 이에 밭을 흥륜사 법회에 보시했다. 대성은 이 보시의 공덕으로 재상의 아들로 태어날 수 있었고, 그도 경덕왕 때 중시(中侍)를 지낸 뒤에 불국사를 창건했다. 가난하던 전생의 보시 공덕의 결과는 오히려 만 배를 넘었던 것이다. 하나를 보시하여 어떻게 만 배를 얻을 수 있을까? 이와 비슷한 질문이 ‘잡비유경’에도 보인다.


부처님께서 어느 집의 문에 이르시어 밥을 비시니, 그 집의 아내가 밥을 부처님의 바리에 넣고 예를 드렸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하나를 심어 열을 낳고, 열을 심어 백을 낳고, 백을 심어 천을 낳고, 천을 심어 만을 낳고, 만을 심어 억을 낳나니, 오늘의 선행으로 진리의 도를 보게 되리라.”

그 남편이 믿기지 않아서 말했다.
“한 바리의 밥을 보시한 것뿐인데, 어떻게 이런 복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니구타수를 보라. 높이가 4~5리나 되고 해마다 몇 만석의 열매를 떨어뜨려 주지만, 그 씨는 겨자씨처럼 아주 작지 아니하냐? 땅은 아무 의식도 없는 존재이건만 그 보력(報力)이 이와 같거든 하물며 생명을 지닌 사람일까 보냐? 기뻐하며 한 바리의 밥을 부처님께 바치는 경우, 그 복은 매우 커서 헤아릴 수 없느니라.”

 

 

▲국보 29호 성덕대왕신종의 몸체에 부조된 공양하는 비천상.

 


그렇다. 한 알의 씨가 크나큰 니구타수로 자라 해마다 수만 개의 열매를 맺는 그 쉬운 이치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가난한 김대성의 보시, 그 보시 공덕의 열매는 니구타수 열매보다도 더 많다.


신라 왕경 사천왕사 맞은편에 망덕사(望德寺)가 창건된 것은 효소왕 6년(697)이다. 언젠가 이 절에는 선율(善律)이라는 승려가 살았다. 그는 보시 받은 돈으로 ‘육백반야경(六百般若經)’을 간행하다가 완성되기 전에 갑자기 명부(冥府)에 잡혀갔다. 명관(冥官)이 물었다.


“너는 인간세상에서 무슨 일을 했느냐?”
선율이 답했다.
“빈도(貧道)는 만년에 ‘대품반야경(大品般若經)’을 이루고자 했는데, 완성하지 못하고 왔습니다.”
명관이 말했다.
“너의 수명부(壽命簿)에는 비록 목숨이 끝났으나 뛰어난 원(願)을 마치지 못했으니 다시 인간세상으로 돌아가서 보전(寶典)을 완성시키도록 하라.”


이에 놓아 보냈다. 돌아오는 도중에 만난 한 여자가 울면서 말했다.


“나는 남염주(南閻州) 신라인인데 부모가 금강사(金剛寺)의 논 1묘를 몰래 뺏은 일로 죄를 얻어 명부에 잡혀와 오래 심한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지금 법사께서 고향에 돌아가시면, 저의 부모에게 알려 급히 그 논을 돌려주게 해주십시오. 제가 세상에 있을 때 참기름을 상 밑에 묻어 두었고, 또 곱게 짠 베를 침구 사이에 감추어 두었습니다. 법사께서 그 기름을 가져다 불등(佛燈)에 불을 켜고, 그 베로 경폭(經幅)을 삼아주십시오, 그러면 황천(黃泉)에서도 은혜를 입어 저의 고뇌를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선율이 이 말을 듣고 곧 떠나려 하다가 소생했다. 죽은 지 열흘 만에. 무덤 속에서 사흘 동안이나 외치는 소리를 듣고 무덤을 파고 그를 꺼냈다. 선율은 그 동안의 일을 말하고, 또 사량부 구원사(久遠寺)의 서남쪽 마을에 있는 그 여자의 집을 찾아갔다. 여자는 죽은 지가 15년이나 되었으나 참기름과 베는 완연히 그 자리에 있었다. 선율은 그 여자가 부탁한 대로 명복을 빌었다. 그 여자의 혼이 와서 말했다.


“스님의 은혜로 저는 이미 고통을 여의고 해탈을 얻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모두 감동하며 그 보전(寶典)을 서로 도와서 완성시켰다. 불경을 간행 유포하는 일은 공덕이다. 따라서 명부의 관리는 선율의 수명을 연장시켜서까지 이 일을 완성하도록 인간세상으로 돌려보낸다. 명부에 잡혀가서 15년 세월이나 고통을 받던 사량부의 여자도 선율에게 부탁하여 기름과 베를 불사에 보시한 공덕으로 고통을 벗어날 수 있었다. 이 설화의 의취(意趣)는 악업의 경계며 선업의 권장이지만, 구체적으로는 불사를 위한 보시의 공덕을 강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가난한 백성들은 물론 국왕과 귀족들도 불사를 도왔고, 많은 시주를 했다. 경덕왕(742~765)은 진표(眞表)를 궁중으로 초청해서 보살계를 받고, 조(租) 7만7000을 보시했고, 왕후와 외척들도 모두 계를 받고 명주 500단과 황금 50냥을 보시했다. 물론 진표도 이들 보시를 여러 사찰에 모두 나누어 주어 두루 불사를 일으켰다. 경덕왕 13년(754)에 무게가 50만 근에 가까운 황룡사종을 만들었는데, 시주는 폐출된 경덕왕의 왕비 삼모부인(三毛夫人)이었다. 출가한 승려나 귀족 중에는 자신의 집을 희사하여 절로 만든 경우가 있었다. 자장은 자신의 전원을 희사하여 원녕사(元寧寺)를 만들었고, 원효는 출가하자 그 집을 내놓아 절을 만들고 초개사(初開寺)라고 했으며, 태대각간(太大角干) 최유덕(崔有德)은 자기 집을 내놓아 절로 삼고 유덕사(有德寺)라고 했던 등이 그렇다.

 

▲김상현 교수

보시는 6바라밀 가운데 하나다. 보시에는 재시(財施)와 법시(法施)와 무애시(無畏施)가 있다. 남에게 베풀어 주는 일에는 재물을 들이지 않고도 가능한 경우가 있다. 부드럽고 다정하고 그리고 빛나는 눈으로 기쁨을 주는 일을 안시(眼施)라고 한다. 또한 환히 웃는 얼굴로도 보시할 수 있고 따뜻한 말씨로도 상대방의 마음을 훈훈히 녹일 수도 있다. 이러한 작은 일도 이 세상을 곱게 장식하는 한 떨기 꽃이 된다. 


김상현 교수 sanghyun@dongguk.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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