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화랑과 미륵신앙
15. 화랑과 미륵신앙
  • 김상현 교수
  • 승인 2012.09.04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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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불의 용화세계를 신라 땅에 구현하다

화랑을 國仙이라 불렀는데
국선의 仙은 미륵불을 의미


화랑은 낭도들의 리더이며
동시에 미륵…국왕도 존경

 

 

▲화랑이었던 삼국통일의 주역 김유신 장군 묘.

 


신라에 풍류도(風流道)가 설립된 것은 제24대 진흥왕(眞興王, 540~576) 때다. 왕은 나라를 흥하게 하려면 반드시 풍월도(風月道), 즉 풍류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에 양가(良家)의 남자 중에 덕행이 있는 자를 뽑아서 화랑(花郞)이라고 했는데, 설원랑(薛原郞)을 최초의 화랑으로 삼았다. 한 명의 화랑을 중심으로 많은 낭도들이 모여들었고, 그들은 서로 도의(道義)로 연마하고, 함께 가악(歌樂)으로 즐겼으며, 산수(山水)에 노닐며 수행했다. 나라 사람들은 모두 화랑을 받들었다. 심지어 국왕까지도 화랑을 받들었다는 기록이 여러 차례 보인다. 당나라 고음(顧)의 ‘신라국기(新羅國記)’에 의하면, 귀인의 자제로 아름다운 사람을 가려 뽑아서 분을 바르고 곱게 단장하여 화랑이라 이름하고 나라 사람들이 모두 존경하여 섬겼다고 한다. ‘신라국기’는 768년(혜공왕 4)에 당의 책봉사 귀숭경을 수행해서 신라에 왔던 고음이 귀국하여 신라에서 견문한 바를 토대로 저술한 책이다. 고음이 신라에서 직접 견문한 바에 의하면, 8세기 후반 신라에서는 국인이 화랑을 다투어 섬기고 있었다는 것이다.


15~16세의 화랑을 국왕을 비롯한 나라 사람들이 모두 존경하여 섬겼다는 사실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왜 국왕까지도 화랑을 받들었던 것일까? 종교적 차원이 아니고서야 국왕이 젊은 화랑을 공경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진지왕(眞智王, 576~579) 때에 있었다는 다음의 이야기는 화랑과 미륵신앙의 관계를 전해주고 있다.


신라 최초의 절인 흥륜사(興輪寺) 법당에는 미륵불이 봉안되어 있었다. 이 절의 승려 진자(眞慈)는 미륵불상 앞에 나아가 발원하며 기도했다.


“미륵대성께서 화랑(花郞)으로 화신(化身)하여 세상에 출현하신다면 저는 항상 거룩하신 모습을 친근하게 모시겠습니다.”


지극한 정성으로 간절히 기원하던 어느 날 저녁 한 승려가 꿈에 나타나 일러 주었다.


“웅천(熊川) 수원사(水源寺)에 가면 미륵선화(彌勒仙花)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진자는 꿈에서 깨자 놀라고 기뻐하며 그 절을 찾아 나섰다. 일보일배(一步一拜). 한 걸음마다 한 번 절하며 열흘 만에 그 절에 이르렀다. 일보일배로 먼 순례 길을 가는 전통이 티베트에는 지금도 전하고 있지만, 우리 역사에서는 단 한 번 보이는 사례다. 문 밖에서 곱게 생긴 한 소년이 웃는 얼굴로 맞이하여 객실로 안내했는데, 진자는 읍(揖)하고 말했다.


“그대는 평소에 나를 모르는 터에 어찌하여 이렇듯 은근하게 대접합니까.”
소년이 말했다.
“저도 또한 서울 사람입니다. 스님이 먼 곳에서 오시는 것을 보고 위로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소년은 문 밖으로 나갔는데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었다. 절의 승려들에게 지난밤의 꿈과 자신이 여기에 온 뜻을 밝히고는 말했다.
“잠시 아랫자리에 머물러 미륵선화를 기다려도 괜찮겠습니까?”
절의 승려들은 그의 진실한 모습을 보고 말했다.
“여기서 남쪽으로 가면 천산(千山)이 있는데 옛 부터 현인(賢人)과 철인(哲人)이 살고 있어서 명감(冥感)이 많다고 합니다. 그곳으로 가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진자가 그 말을 쫓아 산 아래에 이르니, 산신령(山神靈)이 노인으로 변하여 나와 맞으면서 말했다.
“여기에 무엇 하러 왔습니까?”
진자가 대답했다.
“미륵선화를 만나 보고자 합니다.”
노인이 또 말했다.
“아까 수원사 문 밖에서 미륵선화를 이미 보았는데, 다시 무엇을 보려는 것입니까?”


진자는 이 말을 듣고 놀라 자신이 살던 절로 급히 돌아왔다. 한 달이 지나 진지왕(眞智王)이 이 소문을 듣고 진자를 불러서 말했다.


“그 소년이 스스로 서울 사람이라고 했으니, 성인(聖人)은 거짓말을 하지 않을 것인 바, 이 성 안을 찾아보는 것이 좋지 않겠소.”


진자는 무리들을 모아 두루 마을을 돌면서 찾으니, 단장을 갖추어 얼굴 모양이 수려한 한 소년이 영묘사(靈妙寺) 동북쪽 가로수 밑에서 놀고 있었다. 진자는 그를 보고 놀라서 말했다.


“이 분이 미륵선화다.”


그는 물었다.


“낭(郎)의 집은 어디에 있으며 성씨는 누구인지 듣고 싶습니다.”
낭이 대답했다.


“저의 이름은 미시(未尸)이고, 어렸을 때 부모를 모두 여의어 성을 모릅니다.”


이에 진자는 그를 가마에 태워 대궐로 들어가 왕께 뵈었다. 왕은 그를 존경하고 사랑하여 국선(國仙)으로 받들었다. 그는 무리들을 서로 화목하게 하고 예의(禮儀)와 풍교(風敎)가 보통사람과 달랐다. 그는 풍류를 세상에 빛낸 지 7년 만에 갑자기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었다. 진자는 몹시 슬퍼하고 그리워했으나, 그의 자비스러운 혜택을 많이 입었고 맑은 덕화를 가까이 하였으므로 스스로 뉘우치고 정성을 다하여 도를 닦으니, 만년에 그 역시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승려 신분의 낭도들도 많아
찬기파랑가 월명 스님 대표적


일심으로 불교 받들던 진흥왕
용화세계 전륜성왕을 꿈꾸다

 

 

▲ 단석산 신선사 마애불상군. 신선사(神仙寺)의 선(仙)은 미륵불을 뜻한다. 

 


이 설화에 의하면, 진지왕 때의 화랑 미시랑은 미륵불의 화신이라는 것이다. 미시(未尸)라는 이름도 미륵에 가탁한 것이라고 하는데, 미(未)는 미(彌)와 소리가 가깝고 시(尸)는 역(力)과 글자 모양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화랑은 국선(國仙)이라고도 불렀다. 도솔천의 미륵보살을 도솔대선가(兜率大仙家)로 표기했던 예가 있다. 따라서 국선의 선(仙)은 신선의 선이 아니라 미륵불을 의미한다. 단석산 신선사(神仙寺)에는 미륵불을 조성해 모셨는데, 절 이름 신선도 미륵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김유신이 국선이 되었을 때 그의 낭도를 용화향도(龍華香徒)로 불렀다는 것으로도 국선이 곧 미륵을 의미하던 것임을 알 수 있다. 용화란 미륵불을, 그리고 향도란 예불분향지도(禮佛焚香之徒)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풍모가 아름다운 남자를 택해서 보석으로 장식하고 화랑이라고 불렀음에 유의하면 화랑이란 풍모가 아름다운 남자를 뽑아 더욱 아름답게 장식했기에 그 모습을 두고 꽃처럼 아름다운 소년이란 의미로 불렀던 호칭이다. 이에 비해 국선(國仙)이란 나라의 선(仙), 즉 나라의 미륵불이란 의미였으니, 이것은 내용을 중시한 호칭이었던 셈이다. 내용과 형식을 합쳐 화랑국선(花郞國仙)이라고 부른 예도 있는데, 이는 국선화랑으로 불러도 별 문제가 없을 정도로 화랑과 국선은 같은 것의 이칭이었다. 국선화랑을 줄이면 선화(仙花) 혹은 선랑(仙郞)이 되는 것이다. 미륵불의 화신으로 생각했던 미시랑(未尸郞)을 미륵선화(彌勒仙花)라고 했던 것도 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화랑은 낭도들의 리더이면서 동시에 미륵이었던 셈이다. 이 때문에 국왕을 비롯한 국인들이 모두 받들어 공경했던 것이고, 부례랑(夫禮郞)의 낭도 안상(安常)의 경우처럼 고승까지도 낭도들의 상수(上首)가 되어 화랑을 모실 수 있었던 것이다. 호세랑(好世郞)의 낭도 혜숙(惠宿), 응렴(膺廉)과 그 낭도 범교(範敎), 낭도 월명(月明) 등의 예에서 보듯, 승려 신분으로 낭도가 된 경우가 적지 않았다. 세 화랑의 금강산 여행을 위해서 혜성가(彗星歌)를 지었던 융천(融天)과 찬기파랑가(讚耆婆郞歌)의 작자 충담(忠談)도 화랑과 무관하지 않았다. 불교와 풍류도와의 밀접한 관계를 짐작하게 해 주는 자료다. 풍류도가 미륵하생사상을 배경으로 성립되었다면, 미륵의 상징인 국선을 낭도의 상수(上首)였던 승려낭도가 더욱 가까이 하는 것은 자연스럽다고 하겠다. 자신은 국선의 무리에 속해 있기에 범패에는 익숙하지 못해도 향가는 지을 수 있다던 월명의 말을 통해 그가 얼마나 국선을 중시했던가를 짐작할 수 있다.


나라를 흥하게 하려는 목적으로 풍류도를 설립했던 신라의 지배층이 화랑들에게 희망을 거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풍류도를 설립하던 진흥왕은 어떤 이상세계를 꿈꾸었을까? 일심봉불(一心奉佛)하던 진흥왕은 왕자를 금륜(金輪)과 동륜(銅輪)으로 부르면서까지 전륜성왕(轉輪聖王)의 꿈을 되새겼던 왕이다. 미륵 하생의 용화세계가 도래하면 진흥왕이 희망하던 전륜성왕은 이루어지게 된다. 미륵이 하생하는 용화세계(龍華世界)에는 상카라는 전륜성왕이 출현한다고 했기에.

 

▲김상현 교수

미륵정토는 간단명료하면서도 매력적이다. 미륵이 하생하여 성불할 때의 용화세계는 풍족하고 안락할 것이라고 했다. 토지는 비옥하고, 국토는 평탄하고 깨끗하며, 곡식이 풍족하고, 백성이 번성하며, 온갖 보배가 흔하고, 기후가 고르고 사시가 조화되며, 사람의 몸에는 질병이 없고, 어리석음이 엷어지고 사나운 마음이 없으며, 서로 보면 기뻐하고, 좋은 말을 주고받으며 세상의 인민이 다 고루 잘 살아서 차별이 없는, 그런 이상사회가 용화세계라고 했다. 미륵불이 하생할 때 도래할 풍족하고 안락한 세상에 대한 묘사는 이처럼 구체적이다. 


김상현 교수 sanghyun@dongguk.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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