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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방 거사, 분수껏 살다

기자명 법보신문

물 긷고 나무하는 일상사가 평안한 해탈

空 을 철저히 수긍한 자에게만
허용된 신통이 분수껏 사는 삶

 

방 거사, 이것저것 차별 벗어나
본래의 평등한 자리 두 눈 목격

 

 

▲일러스트레이터=이승윤

 

 

올 여름 더위는 유난스러웠다. 밤낮없이 푹푹 찌는 열기에 “홧김에 에어컨 샀다”는 이웃의 말이 실감날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렇게 더위로 잠자리까지 설쳤는데 처서(處暑)랍시고 새벽녘 찬바람이 코끝에 감돌았다. 그 상큼함에 이부자리에서 뭉그적거리다가 싱긋이 웃었다. 드디어 탈출이다.


“분수껏 살아야지”하고 스스로를 달래기는 하였지만 내심 에어컨을 사고 싶은 욕망에 시달리고, 얇은 주머니를 더듬거리며 경제적 열등감에 시달리던 터였다. 허니 나에겐 처서가 여름 탈출일 뿐만 아니라 곧 욕망과 자괴감으로부터의 해탈인 셈이다. 분수껏 산다는 것, 주어진 몫에 만족하며 욕망과 자괴감에 시달리지 않는다는 것, 참 쉽지 않은 일이다.


‘경덕전등록’에 다음 이야기가 전한다.


양주(襄州)의 방온(龐蘊) 거사는 충주(衝州) 형양(衡陽) 사람으로 자(字)는 도현(道玄)이다. 대대로 유도(儒道)를 업으로 삼았으나 거사는 어릴 때부터 불가에 귀의하였다. 그러다 당나라 정원(貞元) 초에 석두(石頭) 화상을 뵙고는 말을 잊고서 종지를 깨달았다. 어느 날, 아침저녁으로 공양간과 방앗간을 오가며 열심히 일하던 방 거사를 석두 스님이 불러 세우고 물었다.


“자네는 나를 만난 뒤 하루하루를 어떻게 보내는가?”


“날마다 뭘 하냐고 물으신다면 특별히 말씀드릴만한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게송을 지어 석두에게 바쳤다.

날마다 하는 일 별다를 것 없으니
오직 저 스스로를 벗해 어울릴 뿐
이것도 저것도 취하고 버릴 것 아니니
어떤 경우건 잘될 일도 잘못될 일도 없지요.
붉은색과 자주색, 누가 이름을 붙였을까
언덕이건 산이건 티끌 한 점 없나니
신통하고도 오묘한 작용은
물 긷고 나무하는 것.


그는 다시 강서 마조(江西馬祖) 대사를 찾아뵙고 물었다.


“만법과 짝하지 않는 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마조가 대답하였다.


“그대가 서강(西江) 물을 한입에 몽땅 들이키면 말해 주겠다.”


이 말씀에 크게 깨달은 거사는 다시 2년 동안 마조 곁에 머물렀다. 이때 지은 게송이 있다.


장가가지 않은 남자들
시집가지 않은 여자들
큰 집안을 이뤄 단란하게 둘러앉아
함께 무생(無生)의 이야기를 설하세.


그 후 같은 유생 출신으로 동문수학했던 단하 천연(丹霞天然) 선사는 출가했지만, 방 거사는 재가자로 살았다. 방 거사, 대대로 유가를 업으로 삼았다니 좋은 집안임에 분명하다. 어려서부터 유교와 불교를 섭렵했으니 총명했을 게 분명하다. 호통을 치고 뺨을 갈겼는데도 석두와 마조 회상의 고참 납자들이 꼼짝 못했다니,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지견이 투철하고 언변이 민첩했을 게 분명하다.


긴 머리에 후줄근한 옷을 입고 후미진 골목에 살아도 제방의 노숙들이 뻔질나게 찾아와 머리를 숙였다니, 그에 대한 명성이 승가에서는 꽤나 파다했나 보다. 혹 석두와 마조의 권유대로 출가했다면, 그 회상의 풍성함이 백장과 단하를 능가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허나 방 거사는 자기가 좋은 대로 살겠다며 장가를 들어 단란한 가정을 이루었고, 체면과 염치 따위 안중에도 없이 시골 구석에서 이웃들과 어울렸고, 재주와 능력을 돌아보지 않은 채 조릿대를 엮어 시장에 내다팔면서 생계를 유지하였다. 그렇게 살면서도 늘 여유로운 웃음이 입가를 떠나지 않았고, 찾아오는 이들을 친절히 일깨웠고, 아내와 딸을 영욕(榮辱)에 시달리기는 커녕 삶과 죽음마저 초연한 사람들로 만들었다.


이것과 저것의 차별을 벗어나 본래 평등한 자리를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한 방 거사였기에 가능한 일이다. 평등한 대지에서 일어나는 아지랑이 물결의 차별임을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하였기에, 꼭 해야 할 일도 절대 하지 말아야 할 일도 없었을 게다. 찰나도 멈추지 않는 시간의 강물 위에 그리고 있는 그림임을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하였기에, 나날의 일상에서 이렇게 하건 저렇게 하건 잘될 것도 잘못될 것도 없었을 게다.


머리카락이 솟도록 나를 기쁘게 하고 몸서리치도록 나를 슬프게 한 그것이 한판 연극임을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하였기에, 좋은 사람도 미운 사람도 훌륭한 사람도 못난 사람도 없었을 게다. 그렇게 한평생을 살았기에 문병을 온 군수의 무릎을 베고 “한 세상 잘 머물다 가니, 만사가 그림자요 메아리구려” 하며 편안히 눈감을 수 있었을 게다.


분수껏 산다는 것, 그건 공(空)을 철저히 수긍한 자에게만 허용되는 신통(神通)인가 보다. ‘나’라는 무지와 ‘나의 것’에 대한 욕구가 허무맹랑한 짓거리였음을 철저히 수긍한 자에게만 주어지는 오묘한 작용[妙用]인가 보다. 그래서 물 긷고 나무하는 일상사(日常事)가 곧 평안한 해탈이요 열반이었나 보다.


여름 내내 선풍기바람을 코앞에서 쐬면서도 에어컨에 대한 욕망과 자괴감에 시달렸으니, 방 거사가 보았다면 눈살을 찌푸릴 일이다. 방 거사가 부럽다.


늦은 아침 햇살이 방안 깊은 곳까지 들어서야 하품하며 일어나 죽 한 그릇 비우고, 앉기 좋고 거닐기 좋게 안팎을 깨끗이 청소하고, 기본적인 양식과 옷을 마련하기 위해 쭈그려 앉아 열심히 조릿대를 엮고, 그것도 세 끼 배 채우기에 충분하다 싶으면 그만두고, 시간이 남으면 여름엔 그늘에서 쉬고 겨울엔 볕을 쬐고, 설렁설렁 산길 들길을 거닐다가 사람을 만나면 반갑게 인사하고 짐승을 만나면 놀라지 않게 피하고, 안절부절 안달복달하는 이가 있으면 살살 달래 안심시키고, 그러다 밤이 깊으면 두 다리 쭉 뻗고 코를 골았을 방 거사가 부럽다. 혹자는 이런 나에게 말할 것이다.


“그건, 경쟁에서 패배한 자들이 선택하는 나약한 삶이야. 사내자식이 뭔가 이루겠다는 꿈이 있어야지 왜 그렇게 맥아리가 없냐. 패배자의 슬픔을 억지로 위장하려는 거지, 거기에 무슨 진짜 위안과 행복이 있겠어.”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방 거사가 부럽다.

 

성재헌  tjdwogj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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